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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Nov 29. 2020

어쩌면 나도 책과 친해질 수 있겠구나!

책 읽는 시간은 나에겐 여전히 청소년 반항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더욱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어, 문학이라는 과목을 거의 증오했다. 심지어 모의고사 때에도 언어 120점 만점에 꾸준히 반타작인 60점. 당시 수리탐구 1 영역은 80점 만점에 70점 이상으로 꽤 잘했지만 언어는 완전 꽝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너 같은 놈 처음 본다면서 아니 찍어도 반 이상 맞을 수 있는 언어가 어떻게 수리탐구영역보다 낮게 나오냐며 혹시 제2 외국인 아니냐며 핀잔을 줬다.

중간고사 언어 시험 시간에는 주관식 질문에 ‘지문에서 필자가 의도하는 바를 두어절로 답하시오’라는 물음에 “지문이 이렇게 긴데 어떻게 두어 절로 답할 수 있나요?”라고 적었다가 교무실로 끌려가 선생님과 육체적 대면을 했었다.

고2 시절에 문학시간은 거의 수면시간이었다. 문학 선생님도 그 시간에 자는 애들은 포기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수능이 끝나고 1년밖에 남지 않은 수능일수를 알려주며 교과서 안 갖고 오거나 자려면 뭐라도 꺼내서 공부하라고 하라고 했다.

난 국어사전을 펼쳤다.

"뭐냐 이건?"

"국어사전입니다"

"누가 몰라? 이건 왜 꺼냈어?"

"남희석(개그맨)씨가 국어사전 보면서 너무 유익했다고 해서요. 저도 그냥 남들 웃겨보게요."


문학 선생님은 세상 제일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보고는 그냥 지나치셨다. 그 뒤로는 나한테 말도 안 걸으셨다.

그렇게 언어 시간, 문학시간은 언제나 청개구리가 되었고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 자체가 싫었다.


반면 초등학교 때는 조금 달랐다. 초2학년인가 3학년 때 정말 무서운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숙제를 안 해오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뺨에 찍거나 머리에 찍었다. 잘못하면 앞으로 나와서 빗자루로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때리셨다. 그 당시는 이런 일들이 허다했고 그렇게 때린다고 고소하는 시절이 아녔기에 그냥 맞고 넘어갔다.


한 번은 내가 뭔가를 잘못했고 그 대가로 난 수업이 다 끝난 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셨다. 내가 선택했던 건 비틀즈(폭스바겐 그룹의 자동차이며 단종됨) 자동차가 경주에 나가 우승하는 내용이었고 독후감을 쓰자 선생님이 읽어보시더니 나한테 얘기하셨다.

"너 이거 내일 우리 반 애들한테 한번 읽어줘"


초등 6학년 때에는 쓰기 수업만 좋아해서 글을 길게 많이 다량으로 썼다. 그때 선생님 역시 쓰기 숙제를 검사하는데 언제나 나한테는 칭찬을 했다.

"우아! 글을 많이 썼구나"

물론 내용은 뭐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을지 몰라도 분량만큼은 반에서 1등이었다.

(이 선생님은 4년 전 교육청 사이트에 '은사 찾기 시스템'을 통해 연락이 닿아 만나 뵙고 요즘도 연락하면서 지낸다.)

즉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서 약간의 흥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책, 글, 언어 등의 모든 것을 싫어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사건 같은 핑계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글씨를 못쓴다는 이유로 밤늦게까지 글씨 연습을 시켰다. 당시 위인전집 중 나폴레옹 책을 골랐고 새벽 2시까지 책 내용을 필사했다.

정말 서러웠고 눈물이 났다. 글씨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는 시인이 되셨다. 늦은 나이에 시를 쓰시더니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에 등단하셨다. 다니던 직장은 계속 다니면서 동시에 시인의 활동을 하신 나머지 새벽 늦게 시를 쓰셨다. 때로는 시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회사의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셨다며 술을 달고 사셨고 그 술주정은 언제나 가족들에게 풀었다.

시인의 삶은 아름답고 함축된 단어들을 한번 더 가공하기 위해 모진 인내를 통해 연단하여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 낭만적인 삶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시인은 그저 '주정뱅이들'이며 '욕쟁이들'이구나 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 모습이 너무 싫어서 아버지가 쓴 시를 절대 읽지 않았었다.


(지금의 아버지는 한적한 곳으로 귀농하시고 술 담배를 끊고 편견을 가졌던 그 낭만적인 삶의 시인 인생을 살고 계신다. 첫째님과 둘째의 탄생일에 맞춰 시를 직접 써주시는 낭만시인, 웃음이 아주 헤프신 할아버지가 되셨다.)


이런 이상한 경험들에 의해, 아니 어쩌면 핑계들 때문에 난 이과 쪽이 더 잘 맞았고 문과 쪽은 그냥 저세상의 언어였다.

 

근데 그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열심히 쓰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차분해진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과 공간이 생긴다. 내 감정을 여과 없이 써도 되고 때로는 울어도 된다. 화를 내도, 슬퍼해도, 기뻐해도, 미친척해도 무슨 말을 하던지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그런 솔직함과 절대적인 공간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매력적인 것이다. 때로는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고 때로는 격하게 반항해보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할 수도 있다.


신생아들은 자기 기분을 표현하면 누군가 달려와서 달래준다. 물론 그 표현의 결과는 대부분 울음이지만 배고프거나 덥거나 졸리거나 할 때는 여지없이 기분을 표현하면 누군가가 와서 돌봐준다. 하지만 개월 수가 늘어나 유아가 되면서,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지나 사회로 진출하면서 그 순리대로 살다 보니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들이 줄어든다. 점점 나에게 솔직해질 수 없었다. 그저 술 한잔을 핑계로, 술에 의지한 채로 털어놓는 거짓된 감정표현 밖에는.

난 외향적인 성향인데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서 그런 건지 지금은 그냥 이런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게 편하다. 소통이 없어도 좋다. 누군가를 위한 감정노동 따위도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 혼자 나만의 세계에서 그렇게 뛰어놀다 지치면 쓰기를 멈추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


어느 날 브런치 왼쪽에 메뉴 버튼을 누르면 브런치 시작하기 상단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난 아직은 내 감정표현이 더 좋다.

"You can express your feelings honestly by writing"-Charlie han-

(번역기 돌려서 작성한 문장)

글을 써서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


브런치를 추천해준 현명한 나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에게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구미에 맞는 글이 아닌 그냥 나한테 솔직한 글을 쓴다면 좀 더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 같다.

그럼... 글과 친해지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의 글과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어쩌면 나는 책과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장 찰리한의 솔직한 표현 공간-


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글을 잘 다룰 줄 안다면, 그래서 책과 친해진다면 lewis 작가의 말처럼 그 이후엔 어떤 것이든 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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