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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28. 2021

잠시만요! 로또 좀 하고요.

내 아이 잘됐으면 하는 건 어느 부모나 같다지요!

다운증후군이 태어날 확률은 600~800명 중 1명이라고 했다. 이 확률에 우리 첫째 아이는 당첨되어 세상에 태어났다. 출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지만 세상에 나왔으니 책임지고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장애가 있건 없건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지만 비장애 둘째를 키우다 보니 장애가 있는 첫째 아이를 키우는 게 좀 더 어렵고 힘든 건 사실이다. 장애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잘 몰라도 느낌만으로 그들의 삶, 그 가족의 삶이 힘들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장애 아이 키우는 것보다 많이 힘든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가끔은 편할 때가 있다. 한없이 요구하고 놀아달라는 둘째 아이와 반대로 혼자서도 잘 놀며 어떠한 요구나 표현을 하지 않는 첫째 아이는 내가 휴식시간을 가질 때 전혀 귀찮게 굴지 않는다. 그러니 그때만큼은 참 편했지만 이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 '이 아이가 잘 크고 있나'라는 의심이 드는 불편한 마음이 곧바로 따라왔다. 그런 첫째 아이에게 더 드라마틱한 상황이 발생했다. 조금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라는 마음만 갖고 지내다 어느 순간부턴 넘어가기엔 상황이 조금 심각해졌다. 그래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다운증후군이면서 동시에 자폐 스펙트럼에 걸쳐 있었다. 자폐의 확률은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100명 중 1명이라고 한다. 확률적 계산을 해보니 첫째 아이가 나올 확률은 60,000~80,000명 중 1명이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니 그럼 우리 첫째와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한민국 5천만 명 인구 중에 우리 아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600~800명 정도 있다는 건데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그들의 가족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성장시켰을까,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지 않았나, 아니면 그냥 알아서 자라주길 바랬을까.

다운증후군 커뮤니티에는 1,000가구 정도 모여있고 장애에 대한 정보와 삶을 살아가는 일상들을 공유하는데 여기에도 다운증후군이며 자폐 스펙트럼에 걸쳐있는 아이가 우리 포함 5명도 안됐다. 이렇듯 다운증후군 커뮤니티에서도 더욱더 특별한 아이가 돼버렸다. 이렇게 특별함에 특별함을 더했으니 부정적인 생각들을 안 해본 건 아녔다. 왜 아이를 출산하자고 결정했을까 하는 나 자신을 가끔씩 후회하곤 한다. 그 후회한 걸 또 후회하지만 아직도 가끔씩은 후회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 후회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지만 삶의 90%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아이의 장애가 치료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헛된 희망도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치료제가 없으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생각' 정도로 그친다.

10% 정도는 꽤나 현실적이며 희망에 찬 삶을 살고 있다. 3가지의 희망사항인데 첫 번째는 지적능력이 만 1세이며 앞으로 더 커나간다고 한들 얼마나 지적능력이 올라갈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자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언젠가 이 아이도 우릴 떠나 자립할 수 있는 희망을, 그리고 마지막은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앞선 두 가지의 희망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외적인 환경, 사회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에 물리적 시간도 많이 필요로 하며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어렵고 그 속도는 너무 느리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선 투쟁도 해야 하고 삭발도 해야 한다. 특수학교 짓는 것조차 쉽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하며 장애인 국가책임제도가 도입됐다지만 얼마나 변할지는 10년은 더 두고 봐야 한다.

반면 마지막 희망, 로또 1등은 당장 오늘에서라도 될 수 있다. 814만 명 중 1명이 된다는 확률인데 남들한테는 그 정도 확률이지만 우린 첫째 아이의 확률에 당첨됐으니 남들보단 좀 더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왜 로또를 하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돈이 많으면 가족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대답할 수 있다. 사람이니까 물질적 욕심이 생기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로또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이의 장애와 관련이 매우 깊다.

각성 조절이 잘 안되고 집안에서 달리거나 위로 뛰고 발코니 창문에 매달려 방충망을 두둘 기며 소리를 지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관경을 본다면 '집에 갇혀있는 저 조그만 아이가 살려달라는 요청을 한다'라는 오해를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층간소음이 발생하여 아랫집에 피해가 이만저만도 아녔다. 많은 비용을 들여 소음방지 매트를 거실 전체에 시공하는 수준으로 설치했건만 가끔씩 아이가 뛰는 게 시끄럽다며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 돈을 들였으니 그 정도 소음도 못 참으시나?’라는 내 이기적인 마음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첫째 아이에게 그만 뛰라며 화내고 소리 지르는 우리의 마음 역시 속상했다. 1층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도 이사를 가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사교육비가 비싸듯 사설 재활 치료비용은 만만치 않다. 어쩌면 학원 보내는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주면서 치료를 해야 했고 유명한, 이름난 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대기도 1~2달은 기본이며 1년이 넘는 곳도 많다. 자라면서 치료 종류도 많아지고 점점 치료비로 나가는 비용이 커지니 돈이 필요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긴 하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이 모든 것들을 당장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1층 집으로, 아니 아예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다. 방 하나는 더 이상 방충망을 두둘 기지 않도록 늑목과 그네를 설치하겠다. 커다란 강아지를 입양하여 첫째 아이와 함께 놀아주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보낼 수 있다. 이름난 센터에 대기를 걸어도 되고 여차하면 집으로 치료사를 부를 수 있다. 비싼 치료도 원 없이 해줄 수 있으니 그렇게 된다면 모든 아이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에만 투자를 할 수는 없다. 비장애 둘째 아이한테는 첫째의 삶과 관련 없이 본인의 꿈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을 해주고 싶다. 그런 계획을 세우다 보면 참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 어느샌가 로또에 대한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이며 진심으로 변했다. 집 구매 비용, 치료비 연 지출 비용, 치료에 필요한 인테리어 시공 비용, 겨울에 각성 조절 안되니 연간회원권 끊을 수 있는 테마파크 비용, 크고 안전한 차 구입 비용, 둘째에 대한 사교육 비용 등등으로 세부 계획을 세우고 나니 절대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로또 되면 회사를 취미로 다닌다고 하던데 우리에겐 로또에 당첨된다 한들 정년까지 열심히 회사를 다녀야 했다. 현실적이지만 꽤나 즐거운, 헛된 희망 같으면서도 이뤄질 것 같은 희망이 돼버리니 주마다 로또를 사면서 참 즐거운 상상을 했다. 로또가 안된다고 해도 매주 로또를 사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 역시 재밌다.


이렇듯 장애인 가족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비장애 가족과 다른 삶을 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차이는 없다. 부모의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 아이 좀 더 잘 됐으면, 내가 좀 더 벌었으면, 우리 가족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그 마음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장애아이가 좀 더 힘들고 좀 더 늦게 자라거나 좀 더 도움이 필요한 것뿐이다. 하지만 사회의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도 차이가 난다. 점점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지만 당장의 편견을 없애기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인식개선과 제도가 병행하여 잘 진행된다면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은 점차 길거리로 나올 수 있다. 첫째 아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600~800명의 사람들도 지금보단 만나기 쉬울 것이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용기를 줄 수 있다.

재활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는 바우처를 제공받아 내지만 장애인이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부모의 품에서 떠나 자립하여 독립된 존재로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당장의 치료비에 들어가는 세금의 투자는 훗날 확실한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부부는 로또 사는 걸 그만둘 것이라 거짓말도 해볼 수 있다. 돈 욕심은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다면 로또를 포기하고 좋은 환경을 선택하고 싶다.

장애인 부모가 슬픈 건 "내가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이다. 내가 없으면 이 아이 누가 책임질까? 누가 돌봐줄까? 굶어 죽지 않을까?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삶을 잘 살아낼까? 이런 수많은 고민들이 저 짧은 문장 하나에 내포되어있다.

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죽어도 전혀 상관없겠다’라는 사회가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로또에 기대하지 않고 아이의 삶에 기대하고 싶은 그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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