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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y 06. 2021

나쁜아이 아니야!

아빠말을 듣고 안듣고가 중요하지 않아!

두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고 있다. 취업 전까지는! 그게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보니 주양육자가 아내에게서 내게로 왔다. 장애가 있는 첫째님의 재활치료를 책임지며 동시에 비장애 둘째 놈과도 놀아줘야 하니 하루가 참 바쁘다. 삼시세끼 다 차려줘야 하니 더 바쁘다. 그런데 집안일이 또 남아있다. 더 더 바쁘긴 싫어서 깔끔하게 집안일은 포기하며 산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대에 널기는 하지만 정리를 하지 않고 아내한테 맡긴다. 포기한 집안일은 아내한테 미루는 대신 아이들 양육에서 만큼은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어린이날 전날에 어린이집에서 행사를 했다. 원하는 옷은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날이라 둘째 놈은 언니의 분홍색 샤랄라 드레스를 입었다.

아내가 육아할 땐 어린이집에 드레스나 치마류는 절대 입혀서 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화장실에 가거나 활동할 때 치마를 밟고 넘어지기도 하는 등 불편하기도 하고 교사가 수많은 아이들을 컨트롤하기에도 벅찬데 치마를 입은 아이들이 많다면 더 손이 가야 하니 나름 교사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예쁜 치마나 드레스를 입고 오는 걸 본 둘째 놈은 언제나 드레스를 외친다. 아침에 일어나면 치마부터 입는다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원피스와 샤랄라 치마를 입는다. 양육권이 내게로 오면서 한주에 한 번은 드레스코드를 허용해줬다. 절대 안 된다는 아내의 말에 주눅 들어있으면서 몰래 와서 드레스 입고 싶다고 하니 한 번은 입혀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입혀 보냈더니 맨날 등원 때 선생님들을 봐도 쭈뼛쭈뼛하던 아이가 90도로 아주 큰 목소리로 인사와 함께 치마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입혀 보내길 잘했다 생각 들었다. 하원 때 "드레스 입혀서 죄송합니다"라고 했지만 선생님들은 쿨하게 전혀 상관없다고 하셨다.


어린이날 행사날이 왔고 합법적 드레스코드가 허용되다 보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안방으로 뛰어와서는 배고프다며 날 깨웠다. 다른 이유로는 절대 안 일어나기 때문에 배고프다고 하면 감은 눈을 뜨지 않을 뿐 알아서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잘 알기에 배가 안 고파도 고프다고 알람처럼 깨웠다.

밥을 먹고 언니의 예쁜 샤랄라 분홍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최근 겨우 마스터 한 양갈래 묶음을 해주니 기분이 우주를 뚫고 날아가셨다. 비가 왔기에 차에 태워서 등원을 하는데 둘째 놈이 물어봤다.

"아빠! 나 말 안 들었어? 나 나쁜 아이야?"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 앞 공원에 놀러 갔다. 첫째님과 둘째 놈의 손을 붙잡고 놀러 가면 내 모든 신경은 아무래도 첫째님에게 가다 보니 둘째 놈이 소외되었다. 그게 미안해서 여태껏 다섯 개가 넘게 망가뜨린 버블건을 다시 하나 사서 둘째 놈의 손에 쥐어주면 정말 혼자서 잘 놀았다. 그 사이 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첫째님을 케어했고 신나게 비눗방울을 쏘는 둘째 놈에게 그나마 덜 미안했다.

비눗방울을 쏴대니 여기저기 흩어졌던 아이들이 튀어나왔고 그들의 부모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뒤를 이어 튀어나왔다. 그중 남자애 한 명이 너무 하고 싶었는지 둘째 놈에게 버블건을 빌려달라고 했고 우리의 인재상인 '베풂'에 따라 빌려줄 것을 둘째 놈에게 권유했다.

신이 난 남자아이는 10분이 넘도록 비눗방울을 쏴대니 둘째 놈이 슬슬 삐치기 시작했다. 얼른 돌려달라면서 말을 했지만 매우 신이 난 남자아이는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버블건을 발사했고 결국 그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당장 돌려주라고 경고했지만 여전히 말을 안 듣고 도망 다니는 그 아이에게 최후의 발언을 날렸다.

"할머니 말 안 들었지? 집에 가자! 어서!"

그리고선 신이 난 남자아이에게 다가가서 버블건을 빼앗아 둘째 놈의 손에 쥐어주고선 집으로 갔다. 둘째 놈은 버블건을 받아서 좋았지만 같이 놀던 남자아이가 할머니 손에 끌려서 집에 가는 걸 보면서 같이 놀 친구가 없다면서 서운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조금 충격적이었는지 나한테 말했다.

"아빠! 나 말 안 들었어?"

"둘째 너는 말 잘 듣지!"

"근데 왜 친구는 말 안 들었어?"

이유야 버블건이 너무 재밌으니까 할머니 말을 못 들었을 수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갔나 보다. 그리고 한 달이 다되어가는 데에도 왜 친구가 말을 안 들었냐며 물어봤다. 가끔 내 말을 안 들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물어봤다.

"아빠! 나 말 안 들었어?"

"응! 지금 아빠 말 안 들었으니 아빠 목소리가 커지지!"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면서 울먹였다. 할머니가 그 친구를 집에 끌고 가듯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내가 자기에게 할 것 같아 두려운 건지 눈물부터 흘렸다.


갑자기 말을 안 들으면 나쁜 아이냐고 물어보는 둘째 놈에게 말을 안 들으면 나쁜 아이라는 건 누가 알려준 건지 모르겠지만 대답을 했다.

"아니! 말 잘 들었어! 그리고 아빠 말 안 듣는다고 나쁜 아이 아니야! 그렇다고 말 잘 듣는다고 꼭 착한 아이도 아니야!"


부모님의 말을 안 들으면 당연히 행동을 재촉하도록 언성이 높아지거나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말을 안 듣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잘 들으면 마음이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없기에 이해 못하는 둘째 놈에게 말했다.

말을 듣건 안 듣건 넌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이야!"


대부분 말을 잘 안 듣는 둘째 놈에게 "아빠 말 안 들으면 아빠도 둘째 네 말 안 들을 거야" 라며 하면 안 되는 협박을 많이 했지만 내 말을 듣고 안 듣고에 따라 착한 아이, 나쁜 아이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으랴!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인생 경험이 더 많은 부모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야 하니까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경험한 인생 경험이 아이의 인생 경험이 될 수는 없다. 지금 같은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더 부모의 경험이 모든 것에 정답일 수는 없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그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 역시 부모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다.

그 선택권이 사회에 악을 행한다거나 반인륜적인 것이 아니라면 분명 존중해줘야 한다. 기껏 오늘은 드레스를 입고 간다거나 친구가 이런 장난을 쳐서 밉다고 하는 정도이니 충분히 아이의 의견을 듣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면 된다. 기분이 어땠는지, 용서할 수 있는지,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건지.

인생 경험이 많으니까 어른인 부모에게 해결책은 항상 있다.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지시대로 행동하면 말 잘 들어서 착하다고 칭찬하기엔 무언가 좀 이상하다. 말 잘 들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게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엔, 착하고 나쁘고를 나누기엔 기준이 애매하다. 어차피 사회에서 정해준 법의 기준, 도덕적 기준은 어딜 가나 잘 나와있고 크리스천의 삶으로 사는 기준은 성경에 모두 적혀있으니까!

문제는 그 기준을 알려주고 그대로 실천해 나가는 부모의 모습이다. 알면서도, 때론 모르고선 그 기준들을 무시하고 살지 않았나 계속 되돌아봐야겠다.


아이들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잘못 알려준 어른들 때문에 나쁜 아이가 될 수는 있다. 그러니 오늘도 조심해야겠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아이가 기준을 잡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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