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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02. 2023

나는 안 먹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

엊그제 사건 하나가 발생됐다. 연말이라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기 위해 야근을 했다. 그러던 중 아내한테 첫째님이 컨디션이 매우 안 좋다는 전화가 왔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던 업무를 접고 평소 퇴근하던 길로 차를 몰며 전화를 걸어 첫째님의 상태를 확인했다.

학교에서 설사를 했다부터 시작해서 집에 드러누워 있다, 밥 먹다 토할 정도로 기침을 하더니 밥을 거부한다고 했다. 아내 말로는 생선의 가시가 걸린 것 같지만 아침부터 뭔가 첫째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게 결론이었다.

둘째 놈이 아프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지만 첫째님은 8년 전 폐렴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같이 지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서 아무리 사소해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평소 운전 스타일 대로 안전하게 가던 중 신호대기로 정차하려는 순간 룸미러를 통해 뒤차가 거의 부딪힐 정도로 코 앞에까지 정차했다. 왠지 불안해서 차선을 얼른 변경했는데 뒤차도 똑같이 차선을 변경했다. 2차선에서 3차선으로 변경하여 정차했고 신호가 바뀌려는데 뒤차가 4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면서 그만 내 차와 추돌했다.

왕복 8차선의 통행량 많은 도로에 서있자니 차량의 흐름이 너무 방해되어 뒤차에게 바로 앞 골목으로 잠시 들어가자고 했고 골목에서 내 차를 확인해 봤다. 범퍼에는 흠집 정도 이외엔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사고 차주가 내렸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분이 내려서 명함을 주며 내일 보험처리를 하겠다고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봐도 되냐며 물었고 큰 의심 없이 내 명함을 건네고 사고 현장을 나도, 상대방도 떠났다.


첫째님에게 신경이 쓰였는지 세상에 사고 현장 사진도 안 찍었고 그 자리에서 보험에 연락해서 접수만이라도 진행하고 떠나라고 하는 기본 절차를 아예 깡그리 잊고 있었다. 현장을 떠나서야 '아차... 헐..'이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을 뿐이었다.

"여보.. 나 사고 나서 지금...."

"뭐?? 아픈데 없어? 병원 먼저 들려!"

"아.. 어 뒷목 왼쪽이 아프고 아깐 경황이 없어서 머리가 좀 아팠어!"

"야.. 병원 먼저 가라고!"


아내는 극대노를 시전 하며 빨리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밥도 못 먹어 배는 고픈데 첫째님도 신경 쓰이니 내 몸 보다 밥 먹고 아이 상태 확인이 먼저였기에, 보험 접수도 안 됐는데 지금 이 시간에 가봐야 뭐 할 게 있을까 하며 집에 왔다.

다행히 첫째님은 목에 가시가 걸려서 그랬고 컨디션이 안 좋긴 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난 저녁밥을 먹으며 사고 나기 전부터 장황한 설명을 아내에게 했고 다음날 보험접수 되면 병원 간다고 확답에 확답을 하고서야 아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찰리 한! 근데... 증거 있어??"


아차 했던 게 떠올랐다. 내 차 보험사에 전화했을 땐 추돌이고 정차된 상태였다면 상대방 과실이 크기 때문에 상대방에서 보험을 접수해야 한다고 안내받았다. 블랙박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전방은 나오지만 후방이 안 나왔다. 그때부터 슬슬 불안해졌다. 설마... 뺑소니 인가부터 왜 난 증거를 하나도 안 만들어놨지 하며 치료비 어떡하지, 합의금은? 내 차 손상은 어떻게 하지 라며 온갖 잡다한 생각이 떠올랐다.


상대방 명함을 보니 president, 버젓한 기업의 사장님 이셨고 그게 사실이면 당연히 잘하겠지 라며 증거 없는 확신만 갖고 있었다. 회장님이니까... 회장님인데... 에이 설마... 하며 정말 아무 의심 없이 나도 넘어갔던 것이고 아내 눈에는 이 사람이 도대체...라는 한심한 남편이라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역시나 왼쪽 목부터 어깨까지 뻐근해졌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왼쪽 어깨가 아팠다. 상대 차주에게 문자를 보내 보험접수를 요청하고 회사에 출근해서 상급자에게 어제 상황을 설명하며 보험접수되면 병원 좀 들리겠다며 보고를 하고 상대방 연락이 오길 기다렸지만 오전 내내 답문이 없었다.

설마....라는 생각에 업무생각보다 딴생각들이 막 떠오르면서 상대방 명함의 회사를 검색해 봤다. 회장님의 사진을 찾아 헤매며 맞을 거야 를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던지.

이런 답답한 마음을 빨리 끝내기 위해 아예 회사로 전화를 걸어 어제 상황을 설명했고 잠시 뒤 전화가 왔다. 인사팀장이라고 소개를 하며 회장님이 너무 바빠서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 죄송하다며 빠르게 보험접수를 했고 그제야 이 모든 의심과 자책하는 마음을 멈췄다.


주변에선 한방병원을 추천했다. 보험금 많이 타려면 한방 병원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바가지는 기본이고 내 돈 안 들어가니 한약도 몇 첩 마시고 비싼 침도 원 없이 맞으면 되니까!

하지만 나 역시 차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는 운전자의 일부이며 언론에서 보도하는 나이롱환자, 보험금 타먹는 환자들을 욕하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속에 굳게 다짐했기에 이 순간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건 사실이지만 현대의학을 믿고 주변에 괜찮은 병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접수하고 아픈 곳과 증상을 말하자 세상에 엑스레이를 20장은 넘게 찍었다. 이런 경미한 사고에 이렇게 많이 찍은 적은 처음이었다. 10년 전 이보다 더 큰 사고가 났을 때에도 엑스레이 기껏 2~3장으로 끝났는데 간호사님이 옆으로 앞으로 뒤로 누워서 엎드려서.. 등 이런저런 주문을 하면 찍은 것만 정말 20장은 넘어 보였다.

의사님과 만나 상담을 하는데 아픈 곳을 다시 말씀드렸고 외관상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경미한 사고가 3~5년 뒤에 질병으로 나타나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주 동안 물리치료 7회를 받고 그 뒤 MRI를 촬영하자고 했다.


그제야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5년 전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다 우회전을 하던 중 뒤차를 신경 쓰다가 그만 앞차를 생각 못하고 추돌했었다. 상대방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하필 그 아빠가 택시 운전사라는 걸 보험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치료는 한방병원으로 가고 MRI 찍었다고 했을 때 내가 보험사 직원에게 약간 짜증을 냈다.

"MRI까지 찍을 정도는 아녔는데 보험사에서는 그런 합의는 안 해주나요? 한방병원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정도 충돌에 MRI라뇨! 그리고 합의금도 너무 높게 제시하신 거 아닌가요?"


이후 보험사 직원이 상대방을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넣겠다, 이 정도 합의 안 하면 계속 치료받는다, 그리고 그 아버님이 택시운전기사라 이래저래 보험금 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해 줘서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고 했고 그 이후 내 자동차 보험료가 참 많이 올랐었다.


MRI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아니 그 정도까지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의사가 이후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7회 받고 찍어보자는 권유에 그때 그 학생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했다.

그리고 그때 보험사 직원에게 좀 짜증 냈던 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렇게 물리치료를 받고 다음날이 지났다.

근데 이번엔 허리가 쑤시고 아픈 것이었다. 뭔가 나 자신에게 계속 돼 내면서 말했다.

'이게 진짜 교통사고 때문에 아픈 거야? 아니 그 정도 충격에 내 몸이 이렇게 아프다고? 그럴 리가 없어 이건 그냥 잠을 잘못자서 그런 걸 꺼야' 라며 회사에 출근했는데 계속 어깨와 허리가 쑤셨다.

팀원들에게 이런 일들을 말하면서 10년 전엔 더 큰 사고에서도 아픈 곳 없이 잘만 지냈는데라고 말하니까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찰리 한 님! 나이 드신 거예요!"


아뿔싸... 그때는 삼십 대 초반이고 지금은 사십 대 초반이었다. 그래도 작년부터 나이의 심각성을 깨닫고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1년 하면서 몸도 좋아졌고 이젠 홈트로 바꿔 이것저것 기구를 사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나왔던 배도 들어가고 지방도 많이 빠지면서 30대 시절의 몸매가 됐는데 회복속도나 기타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아직도 마음은 30대, 아니 20대 같으니 몸도 당연히 20~30대라고 생각하고 조심 없이 행동했던 것이었다.

받아들여야 했다. 경미한 사고라고 해도 몸은 이곳저곳 쑤실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고 주말마다 교회 동생, 형들과 풋살을 하는 즐거움을 이번주에는 쉬기로 했다. 무리해서라도 뛰고 싶었다. 누군가와 즐겁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또 하나의 낙이었기 때문에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사십 대 몸의 상태를 받아들여야 했고 10년은 풋살을 할 생각이기 때문에 몸을 사리기로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고 말을 그렇게 하니까 약해지는 거라고. 그래.. 그 말도 맞다. 그래서 나이 먹었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먹어보니 알겠다. 내가 부정해도 이미 신체 나이는 팩트라는 걸!


PS: 분명  우리차 뒷 범퍼에 흠집밖에 없었는데 다음날 보니 끝 부분이 깨졌다. 산지 5년 밖에 안됐는데...너나 나나 같은 처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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