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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15. 2024

아이를 통해 알게 됐다!

아버지도 많이 아팠겠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하는 말은 '아이에게 체벌을 하는 것이 맞냐'였다. 필요한 경우라면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며 남의 집 아이 이야기겠거니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 둘째 놈이었다. 당장이라도 맞아야겠다고 하는 아내에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들었다.


첫째님은 장애를 갖고 있어 활동지원사가 동행한다. 아이를 위해 치료실로 이동 지원을,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하교지원도 하며 집에서 첫째님의 케어를 위한 일들을 합의하에 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마음을 놓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방학이 된 시점에 둘째 놈도 돌봄 교실에 보내고 학원 갔다 집에 오면 첫째님과 활동지원사 이렇게 셋이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활동지원사는 꽤 많은 부분들을 도와주신다. 하지 말라고 하는 설거지도 해주시며 가끔 빨래도 널어주신다. 맞벌이 부부의 집이 어떤지, 부부가 얼마나 바쁜지 너무 잘 아셔서 언제나 더러운 집을 청소해 주신다. 감사하지만 죄송하기도 하고 합의된 내용이 아니라 하지 마시라고 말해도 활동지원사는 감사하게도 해주신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둘째 놈이 엄마가 활동지원사에게 설거지하지 마시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우리가 없을 때 활동지원사에게 "선생님! 엄마 없을 때 설거지 하세요"라고 말했단다.

활동지원사도 당황했고 그걸 들은 부모의 입장에선 화가 날 상황이었다. 아내가 둘째 놈에게 따끔하게 야단을 쳤고 그 뒤로는 좀 잠잠해졌나 싶더니 오늘 상황이 발생했다.

"선생님! 돈 받고 일하니까 설거지하셔야죠!"


아내의 수화기 너머 깊은 화남을 넘어 당장이라도 체벌을 할 기세에 내가 물어봤다.

"둘째 놈이 잘못이란 걸 알아?"


안타깝게도 둘째 놈은 자기가 말한 것이 잘못한 건지를 모른다. 그래서 아내에게 잘못을 모르는 아이에게 바로 체벌을 가하는 건 조금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얼른 활동지원사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아주 나쁘지 않아서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고, 활동지원사도 아이가 어려서 그러니 너무 혼내지 말라고 했다.



내 나이가 5살, 지금의 둘째 놈보다 3살이나 어렸을 시절이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누나와 날 불렀다.

"너네 이제부터 엄마는 어머니, 아빠는 아버지 그리고 존댓말 써라!"


황당하였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그렇게 저녁은 지나갔고 다음날, 아니 시간이 좀 지나서인 듯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라고 아버지 앞에서 불렀다. 그 뒤에 아버지는 대뜸 구둣주걱을 갖고 와서 날 사정없이 때렸다.

너무 아파 눈물만 날뿐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그렇게 때리고선 "어머니라고 불러!"라는 짧은 단어만 내뱉었다. 그 뒤로도 아마 몇 번은 더 혼났을 것이다.

5살짜리 꼬마애가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부르는 게 주변에선 신기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시장길에서 뒤에 꼬마애가 "어머니 같이 가요"라고 말하는 게 징그러워 도망치듯 걸어갔다고 했다.

그 뒤로 우리 집은 말이 없어졌다. 조용한 가족,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없는 그런 가족이 됐다. 어리광 부릴 수 없는,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어쩌면 남보다 더 먼 남 같은 가족이었다.


훗날 왜 아버지가 그렇게 했는지 알게 됐다. 어느 날 내가 부모님에게 너무 버릇없이 말하는 걸 보고 누나가 나한테 "너 너무 버릇없이 부모님한테 그러면 안돼!"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 생각엔 뭔가 예의에 대해 알려줘야겠다는 결심이 섰는지 그날부터 그 사달이 난 것이었다.

이유라도 설명해 주시던지, 혼냈으면 친절하게 하시던지. 그전에 아버지와 축구하고 신문에 구멍을 뚫어가며 놀았던 좋은 기억들이 5살 이후론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 가까이할 수 없는 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밖엔 없었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아직 본인이 잘못한 걸 모르는 둘째 놈을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어떤 부분이 잘못했는지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이해를 못 했다. 아이에게 어쩌면 예의라는 단어를 알려주기엔, 아니 이해시키기엔 너무나 많은 상황이 존재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내 아버지의 저런 엄한 모습이 싫어 아이에게 너무 격 없이 지냈나 라는 반성도 하게 됐다.

잘못을 모르니 체벌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유를 모르는 아이에게 다시 설명을 했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알려주며 똑같은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고 그 규칙을 어기는 순간 아빠는 구둣주걱을 들것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혼낸다는 것보다 구둣주걱이 무서운지 눈물을 흘리는 아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조절을 했다 생각했지만 아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어쩌면 내가 아내와 대화를 하던 중 여보가 돈 벌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며 돈을 버는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너무 심어준 건 아닐까 하며 내가 한 말들에 대해 곱씹으며 반성하게 됐다.

적어도 아이 앞에선 돈이나 물질, 권력, 험담 등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됐다.


눈물 흘리며 잠을 못 자는 아이가 걱정되니 옆에 있어줄까 하고 물어봤다. 옆에는 말고 문 앞에 있어달라고 하는 걸 보니 당장은 마음이 편치는 않겠구나 생각이 든다. 속상함에 누워있는 둘째 놈을 보며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니 내가 5살 때 혼내던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구둣주걱으로 때리는 아버지 모습은 또렷하게 기억났지만 그 이후엔 지금의 나와 같이 자식들 걱정했겠구나 라는 흐릿한 모습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통해 그 흐릿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게 됐다. 당신도... 꽤나 많이 아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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