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세상이 오면 어떨까!
아내가 지역구에서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첫 강의를 나간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로 나간다는 말에 박장대소와 함께 학교와 아이들의 특성을 알려줬다. 첫 강의라 많이 떨리고 긴장하는 아내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주다가 그냥 나를 팔아서 애들과 친해지라고 하니까 그럴 생각이란다.
강의자료를 보며 시강하는 아내를 보니 첫 강의 치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만 잘 끝내면 첫 강의는 성공이니 너무 많은 걸 전달하기보단 한 가지 확실하게 전달하라는 마지막 조언을 했다.
아내가 강의하러 가는 날에 첫째님 특수학교 교사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기 위해 단축수업을 했고 첫째님을 일찍 데리러 가는 길에 아내한테 힘내라고 문자를 보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 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인가'이었다.
강의 장표에는 '장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라는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대답 중 '불편함' 이 가장 많이 나왔다. '도움이 필요' , '휠체어'가 그 뒤를 이어 가장 많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대상이 고등학생이고 같은 질문을 하면 과연 저렇게 대답이 나올까? 솔직하게 대답해달라고 하면 분명 내가 아는 그 안 좋은 단어가 가장 먼저 튀어나올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럼 난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했나 생각해보니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봉사활동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규수업시간을 빼고 타 구에 있는 특수학교로 이동했다. 아마도 그 이유가 장애인식개선을 위함과 동시에 봉사활동의 개념이었을 것 같았고 특수학교에 도착하여 사전교육을 받을 때 학교의 특성과 어떤 장애의 학생들이 있는지 알려줬다. 돌발행동을 하더라도 너무 놀라지도 말고 크게 대응하지 말라고 했으며 교사도 동행하니까 폭력적인 행동만 제지하되 그 이외의 행동에는 크게 반응하지 말라고 했었다.
"여러분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입니다."
라는 안내와 함께 교실로 이동하여 수업도 보며 직업훈련을 받는 학생들과 함께 목걸이를 만들며 이것저것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을 도와줬다. 같은 나이라고 했지만 키가 작거나 지적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마냥 어린아이들로만 생각됐다. 학생들은 목걸이에 여러 가지 플라스틱 보석을 꼈지만 판매할 정도로 예뻐 보이지 않았고 대화도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니 대화를 안 했다. 그들이 말을 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행동으로만 "이거? 이거?" 라며 넘어갔다. 그들의 옷차림이 그다지 깨끗하거나 깔끔하지 않다 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더럽고 지져분하다'였고 뒤따라 오는 편견은 '가난하다'였다.
"가난하니까 옷도 더러운 것만 입고 지저분하지"라는 일방적인 편견은 정말 오랫동안 지속됐다. 주변에 장애인을 보면 행동이 느리거나 의사표현, 소통이 안되니 답답했고 그런 그들은 사회생활이 어려우니 돈을 벌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돈을 못 버니까 당연히 '가난하다'라고 확신했다.
물론 이런 편견은 너무나 쉽게 깨졌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돼보니까 아이들의 옷차림은 생활수준과는 전혀 관계없었다. 아무리 아침에 말끔하게 좋은 옷을 입혀도 첫째님이 이것저것 옷에 뭔가를 묻히거나 길가다 바닥에 드러눕거나 흙이 있으면 손으로 만지면서 쉽게 옷차림이 흐트러지거나 더러워지니 소용이 없었다. 첫째님의 특수학교에 직업훈련 중인 장애인 바리스타가 있는데 커피를 추출하고 제조하는 걸 보면 조금 느리기만 할 뿐 돈을 버는데 크게 무리는 없어 보였다. 장애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들어가 보니 나의 편견은 너무 쉽게 깰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남들은 내 아이를 어떻게 볼까?", "내가 가졌던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을까?"
첫째님이 병설 유치원을 다닐 때 아침 등원을 내가 하고 출근했었다. 8시 50분까지 유치원에 도착해야 했고 그 시간 때에 많은 차들이 와서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첫째님을 등원시키면서 다른 부모들에게 인사를 하다 은연중에 다른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고 그들이 어느 차에서 내리는지 보게 됐다. 차를 보며 바보같이 경제 수준을 판단해버렸다. 그리곤 우리 차를 바꾸게 될 시기에는 주제넘게 수입차를 알아봤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편견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유지도 못할 그런 수입차들을 시운전하고 견적을 받고 프로모션과 현금 할인을 알아봤다. 하지만 대출을 내서, 프로모션을 받아서 차는 어찌어찌 살 수 있다 치더라도 유지하다간 카푸어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그런 수입차에서 우리 첫째님이 내린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나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하는 것밖에 안됐다. 제도의 장벽은 있어도 장애아이에 대한 편견은 적어도 병설유치원 다닐 때만큼은, 또래 친구의 부모님들에게는 없었다.
수입차를 사는 것은 다른 부모가 우리의 삶이, 우리의 경제 수준이 '가난하다'라는 평가를 못하도록 과시하려는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수입차에 대한 미련은 말끔하게 지웠다.
아내의 장표를 다시 봤다. '장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여기에 정답은 없지 싶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최고의 답은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였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이 없고 장애가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며 장애의 삶이 도움이 필요하지 동정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게 만든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은 장애에 대한 생각이 딱히 없어지지 않을까.
'비장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이라고 질문하면 아무 생각 없듯 장애 역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회가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있으니 장애인에겐 삶의 여러 부분에 장애물이 있다. 만일 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와 환경이 구성된다면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닐 것이다. 그런 세상에선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고 누구나 추가적인 지원 없이 살 수 있다. 감춰야 했고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장애인들이 이젠 도로를 활보하고 더 세상 속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만 261만 명의 장애인들이 더 이상 소수라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