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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r 26. 2023

특수학교에 간 첫째님

뭐? 부회장이라고?

첫째님은 3학년이 됐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 첫째님은 우리만 아는 약간의 성장을 한 채 3학년 새 학기를 맞이했고 믿기지 않게 부회장이라는 임명장을 받아 왔다. 반 아이들은 6명, 그중 홍일점이라 부회장을 준건지 어떤 기준으로 준건지 모르겠지만 부회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첫째님은 그 정도 역할을 수행 못할 것이고 자질도 없다고 나만 강하게 확신했으니 그냥 돌아가면서 무작위 추첨한 게 아닐까 라며 넘어갔다.



둘째 놈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이 된 둘째 놈은 돌봄 교실까지 무사 통과되어 정말 신나게 초등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공부보다 노는 게 더 많다는 부모의 꼬드김에 잔뜩 기대를 갖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입학초기라 그런지 정말 공부를 안 시킨다. 돌봄 교실에선 같은 친구들끼리 신나게 놀다가 초등학생의 영웅이자 부모에겐 구세주 같은 태권도 학원차가 홈 to홈, 스쿨 to홈, 스쿨 to 어디든 아이들을 부모님이 원하는 장소로 데려다준다. 예의범절도 기가 막히게 잘 가르쳐서 원장님께 인사는 물론 부모님에게도 쩌렁쩌렁하게 자기가 어딜 다녀왔는지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한다. 안타깝게도 욕을 배워오는 건 덤이지만 일찍 배우냐 나중에 배우냐의 차이일 뿐이라 태권도 학원은 절대적 엄지를 척 올려야 한다.

두 명의 아이가 다 초등학생이 됐으니 아내의 개인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방학 때 두 아이 끼고 지내느라 모든 능력치가 하향평준화 됐는데 슬슬 모든 능력치가 올라감과 동시에 꽃을 사야겠다는 소비 능력치 역시 상향평준화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입학초기엔 학부모와 학교의 만남인 총회와 학부모참관수업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선생님과 학교는 부모들에게 우리 학교가 이만큼 신경 쓰고 준비하고 아이들을 위해 정말 헌신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야 해는 그 부담감이 상당하다. 학부모는 위원회만 되지 말자 라는 마음과 내 아이의 교육환경 한번 더 보고 선생님에게 학교생활을 세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고 학교도 다른데 같은 날짜에 첫째님은 총회, 둘째 놈은 학부모 상담으로 겹치게 됐다. 시간대는 다르니 아내가 두 학교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있지만 부모 각자가 한 명씩 마크해서 첫째님은 내가 참여하고 둘째 놈은 본인이 가야 할 것 같다며 첫째님의 가정통신문을 나에게 보내줬다.


둘째 놈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굶지 않고 자기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으니 궁금함으로만 끝나지만 첫째님은 좀 상황이 달랐다. 학급환경도 궁금하고 저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고 가나, 수업시간에 가만히 잘 앉아있긴 할까 등등 궁금증을 넘어 걱정까지 되니 이참에 참관수업을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아이에게 왜 임명장을 준 걸까 하는 의심도 포함됐다. 왜냐하면 1년 전 코로나의 기승이 정점이었을 때 참관수업을 실시간 영상송출로 진행했고 그때 첫째님은 최고의 문제아였다. 교실을 비추는 카메라에 도무지 잡히질 않았다. 그 좁은 교실 어딘가에 숨어있는 건지 잠시 앉아있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다. 선생님이 첫째님을 잡으러 다니는 상황만 연속적으로 보게 됐을 뿐이었다.

3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선생님의 첫째님에 대한 칭찬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착석이 잘된다는 칭찬을 했는데 작년 기준 내 판단으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객관적인 사실,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총회가 시작됐고 교육부의 매뉴얼, 학교의 매뉴얼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총회보다, 학부모 위원회에 누가 뽑혔는지 보다 참관수업 걱정만 가득했다. 복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에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총회는 큰 무리 없이 잘 마쳤고 이제 첫째님의 교실로 이동했다.

반갑게 부모님을 맞이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첫 느낌은 너무 좋았다. 이 분이라면 아이들을 정말 사랑으로 잘 돌봐주실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나와 아버지 한분, 그리고 어머니 한분 이렇게 3명이 뒷자리에 앉았고 수업은 시작됐다.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바로 남학생 한 명은 자리를 이탈해 매트 위에 누웠다가 책상 위를 올라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기다릴게!"

라는 짧은 단어를 단호히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는 곧 자리로 돌아왔다. '기다릴게 라니'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바로 "아니야!"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 텐데 '기다릴게'라는 저 표현이 나에겐 너무 낯설었다.

그 학생은 곧 자리로 돌아왔고 수업은 재개 됐다. 물론 다시 자리를 이탈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선생님은 그때마다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기다릴게"를 말했다.

수업의 난이도는 유치원생들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동요를 부르고 주사위에 붙인 학생들 사진을 굴랴서해당 학생의 얼굴이 나오면 누구인지 이름을 말하고 주사위에 붙은 학생의 사진을 칠판에 붙이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명은 이해를 했지만 첫째님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옆에 앉은 친구는 곧잘 대답도 하고 선생님과 상호도 가능했지만 첫째님은 앉아 있을 뿐 어떤 상호작용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수업 중간중간 아이들과 소통을 시도했고 첫째님에게도 똑같은 시도를 했다. 첫째님은 그냥 눈만 마주쳤을 뿐 다리는 흔들면서 실내화는 저 멀리 던져진 상태에서 소리만 냈는데 선생님은 거기에 "어! 그래?"라고 받아쳤다. 내가 뭘 본 걸까. 저건 대답이 아닌데 선생님은 첫째의 반응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수업이 중반쯤 되자 학생들은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부모님들이 참여했으니 처음엔 긴장하는 것 같았는데 본연의 모습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수업 분위기는 점점 어수선해졌다. 선생님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가면서 집중을 시켰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요지부동의 두 학생 중 한 명이 믿기지 않게도 첫째님 이였다. 1년 전 카메라에 잡히지 않던 그 아이가 지금은 다리만 흔들 뿐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잘 앉아 있던 것이고 난 믿기지 않는 이 상황을 보며 계속 의심을 했다. '분명 일어날 거야 이제 좀 있으면 일어나겠지?' 라며 마음속으로 그 타이밍을 주시했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마구 뛰어야 할 그 아이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첫째님이 이만큼 성장했나 라며 약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첫째님이 기특해 보이며 다시 수업 전체를 지켜보다 내가 본 또 다른 관경은 바로 선생님이었다.


 


교사의 보람이라면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그걸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며 교육하는 맛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르쳤던 제자들이 1년이 지나 상급학년이 되면 아쉬운 마음으로 이별을 하지만 본인을 기억하고 찾아와 추억을 곱씹는 그런 맛이 아닐까. 그게 교사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특수학교의 경우 상황은 너무나 다른 것 같다. 작년의 교사를 기억할 리 없을 것이니 스승의 개념도 없고 교실 분위기는 이미 아이들의 놀이터로 바뀌었다. 선생님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위하여 노래를 틀면 목청껏 부르는 건 교사와 실무사 선생님뿐이었다. 보람도 없어 보이고 가르치는 맛도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그냥 대충 하거나 수업을 하지 않고 학생들이 놀고 싶은데로 놔두고 사고만 안 나게 적당히 신경 쓰며 시간만 보내다 끝내도 될 것 같았다. 설사 그렇다 한들 아마 부모는 모를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첫째님의 담임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빛이 변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통제를 위해 커지고 마지막엔 힘에 부쳐했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저 선생님은 무슨 짐을 짊어졌을까? 무슨 사명감을 가졌기에 이리도 수업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할까?

참관수업이라는 짧은 시간에 본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선생님의 사명감, 아니 저렇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뭔지 너무 궁금했다.

내 눈엔 첫째님을 포함한 학생들에게서 뭔가의 가능성을 찾기엔 무리라고 판단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보지 못한 눈을 갖고 있는 듯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부모인 나 조차도 못하는 걸 피 한 방울 안 섞인 저 선생님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지 못한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수업이 끝난 후 참여수업에 오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첫째님이 자리에 너무 잘 착석해 있어서, 말도 하고 눈도 잘 맞춘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걸 봤던, 객관적 사실로 본 나는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제야 왜 첫째님이 부회장이 됐는지도 납득이 됐다.

쉬는 시간엔 뛰어다녀도 수업시간엔 착석을 잘하는 아이. 이상한 소리를 내지만 그걸 받아주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는 아이. 1년 전과 비교해 너무나 큰 성장을 한 이 아이를 보며

'아... 우리 아이가 부회장 역할은 잘 못할지 몰라도 부회장 될 자질이 충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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