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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Oct 30. 2020

빠직 1장: 산산조각 난 최고의 아빠

아빠의 험난한 육아휴직 - 빠직 : 최고의 아빠는 개뿔!

2015년 배우자육아휴직 통계 : 4~5% 정도의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함

나는 그 4~5%에 포함된 아빠였다. 하지만 나는 좀 더 특별하다. 첫째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일반 아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뒤처져있다. 그래서 재활치료병원, 선행학습이 필요한 다운복지관, 장애인복지관에서의 재활치료 등을 주마다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고정 시간표가 있었다.

하지만 장애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들 뿐, 불행하지는 않다. 그럼 2015년 내가 썼던 육아휴직 일기를 토대로 작성해보려고 한다.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정각. 아내를 흔들어 깨운다.

"여보 일어나! 회사 가야지"


그렇다. 나는 오늘부로 배우자 육아휴직에 들어간 be the '주부', be the '좋은 아빠'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미션 No.1 : 달콤한 꿈나라에 들어간 아내를 사정없이 깨우자!


하지만 좋은 소리에 일어날 사람은 없다. 역시나 최고의 효과는 윽박지르는 것이다.

"야! 안 일어나?"


역시나 효과는 좋다. 아침부터 짜증 내지 말라고 하는 아내의 얼굴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렇다. 아내는 이제 뚜껑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회사원으로써의 삶, 더 이상 얘가 흘리는 침에 늘어난 티셔츠를 입지 않고 커리워먼 같은 정장을 입을 수 있는, 아니 그냥 '육아 탈출' 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이날 손뼉 치듯 삶이 뒤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잊혔던 서로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연신 뚜껑 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내는 회사에 도착해서 동료들의 환영을 받기도 전에 뚜껑 커피를 들이켜셨다.


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재활병원으로 향했다. 운전하며 가는 길이 낯설었다. 9시 반까지 가야 하는 건 맞지만 뭔가 운전하는 시간이 여유로웠고, 미지의 곳으로 여행 가는 즐거운 느낌이었다.

재활병원에 도착한 후 보호자는 밖에서 대기해야 하지만 우리 첫째는 100일 갓 지날 때부터 받았던 터라 선생님이 같이 들어와서 기저귀나 도움이 필요할 경우 도움 줄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줬다.

첫날이라 뭐가 어떻게 치료가 되는 건지도 잘 모른 체 나 역시도 첫 육아에 대한 즐거움만 가득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어느덧 아내의 퇴근시간이 다 되어갔다.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여보 오늘 하루 어땠어? 퇴근했어? 몇 시에 와?"


하지만 아내의 뜬금없는 통보

"오늘 야근해"


"뭐?? 왜 야근해? 일 못해? 일 못하는 사람이 야근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야근했던 내 모습은 잊어버리고 그저 남이 야근하는 모습에는 냉정하게 평가를 했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기가 돌고 있다. 육아를 탈출했기 때문이다. 퇴근도 없는 육아 탈출 첫째 날이기 때문에 큰 죄를 지은 자들조차 용서가 된다는 몇 안 되는 날이다.


퇴근이 늦어지는 아내를 뒤로하고 난 다시 나에게 말한다.

'그래. 난 그래도 교육회사 다니는 아빠인데 뭐 육아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다짐은 딱 1시간 만에 모조리 산산조각 나버렸다.


다운증후군인 우리 첫째를 그래도 난 일반 아이들처럼 버젓이 키울 자신감을 갖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란 야채는 모두 꺼내와 자르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줬다.

"자, 이건 당근, 이건 오이야. 자르면 어때? 우아 색이 빨갛지? 이건 초록색이고 씨가 있어"


이제 돌이 막 지난 아이에게 이 무슨 알아듣지 못할 용어들을 마구 해대는지 말이다. 그냥 아이가 당근 만지고 오이 만지고 쥐어뜯고 손에 감각을 느껴야 할 시기인데 나는 내 방식으로 만의 교육을 진행했다.

그러다 첫째가 잽싸게 야채를 잡았다. 하필 물이 많은 오이와 애호박이었다.

"앗. 안도~~~~~~오~~~ 에~~~ 에!!!"


나도 모르게 더러움에 대한 방어본능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첫째는 야채를 마구 주무른다. 주무르고 땅에 떨어진 것들을 입에 갔다 댄다. 나는 혼비백산 입에서 손을 뗀다. 하지만 또 입에 들어간다. 반복되는 그 행동에 결국 나의 입에서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먹지 마!!!"


첫째는 영문도 모른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든지 말든지 그저 하던 행동을 계속하고, 말리는 아빠의 모습이 재밌는지 한 손에는 여전히 오이를 쥐어진 채 주물럭 거리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가제수건이 안 보인다. 분명 옆에 놨는데 도대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기저귀 가방을 찾았다. 집안에 보이는 건 첫째의 손에 든 오이 빼고는 어떠한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아오....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국민 기저귀함이 눈에 보였다. 맨 위 에칸에 가제수건을 우리 아내님이 아주 정성 들여 정리해놨다. 얼른 집어 아이의 입을 닦고, 손을 닦고, 바닥을 닦... 아 아니잖아. 바닥은 이걸로 닦는 게 아닌데 하고 물티슈로 바꿔 바닥을 닦았다.

닦은 가제수건과 물티슈를 바닥에 놨더니 첫째의 눈에는 그것이 신기한가 보다. 물티슈를 입에 갔다 댄다.

"아.. 야! 먹지 말라고!"


목소리는 점점 커지다 소리를 지르려고 한다. 딱 1시간 만에 정신과 체력이 다 소모되다 못해 고갈되어버렸다.


"띵동! 엄마 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는 집에 들어왔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어?"

그리고선 내가 다짐했던, 내 꿈이었던 '최고의 아빠'라는 단어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가셨다.

지금 보면 이거 뭐 저지래 수준도 아닌데, 그땐 왜 그리 당황했을까?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자랄 텐데!



몰랐던 육아 용어들

가제수건: 가볍고 부드러운 무명베로 만든 수건 흔희 손수건 형태를 띠며, 유아용으로 많이 쓰인다.

(보통 출산하면 가장 많이 받는다. 선배맘들은 출산 전에 100장 필요하다고 한다. '뻥치네~' 했는데 진짜 100장 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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