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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r 15. 2021

아내와 잡담

타인의 생각과 교육의 현실은 언제나 중요하다!

모처럼 평일인데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전날 진이 다 빠졌는지 출근 안 한다면서 안방에서 기어나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실업급여를 위한 교육을 온라인으로 시청했다. 코로나 때문에 꼭 고용보험센터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다 보니 한편으론 의외의 코로나 순 기능이었다.


교육영상은 1시간 남짓이라 둘째 놈 어린이집은 10시에 보내기로 하고 9시 20분까지 시청을 끝냈다. 교육받는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개별연장급여 자격에 대한 부분이었고 부부 재산 합계액이나 재산세 과세액 합계가 일정 이하이면 실업급여를 받기로 한 일수보다 60일 더 연장하여 급여 신청이 가능하다.


예전 38 세금징수팀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수많은 현금다발과 신고되지 않는 각종 미술품, 금품, 본인 명의가 아니라는데 고급 외제차와 주택 등을 소유하면서도 뻔뻔하게 공공임대주택에서 '난 재산이 하나도 없소' 라며 발뺌하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저런 사람들은 실업급여받을 때에도 재산을 축소시키거나 은닉하여 개별연장급여도 신청할 것 같았다. 누군가는 피땀 흘려 세금을 내는데 저리도 쉽게 갉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고 교육과 무관하게 이런 쓸데없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교육이 끝나고 교육확인서에 체크한 뒤 실업급여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근데 다음 페이지로 진행이 안됐다. 고용보험센터에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지 않아서 워크넷이라는 정부 취업사이트와 연동이 잘 안됐는지 계속 인증서로 로그인하라고만 표기됐다. 휴대폰 인증서를 PC로 옮기는 번거로움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은 인증서를 옮기고 통장사본과 확인서를 첨부한 후에야 신청 버튼이 클릭됐다. 이것 때문에 시간을 20분 정도 더 잡아먹어서 둘째 놈은 10분 늦게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필 어린이집 졸업식이라 원장 선생님까지 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는 둘째 놈을 맡겼다.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집에 와서 쫀쫀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어 진하디 진한 라테를 한잔했다. 아내가 거실로 나왔고 나에게 이런 멋진 에스프레소 머신을 흔쾌히 선사해준 아내에게 맛있게 라테 한잔 대접한 후 점심 준비를 했다. 

점심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교육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고 곧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10년은 더 남았지만 정답이 없는 교육방식에 대해선 꾸준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대화나 논쟁은 중요하다. 


대학생들처럼 고등학교에도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해야 졸업이 되니 학생들도 걱정되고 교사들 역시 걱정됐다. 대학교 시절 수강신청 날에는 맨날 서버는 터져나가고 학점을 잘 주거나 온라인 1타 강사처럼 강의를 잘하는 교수들의 수업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신청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들이 고등학교에서도 벌어질 것이 예상되며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상황으로 전개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수시모집이라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제도 역시 성적으로 줄 세워서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닌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 본인 인생의 커다란 비전을 세움과 동시에 사회의 인재가 되기 위한 작은 초석임에도 현재 삐그덕 거리는 걸 보면 고교학점제 역시 좋은 제도이긴 하나 시행착오와 그 착오에서 희생되는 학생들이 어떤 방법으로 구제를 받을지 걱정도 되긴 하다. 


그러다 보니 주제는 도대체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 로 넘어갔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 되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잘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이나 기부를 하는 기사보단 그 잘난 머리를 활용하여 어떡해서든 세금을 덜 내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행동만 하는 기사들이 더 많으니. 물론 언론의 기사는 비합리적인 일들을 노출하여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기능도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기에 그렇다곤 하지만 돈 없고 연줄 없는 사람보다 권력층과 자산가들이 이런 법망을 피해 가는 경우가 더 많으니 열폭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교육을 받으며 생각했던 마음까지 합쳐서 더 열띤 생각을 주고받다가 첫째님의 점심을 주기 위해 국을 끓이고 밥을 준비했다. 밥과 국이 너무 뜨거워 잠시 식힐 겸 주제를 다른 것으로 변경했다.


화제가 됐던 공중파의 보헤미안 영화에 대한 동성애 키스 장면 편집을 둘러싼 논쟁을 얘기했고 이 부분에선 아내와 내 의견이 꽤 달랐기에 결론에 도달하기보단 계속 논쟁의 논쟁을 거듭하게 됐다. 그렇게 논쟁은 폭력적인 게임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냐 로 번져서 개인의 정신적 문제를 게임 때문에 표출한 것이라는 논문과 통계가 과연 정답인가 로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주고받다가 깨닫게 된 건 우린 무엇을 위해 논쟁하다 첫째님에게 차디찬 밥을 줬나로 결론을 맺었다


첫째님에게 줄 밥은 이미 식어버렸고 1시 30분에 출발해야 둘째 놈을 데리러 갈 수 있는데 너무 늦었기에

미안하게도 그 차디찬 밥과 국을 얼른 주고선 옷을 입혀 둘째 놈을 데리러 갔다. 첫째님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여 둘째 놈을 데리고 동네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에서 둘째 놈은 어린이집 친구를 만나 2시간 동안 신나게 놀다 보니 안 간다며 떼를 썼고 첫째님은 나와 함께 근처 산으로 갔다. 아직 봄이 아닌지라 갈색의 낙엽들이 쌓여있었고 그 낙엽에 몸을 맡기며 뒹굴거리는 첫째님을 보며 약간은 흐뭇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수많은 교육제도가 변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놀이터에서 흙 만지고 산에서 낙엽이나 만지며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뒹굴거리며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 먼 미래를 보면서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현실 역시 최선을 다한다면 먼 미래 역시 그리 두렵지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우린 인재상이 있으니까 인재상에 맞춰서 세상을 살아나가면 된다. 인재상을 결정해놓고도 종종 잊어버리는 걸 보니 액자로 만들어 눈에 보이는 곳에 꼭 걸어둬야겠다.

눈에 보인다면 매일 생각할 테고 매일 생각하면 그걸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테고 그럼 싫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될 테니 말이다.

아내가 맨날 협박하는 그놈의 결혼 전 계약서를 붙여놓기 전에 먼저 인재상에 대한 액자를 만들어 붙여놔야겠다. 


-공장장 찰리한의 아내와 잡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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