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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1. 2022

뭐하니?

삶이 바빴지. 근데 우선순위가 밀려났지.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다.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210일이 됐다고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언제 봤다고, 언제 우리가 그만큼 친했다고 글 안 썼다고 210일 만에 못 봐서 아쉽다고 우는소리냐!

어쨌든 AI로든 뭐든 브런치라는 기계가 우는 소리로 본인의 감정을 표현했는데 그냥 넘어가자니 뭔가 찜찜했다. 4차 산업시대라는 단어도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을 지금의 시대에도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낱 그걸 표현하는 게 로봇이라도 말이다.



회사 총무로 1년 거의 다 돼간다. 사업부 경력만 잔뜩 쌓였지 총무 경력은 제로인 내가 부서를 이동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특별한 행사나 이슈가 없으면 칼퇴를 할 수 있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다는 말이다. 가정을 중시하게 됐고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자리 잡게 됐다.

생각보다 이 패턴이 나에게 오는 의미는 컸다. 규칙적인 삶의 패턴을 지루해하고 따분해하던 나였는데 오히려 그 생활에 감사함을 느꼈다.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다 재워주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 확보된다. 하루의 마무리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잘 마무리하면 다음날 또 다른 기대되는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변칙적인 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규칙적인 게 이젠 더 좋아졌다. 근데 그렇게 규칙적인 삶을 살다 보니 좋지 않은 습관은 매우 쉽게 생겼다. 분명 나만의 시간에 글 쓰자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좋아했던 게임방송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마침 코로나도 슬슬 풀리면서 전국 게임대회가 시작했다.

나름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팀이 생각보다 경기를 잘 운영하면서 기대를 하게 됐고 한국 대표팀을 보다가 그만 다른 팀 경기까지 꼬박꼬박 잘 챙겨봤다.

글쓰기 취미는 아주 쉽게 사라지고 게임을 보며 응원하는 짜릿함을 느끼며 내 뇌는 그만 글쓰기를 까먹게 됐다. 

40대는 근육이 매년 1%씩 감소한다고 하더라! 어느 날 장례식장 가려고 입으려던 정장, 30대에 좀 크게 입었거나 핏이 딱 맞게 입었던 정장이 잠기질 않았다.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이미 배 나온,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배 나온 아저씨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나'였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규칙적인 삶에서 주는 교훈을 지금 낭비하고 있던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이미 뿌리 깊게 박혀버린 이 안 좋은 습관들을 어떻게 없애야 하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휴대폰에서 게임방송을 보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건 또 아내였다. 결혼 전엔 몸이 좋아 자랑질했던 남편이 이젠 키 작고 배 나온 아저씨가 되는 게 싫은 건지 슬픈 건지 어느 날 나한테 말을 했다.

"여보! 운동하는 건 어때?"


운동을 하고 싶었다. 20대 때 열심히 했던 그 운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호주 워홀 때 어깨 쪽 근육을 다쳐서 어깨 운동을 할 때 통증이 심했다. 그 핑계를 계기로 하지 않았지만 나도 내 배를 보면서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운동만 시작하면 다시 20대 그 시절의 몸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조금만 운동하면 바로 장난 아닌 몸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만 늘어날 뿐!


아내의 권유가 마침 내가 생각한 것과 딱 맞아서 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은 애들을 다 재운 나만의 자유시간에!

9시 반쯤 되면 아이들이 모두 잠을 잔다. 아내의 허락을 받고 운동을 하러 갔다. 첫날부터 무리하게 20대에 내가 했던 운동 루틴을 생각하며 러닝머신에 올라 인터벌을 시작했다.

5세트 정도 기본으로 했으니 3세트 정도만 하자며 인터벌을 하고 2세트도 못하고 내려왔다. 정신이 혼미하고 토할 것 같이, 피 냄새가 입에서 퍼졌다.

그제야 정신만 20대였지 현실판 40대의 저질체력을 실감하게 됐다. 밴치 프레스는 기구를 들고 할 엄두도 못 냈다. 이것저것 조금씩 깨작깨작 하다 보니 무슨 운동 했는지도 모르겠더라! 근데 다음날 일어날 수 없었다. 뭔가 심하게 운동한 것도 아닌데 근육통이 상당했다. 물론 이런 근육통이 있어야 근육이 생성된다며 아내한테 쓸데없는 자랑질을 했지만 운전대에 손 올리는 것조차, 액셀을 밟는 허벅지 근육조차 다 터질 것만 같았다.


아재를 탈출해야 하는 막중한 나만의 약속, 아내의 약속 때문에 열심히 열심히 운동을 하러 다녔다. 좋은 습관은 들이기 어렵다지만 내가 싫은 건 배 나온 아저씨 몸매여서 기를 쓰고 운동을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땀 흘려 러닝머신에서 세트를 올려가며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만큼은 잡생각, 아니 운동을 하는 그 1시간 반 동안에는 잡생각이 싹 사라졌다.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까지 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70일이 넘었다. 출석률은 60%를 넘기면서 근육도 붙고 자신감도 생기고 안타깝게도 뱃살은 아직 안 빠졌지만 꾸준히 한 것에 대한 결과물들이 몸 이곳저곳에 보였다.

이로써 좋은 습관 하나를 인생 끝까지 한번 갖고 가 보려고 한다.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습관은 잡히질 않았다. 그냥 푸념 쓰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푸념보다 좀 생산적인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쓰고 싶다고만 마음을 먹는 너무 위선적인 생각과 삶의 태도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대표님이 12월 예배 때 직원 인터뷰 때 직원 선출을 하는데 나를 지목했다. 내 삶은 어땠는지, 아이가 장애가 있는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낳기로 결정했는지. 지금의 삶은 어떤지 등등을 물어보면서 나 또한 열심히 대답을 했다.

대답을 한참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리 대답이 술술 나올까 생각해봤다. 그간 내가 글 쓰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했던, 210일이나 안 썼지만 210일 전에 그렇게 열심히 쓰면서 생각했던 내 의견들이 아직 몸속에 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글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때 열심히 다짐하고 글쓰기에 대한 좋은 점들을 말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던 내 모습, 내 글들을 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좋은 습관들이 그간 규칙적인 삶 속에서 너무 쉽게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나쁜 습관이 꿀처럼 달아서 그만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또 우연히 직원 인터뷰에 뽑히면서 잊고 있었던 나만의 생각들이 튀어나오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연일 수 있고, 아니면 누군가의 계획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찾고 잘 잡았다. 매일을 한다고 다짐할 수는 없다. 다만 감을 잃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멀리 보면서 해보면 헬스장 처음 가서 아무것도 못했던 내가 하나 둘 배워가며 근육이 만들어 가듯 쓰다 보면 생각의 근육들이 움직여서 좀 더 유연한 생각과 삶의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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