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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r 10. 2022

특수학교에 간 첫째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면 표현이 된다.

첫째님은 중복장애를 갖고 있다. 로또보다 좀 낮은 확률이지만 다운증후군 이면서 자폐 스펙트럼에 잘 걸쳐있다. 요즘 또 레트 증후군이라는 교과서에서도 못 봤던 증후군이 아닌가 의심도 된다. 풍년도 이런 풍년이 없구나. 장애마저도 풍년이라니!

첫째님은 언뜻 보기엔 중증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손잡고 걷기도, 혼자 뛰기도, 사람을 쳐다보기도 한다. 먼저 시비를 걸지 않고 누군가를 때리지 않는다. 물론 꼴 보기 싫은 둘째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적은 2,3번 있었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키울만하잖아!'라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아이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하다. 지적능력이 만 1세, 이제 막 돌 지난 아이정도 여서 숟가락과 포크 구별이 어렵다. 밥을 숟가락으로 먹으면 반찬도 숟가락으로 먹는다. 포크를 쥐어주면 숟가락질을 한다. 숟가락 쥐어주는 연습을 아내가 몇 년을 알려줘서 겨우 하게 됐지만 포크와 구별하기 어렵다. 밥 먹다 숟가락 흔들고 얼굴에 밥풀 묻으면 얼굴 전체를 문지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어려워진다. 내가 죽는다면 이 아이는 어떻게 밥을 먹을까. 아니 그냥 굶어 죽겠지 라는 생각만 한없이 들뿐.

옷은 전혀 혼자 벗질 못한다. 모든 걸 다 도와주는 걸 넘어서 해주다시피 해야 할 수 있다. 자조는 꿈도 못 꾼다. 더럽다, 먹지 못한다 라는 인지도 없고 이제야 높은 곳이 위험하단 걸 인지했지만 차도는 위험하다는 걸 모르니 밖으로 돌아다니면 항상 손을 꼭 붙잡아야 한다. 이런저런 것들 그래 다 참을 수 있다 치더라도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수면이었다.

여름과 겨울이 되면 우리 부부에게 가장 두려운 시기이다. 첫째님은 한창 더운 여름과 한창 추운 겨울엔 각성 조절이 안된다. 둘째 놈은 계절에 상관없이 잘 시간이 되면 차분해지거나 미친 듯이 놀다 쓰러져서 기절하고 다음날 잘 일어난다. 하지만 첫째님은 한겨울, 한여름엔 혼자 깔깔거리며 웃기도, 입에 거품을 물면서 뛰어다니기도 한다. 한낮이라면 거품 물고 뛰는 거야 수건으로 닦아주면 되고 웃는 모습이야 보기 좋지만 문제는 잘 시간이 다되어서도 깔깔 웃고 집안을 마구 뛰어다닌다. 각성이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결과였고 그런 날은 우리의 예측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 예측은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다.

9시에 잠을 자면 새벽 2시~3시 사이에 첫째님이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안 잔다. 보통은 잠에서 깰 경우 20~30분 이면 다시 잠을 자겠지만 이 아이는 각성이 순식간에 올라가서 혼자 웃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럼 아내와 난 눈치게임을 하고 결국은 내가 나가서 첫째님을 억지로 눕힌다. 한 달에 한두 번이라면 참겠지만 한여름, 한겨울엔 3일에 한 번꼴로 새벽에 일어난다. 아주 정확하게 3일에 한 번꼴로!

수면이 부족하면 암에 걸린 위험이 높아진다는 얘길 들었다. 3일에 한 번꼴로 2달 동안 지속됐을 때 내 머릿속에 암덩어리들이 정말 무한대로 존재한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난 첫째님이 다시 자기 어려워서 괴롭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도 피곤하니까 결국 아이에게 화를 냈다. 억지로 눕히고 힘으로 제압했다. 자기 힘들어서, 각성이 떨어지지 않아 저럴 수밖에 없는 첫째님의 입장보다 내 수면이 너무 부족해서 예민해지고 힘드니 입장을 바꿀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난 첫째님의 방에서 아이를 눕히고 정말 나쁜 상상을 수없이 하게 된다. 우선 왜 아이를 낳게 했냐며 하나님을 원망하다 못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넌 왜 태어났냐며 이 모든 힘듦의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낳기로 결정한 나 자신을 한없이 책망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 7시가 되면 첫째님은 슬슬 잠을 자려고 하고 이대로 자면 오후 일정이 엉망이 될 수 있어서 사정없이 깨웠다. 잠이 부족한 상태로 회사에 가면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 빈속의 모닝커피가 속에 그렇게 안 좋다지만 안 마시면 내 정신상태가 썩어빠질 것 같았다. 커피를 연신 마시며 정신이 좀 깨면 그제야 간밤에 내가 했던 모든 생각을 후회하고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자고 반성하고 다짐했지만 3일 뒤면 어김없이 일어난 첫째님을 눕히고 또 똑같은 챗바퀴만 굴렸고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보냈다.

2022년 1월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분명 또 3일에 한 번꼴로 일어날 것이다. 방학이라 외출도 제한적이라 더 각성이 올라갈 것이고 그럼 또 저주와 반성, 후회를 계속할 게 뻔했다.

그러나 올 겨울은 초반부터 이상했다. 12월에 첫째님이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다. 1월엔 간간히 일어나긴 했지만 3일에 한 번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난 아이가 몇 번은 1시간 뒤에 잠을 잤다. 30일 중에 10번은 새벽에 일어났던 첫째님이 이번 2달 동안 새벽에 일어난 횟수는 10번이 채 안됐다.

우리 부부의 수면 부족이 사라지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 그리고 작년보다 각성 조절이 잘 되는, 조금 더 성장한 첫째님이 너무 고마웠다. 내 눈으로 확인한 아이의 성장한 모습에 나 역시도 성장을 하고 싶었다. 그 성장은 바로 양육방식에 대한, 양육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였다.


아내는 이미 양육훈련을 통해 첫째님과 소통을 할 줄 알았다. 뭉개진 단어로 표현하는 아이의 말을 알아듣고 눈치로 아이가 원하는 걸 파악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런 표현과 행동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몰랐고 그저 우연의 한마디나 표현이라고 넘겨짚었다. 아내는 계속 아이가 나한테 너무나 많은 것을 표현한다고 했지만 난 전혀 아니올시다 라며 아이의 표현을 무시했다.

계속 아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며 한 단어라도 표현한 아이를 칭찬하는 아내와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나, 우리 둘 사이의 양육방법은 조금 차이를 보였다. 처음엔 아내의 반응이 거짓말 같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아이의 표현을 이해하려는 저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내 양육태도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장, 아내의 소통 이 두 가지에서 결론은 내 양육태도의 변화였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듯 첫째님 역시도 눈부신 성장은 아니지만 성장할 수 있게 양육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고 아내가 하고 있는 저 양육훈련을 귀등으로 들었던 나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아내가 배웠던 양육훈련이 수강생 모집을 하게 됐고 서둘러 신청을 했다. 선택된 소수의 가정만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 시간에 양육훈련을 배우고 있다. 이제 막 2번의 훈련을 받았지만 가장 내 마음속을 울리는 강사님의 말은 "무의미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주세요" 였다.

아이의 저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 그냥 넘어간다면 정말 의미가 없겠지만 그 행동에 내가 반응을 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회사에서 그렇게 들었던 "믿는다, 인정한다, 확신한다"를 어느 순간부터 아예 잊고 살다가, 아니 비장애 둘째 놈에게만 어쨌든 재능을 잘 찾아보자 라며 현미경을 들이대며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뿐 첫째님은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몸으로만 놀아주자 라며 넘어갔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여기저기 부족한 것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갔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훈련 잘 받고 첫째님의 앞날을 위해 나도 변하고 첫째님도 조금 더 성장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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