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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8. 2021

나도 칭찬해줘!

균형은 노력해도 깨지기 마련!

2021년 5월 24일 부로 백수에서 직장인으로 변신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들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들어줬다. 여름엔 동물원으로 동물 보러 가기보단 리프트를 타러 갔고 주말마다 키즈카페를 가던지, 여행을 가던지 했다. 백수였을 땐 한 푼이라도 아끼려 마트에서 아이쇼핑만 하고 나만 재밌는 공원이나 산으로만 갔었는데 말이다. 사람이 소비를 위해 태어난 동물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돈 쓰는 재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비는 과소비임에도 그걸 잊게 할 만큼 쉽고도 즐겁다.

백수일 땐 둘째 놈의 하원 시간에 맞춰 가면 이미 하원한 친구들과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게 했다. 때론 근처 공원으로 놀러 가자며 그들을 하원 시키는 할머니들과 함께 놀러 가면 애들끼리는 신나게 놀고 할머니들과 수다 아닌 수다 삼매경에 빠지면서 남의 아이들이나 우리 둘째 놈이나 자라는 게 비슷비슷하며 말 안 듣는 건 비단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위로를 받았는데 이젠 그럴 대화를 나눌 할머니들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오는 알림장에 사진들을 보며 무슨 활동을 했는지만 알 수 있었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짧은 30분 정도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뭘 했는지, 어떻게 보냈는지, 괴롭히는 친구는 없었는지, 발레학원은 재밌는지 하는 4개 정도의 물음에 대답하면 놀아달라는 녀석에게 온몸을 던져 10분만 놀아주면 9시가 훌쩍 넘어갔고 바로 재워야 했다.


6살, 자아는 엄청나게 성장하여 말은 안 듣고 자기 할 말, 답정너, 아빠는 또 하나의 테마파크이자 호구로 아는 저 녀석이 가끔씩은 어른보다 훌륭한 말을 할 때면 '언제 이렇게 컸지?' 라며 놀라움과 함께 언젠가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미래를 상상한다. 20년 뒤의 일이지만 필연적으로 올 상황이고 그때가 된다면 난 무엇을 하며 지낼까 라는 두려우면서 즐거운 상상 또한 덤으로 하게 된다.

둘째 놈이 컸다는 또 다른 증거는 휴대폰에 저장된, 클라우드에 수천 개는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이다. 휴대폰에서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며 알림이 떴고 저장공간 확보를 위해 동영상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면서 영상을 하나씩 봤다. 언젠가 보겠다며 처박아둔 것들이 수십 개는 튀어나왔고 불과 1년 전의 영상과 지금의 둘째는 너무도 달랐고 행동은 더 또라이가 됐다.

그렇게 영상을 보다 4살, 3살의 영상을 보면 세상 귀엽고 말 잘 듣는 둘째 놈이 나왔다. 내 딸을 그리 귀여워하지 않지만 그때의 영상을 보면 왜 이렇게 귀여운지 자꾸 영상을 되돌려 본다. 그럼 쥐도 새도 모르게 둘째 놈이 어깨에 매달려 자기 모습을 보곤 똑같이 흉내 내지만 6살이 4살 흉내 내는 건 너무 징그러웠지만 그만큼 둘째 놈이 많이 컸다는 걸 단번에 느끼게 해 줬다.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고 칭찬을 해달라는 저 아이, 첫째님이 식판을 싱크대에 갖다 놓으면 떠나가라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칭찬해줘" 라며 똑같이 갖다 놓는 둘째 놈. 100분의 1 확률로 변기에 소변을 본 첫째님을 끌어안고 신나게 칭찬하면 "나도 칭찬해줘" 라며 나오지도 않는 소변을 보려고 애쓰는 저 둘째 놈. 아침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기 위해 첫째님을 힘차게 깨우지만 알아서 일어나는 둘째 놈을 깨우지 않으면 "나도 깨워줘" 라고 말하는 저 아이.

어쩌면 우린 첫째님의 장애 때문에 둘째 놈을 내팽개쳐두고 첫째님에게 집중하지 았나 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둘째 놈이 무사히 쑥쑥 자라고 있음을 느낀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스케치북이 없다고 자꾸 비싼 A4용지에 그림을 그리는 걸 나무랐지만 그림에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 웃고 있었다. 그들이 웃고 있음은 다행히도 아직은 둘째 놈의 마음이 행복하다는 결과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제법 대화가 되니 말장난도 치고, 고집부리는 둘째를 혼낼 때도 많지만 맛있는 거 하나 더 얹어주고 아내 몰래 과자와 초콜릿 왕창 주기도 하며 그저 둘째 놈이 좋아하는 걸 더 해주는 게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두 아이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기란 너무 어렵다. 시소에 두 아이를 태우고 가운데 서서 균형을 잡았지만 잠시 방심하면 한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그럼 다시 균형을 잡아야 했고 균형 잡기보단 한쪽씩 번갈아 가면서 기울이는 게 더 쉬웠다.

두 아이 양육이 참 시소랑 비슷했다. 한 명에게 관심이 쏠리면 곧바로 한 명은 소외돼버리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첫째님도 그게 억울했는지 가끔은 둘째 놈의 머리끄덩이를 쥐어뜯어 한 뭉텅이나 뽑는 걸 보면 혼내면서도 씁쓸했다.

세상 쉬운 건 없듯 양육한다는 건 뜻대로, 맘먹은데로 안 되는 걸 인정해야 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되, 그래도 최선을 다 해본다.


그냥 20년 뒤에 "아빠가 그때 이래서 재밌었어" 라는 말 한마디만 듣는다면 잘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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