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갖춘 자는 거만해 보여도 겸손하다!
2020년 10월 7일.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오전 근무 후 집에 오는 길에 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4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로부터 작가로 선정됐다는 메일이었고 한방에 성공한 아내한테 나도 브런치 작가라고 자랑질을 한 지 1년이 됐다. 맥시멀 리스트인 난 그걸 기념하기 위해 아직 메일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 나에게 나름의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시작한다면 그에 맞춘 기념일이 생긴다. 결혼을 했으면 결혼기념일이 1년마다 생기고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응당 1년마다 기념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브런치 작가들을 살펴보니 작가 1년 차가 됐다면 반 의무적으로 기념글을 쓰는 걸 봤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야지'라며 1주년을 넘기려 했는데 최근 일어난 몇몇 사건들 때문에 1주년 기념을 핑계로 반성해야 할 마음들을 위해 처음 브런치에 썼던 글을 읽어봤다.
처음 썼던, 그리고 2~3개월 차에 썼던 글에선 참 독특하고 기발한 주제와 생각들이 많았다. 재밌기도 했고 기억에 있던 모든 걸 쏟아내려 머릿속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나갔다. 웃음을 주려는 단어 선택과 웃기려고 작정했던 문장들이 많아서 한 번쯤은 재밌게 볼 수 있었지만 문맥도, 주제도 없다 보니 두세 번은 읽기엔 좀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그땐 매일 하루에 한편씩 올리면서 머릿속 기억의 퍼즐 조각만 쏟아내는 것에 열중했고 아내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냐며 열심히 글 쓰는 내 모습을 신기해했다. 어떤 날은 12시가 넘은 줄 모르고 쓰다 보니 적당히 하라는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 들었다.
한창 글 쓰는 재미를 붙이다 보니 다른 작가들을 관심작가로 등록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댓글과 라이킷을 날렸다. 참 재밌었고 즐거웠는데 어느 날부터 라이킷과 댓글 달기를 멈췄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건 인생사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의무로라도 그렇게 해야 습관이 될 수 있고 이 좋은 습관은 분명 한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의무라는 압박감에 의해 타 작가들의 글을 읽게 됐지만 라이킷과 댓글마저도 의무로 하게 됐다.
의무로 하는 게 과연 그 글에 대한 공감을 통한 라이킷과 댓글인지 아니면 그냥 내 글을 읽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위한 댓글과 라이킷 인지 기준이 모호해졌다.
적어도 내가 브런치에 기대했던 건 다른 SNS와 다르게 글쓴이의 생각, 가치관 등 작가가 추구하는 걸 공감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천차만별적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거나 사람 사는 게 비슷비슷하다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킷과 댓글을 의무로 달면서 점점 수단으로 변했다. 읽지도 않은 채 라이킷을 준다는 건 작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내 글도 좀 읽어주세요, 난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표면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글 한편 쓰려고 수많은 생각과 고민, 정보를 찾아보며 몇 번의 퇴고를 한 그 행위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나에겐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점점 용납할 수 없는 거짓이 돼버렸기에 댓글과 라이킷, 관심작가 추가를 중단했다.
1년간은 솔직한 글만 쓰자, 타인의 글은 내가 읽고 싶을 때 읽고 공감을 하자 라는 나름의 목표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대화의 단절에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도 됐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내 안의 문제였고 다른 작가들은 날개 달듯 정말 잘 쓰고 잘 나갔다.
내 글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글을 쓰다 보니 매일 공장에서 찍어내듯 쓰지 않고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도 찾아보면서 쓰게 됐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전히도 글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웃기려고 썼던 글들이 점점 솔직함에 무게가 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썼던 글들에 비해 정말 글이 주는 웃음의 요소는 없지만 그를 떠나 조금은 정돈되고 한번 웃고 머릿속에서 삭제되기보다 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글들로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누군가에게 해달라고 요청도 했지만 요청만 기다리기보다 라디오에 사연을 내보라는 아내의 글 쓰는 동아리의 강사님의 추천에 겁 없이 사연을 보냈고 6번 정도 사연이 채택됐고 경품을 받았다. 물질적 보상이 주어지니 내 글이 썩 나쁜 편은 아니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내친김에 엑스트라 머니를 벌 겸 수기 공모전에도 도전을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수기 공모전을 들척이며 쓸만한 주제나 도전할 공모전을 간추렸고 그에 맞춰 글을 썼다. 쓰는 과정 중 브런치에 이것저것 마구 써놨던 것들이 참 많은 도움이 됐다.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글과 지금의 생각들을 잘 조합하여 공모전에 제출했고 비록 수상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지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점점 뚜렷해지는 좋은 계기가 됐다.
브런치 1년이 다 되어가는 9월 말에 아빠의 핵심가치를 주제로 한 수기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상금도 있었고 첫 수기 공모전에서의 상금이 현금이라 기분이 좋았는데 그 후 일주일 뒤에 다른 수기 공모전에서 전화가 왔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선 "축하드립니다. 이번 수기 공모전에 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라는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어디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정확하게 수기 공모전을 얘기해주며 내가 작성했던 주제를 다시 듣고선 그제야 진짜라는 걸 알았고 '내심 대상 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현실이 되니까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내 글이 대상이 됐을까? 지원자가 그렇게 없나? 어째서? 라며 끊임없이 의심했다. 상금도 내가 받기엔 과분했기 때문에 기쁨이 커져가는 동시에 의심 역시 계속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심을 멈추기로 한건 나를 뽑아준 주최 측에 계속 의심한다면 그분들에 대한 예의가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기를 읽고 의논하고 몇 번에 걸쳐 다시 읽고 의논하면서 최고의 것을 뽑은 건데 정작 당사자가 "왜? 왜 나를 뽑았어요? 대충 뽑았나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김이 푹 빠질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 기쁜 소식을 아내한테 알렸고 브런치를 소개해준 덕분이라며 받은 상금을 바로 아내 계좌로 송금했다. 수상에 대한 소식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알렸고 장모님은 너무 기뻐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내 꿈 찾겠다고 대책 없이 퇴사했던 게 다시 죄송해지는 마음이 들었고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이려 다른 수기 공모전을 찾아봤다.
쓸만한 공모전이 몇몇 보이는데 그때부터 내가 확인한 건 주제보다 상금이었다. 돈도 받았겠다, 수기 공모전에서 오는 엑스트라 머니가 짭짤하다 보니 사람이 두 번의 수상으로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었다. 대상 상금 먼저 확인하며 주제를 고르는 욕심 많은 한 사람으로 아주 쉽게 변했고 당연히 글이 안 써졌다. 프로 작가라면 분명 상황에 상관없이 멋진 글들을 썼겠지만 난 한없는 아마추어다. 외부환경에 극도로 큰 영향을 받으며 쉽게 흔들린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글 쓰자는 내 취지와 무관하게 '상금 많이 주는 공모전에 글을 쓰자'라는 마음이 커졌으니 당연히 글은 쓸 수 없었고 쓰고 난 글은 너무나 어이없고 기도 안찼고 수많은 거짓말들이 난무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마트폰 하는 게 가장 안 좋다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엔 그만한 건 없었다. 그 시간에 글 더 써야 하는데 사람인지라 글보다 영상이 역시 재밌었다. 유튜브에선 도쿄올림픽에서 핫했던 한일전 여자배구 선수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올림픽이 좀 지났지만 여자배구의 한일전은 나도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의 승리를 축하해줬는데 김연경 선수의 인터뷰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게 바로 연봉에 관한 질문이었다. 기자는 김연경 선수에게 꽤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았냐고 물어봤더니
"에이! 설마 그것밖에 안 받았겠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기자가 제시한 연봉이 꽤 높은 수준인데 그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다른 선수가 말했다면 분명 기사에 딱 좋게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겠지만 김연경이라 전혀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김연경 선수의 태도는 올곧았다. 승부욕, 이겨야 한다는 선수들의 집념에 의해 욕하는 장면이 화면 중 잡힌 것 역시도 광고에 나올 정도로 그녀의 실력과 인성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인정했다. 불합리한 일에 대한 기사는 못 봤고 실력은 최고를 위해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만 있었으니, 그리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이기에 당당하게 저 멘트를 날려도, 얼마를 받는다 한들 응원해줄 것이다.
"에이! 상금이 그것밖에 안돼?"라고 수기 공모전 선택을 하는 내 모습이 갑자기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저 정말 딱 상금 두 번밖에 안 받았는데 거기에 눈이 멀어서 수기 공모전에서 상금 먼저 보고 골라 쓰려했던 내 거만한 모습과 마주쳤다.
최고의 위치에서 피나는 연습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김연경 선수의 연봉 발언과 정말 너무나 대조되는, 실력도 형편없는데 피나는 노력조차 안 하면서 돈만 밝히는 1년 차 브런치 작가라는 게 너무 창피한 순간이었다.
공모전에 입상한 건 감사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솔직함을 토대로 글을 쓰고 싶었고 다양한 주제를 써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운 생각을 하며 즐거운 나라로 여행을 하거나 나만의 생각 감옥에 갇혀 한없이 고뇌하기도 하는,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김정과 상상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고 그 시간이 소중했다.
브런치 1년은 나에게 물질적 보상도, 거만함도 줬지만 가장 중요한 초심과 교훈 역시도 잘 챙겨줬다.
'솔직함과 다양한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과거의 일들을 통한 배움' 이였다. 공모전을 다시 들쳐보며 정말 쓰고 싶은 공모전에 다시 도전 중이다. 상금 내역 표시도 없지만 난 그 공모전에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정보와 생각을 주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생겼고 작성하면서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1년간 또 어떤 계획을 잡고 글을 써야 할지 고민도 많지만 다행인 건 물질적 보상에 대한 집착은 벗어났다. 초심은 잃지 말며 솔직함을 놓치지 말자! 글 쓰는 시간을 즐기며 자유롭게 상상하고 쓰자! 과거의 내 모습을 보며 반성보단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들을 잘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