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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03. 2020

해고 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단편적인 생각과 고집의 결과!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오후 10시. 일하던 카페 대표님이 마감을 서둘러하시고 나를 불렀다.

"찰리 한 씨 저 좀 봐요"

“네 대표님”


분위기가 좀 다르다. 공기의 흐름이 뭔가 어색했다.


“마스크 벗고 얼굴 좀 볼까요?”


나는 얼른 마스크를 벗었다.

“우리 계약이 21년 2월까지죠? 근데 미안하게도 2개월 먼저 종료해야겠어요. 코로나로 매장 매출도 찰리 한 씨가 알듯이 직원 월급 주기 빠듯하고....”


맞다. 그래서 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표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다. 인간적인 면으로는.

12월 첫 주만 출근해달라 요청하셨고 12월 급여까지 챙겨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밤 10시에 해고 통보를 받고 잠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매장을 나섰다.

아내한테 전화와 메시지가 와있었다. 퇴근하면 언제나 제깍제깍 '퇴근'을 외치면서 갔는데 그날따라 연락이 안 와서 차사고가 난 건 아닌지 해서다.


"여보! 나 잘렸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냐 여보 생각하는 거 아니라 매출이 너무 안 나와서 그래"

아내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짐작이 아닌 해고된 정확한 이유를 설명했다. 잘 들어주던 아내는 운전 조심히 하고 집에 와서 말하자고 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노래를 크게 틀었다. 감정과 감상에 젖어 나를 위로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노랫소리는 내 귀에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해고는 처음이다. 자발적 퇴사는 두 번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퇴사는 내가 못 버티겠어서 나왔기에 미련은 있지만 아쉬움도, 자기반성도 없었는데 해고는 좀 다르다.

내 잘못을 생각해본다. 아니 그 이전에 먼저 해고 통보를 한 대표님이 처음으로 미워졌다. 그리고 마찰이 잦았던 부사장님은 더욱더 미웠다.

'아니 자기들이 나한테 잘해준 게 뭐라고 잘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하면서 내 기준에서 모든 것을 바라봤다.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매장의 상황과 이유를 다 설명했다. 그랬는데 뜻밖에 아내가 날 위로해줬다. 놀리기도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내는 충분히 나한테 본인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어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내한테 말했다.

"여보. 이건 위로할 께 아니야. 혼내야지. 아무리 매출 때문이라고는 해도 내가 잘한 게 없으니까 해고당하는 거잖아"

차라리 퇴사 때는 더 위로해주고 해고 때는 더 혼나는 게 맞는데 아내는 지금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해줬다.

고용불안을 아내한테 안겨준 것이 미안했다. 퇴사는 미안하기보다 나 살기 바빴다. 내 정신상태를 온전히 차리기도 버거웠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기에 가족에게 미안함은 있었지만 불안해진 정신을 잡기가 더 시급했다.

근데 해고는 느낌 자체가 너무 달랐다. 정신과 육체 상태는 멀쩡한데 감정들만 엉망이 되었다. 가족에게 무책임하고 능력 없고 고용이 불안한 아빠이자 남편이 되어버렸다는, 어찌 보면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느껴졌었다.


대표님은 입이 무겁기도 하고 표현을 잘 안 하셨다. 뭉뚱그려 얘기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말할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해고는 어차피 결정되었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었다.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대표님, 정확하게 제가 해고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냥 대놓고 물어봤었다. 아내의 짐작이 맞을 수도 있었고, 매출 때문은 아닌 것이 내 눈에도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또 이런저런 말을 돌리다가 집요하게 내가 물어봤더니 대답을 해줬다.

"저는 수염 안자르고 오는 사람은 찰리 한 씨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매장 문 닫는 시간은 10시인데 찰리 한 씨는 10시 땡 치고 퇴근을 한 적이 있더라고요"


딱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이 얘기를 듣고서 내 속마음은 얘기하지 않은 채

"아, 네 대표님이 그 부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제가 몰랐습니다. 본의 아니게 그 부분에 오해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대표님 마음이 상했다면 사과드립니다"


대표님 앞에서는 나이스 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표님은 인간적인 면으로는 절대 나쁜 악덕 사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염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코로나로 매장에서는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되었기에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수염을 자르지 않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그때 커피를 마시려고 창고에서 마스크를 살짝 내릴 때 대표님이 나를 보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아내한테 해고된 이유를 얘기했더니 아내가 그제야 얘기했다.

"여보,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깔끔함은 기본이야. 우리 아빠도 사업하실 때 몸에 냄새 안 나게 하려고 매일 씻고 향수 뿌리고 깔끔하게 하고 다녔어"


(장인어른은 지금은 연세가 많아서 더 이상 고된 수산 건조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향수를 뿌리고 옷 또한 말끔하게 입고 다니신다.)


나는 곧바로 응수한다.

"아니, 그게 불만이라면 당연히 말해서 고쳐보려는 시도는 왜 안 해?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공지를 하던가 아니면 불러서 혼을 내던가 얘기를 해야 직원이 알아듣고 행동을 하지.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때 해고를 하던 월급을 삭감하던 제제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내한테 도리어 짜증을 냈다. 그러자 아내는 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뼈를 때리는 한마디를 했다.

"기본이 안 돼있는 사람한테 기본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딨냐? 여보 기본이야. 그건 기본이라고. 그것조차 안 돼있는 여보를 1년간 데리고 있는 대표님이 더 대단한 거 아냐?"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났지만 맞는 말이었다. 기본이 안되어있는 사람에게 기본을 가르쳐 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믿고 맡길 사람이라는 검증이 된다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뭐야? 나는 안 그랬는데? 난 교육회사 다닐 때 기본이 없으면 기본을 알려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내서라도 끌고 가고, 그래도 정 안되면 그때 돼서 내치든지 말든지 결정하고 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게 사회생활 아니야?"


하지만 아내는 그 말들을 흘려들었다. 기본을 모르는 인간의 무한한 핑계가 순환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아내를 설득하기도 어려웠다.


"여보. 나 그래도 오후 출근 때 10분 일찍 출근했고 손님 계시면 매몰차게 내보내지 않고 마감시간 지나서도 기다려주고 그랬어. 그거에 대해선 나도 아무 말 안 하고 있는데 10시 땡 퇴근이 해고의 사유는 좀 아니잖아?"


마지막 발악을 해봤다. 아내한테 내가 왜 이리 하소연하는,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답답함에 얘기를 했었다.

아내는 이 부분에서는 동조해줬다. 단골손님이 오시면 나 역시도 10시 땡 마감하지 않고 30분씩 기다려주면서 퇴근시간을 늦추곤 했었다.

이 부분에서 부사장님과도 크게 다퉜었다. 근무시간에 대한 서로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했어야 했는데 나도 나름의 사회경력을 토대로 내 근무시간을 얘기했었고 연장근무가 된다면 당연히 근무시간을 조율해줘야 하지 않냐고 요청이 아닌 말대꾸를 했었다.

결국 대표님이 정리해줬지만 그 뒤로 부사장님과 나의 사이는 멀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아내도 카페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불합리한 것들을 얘기해줬지만 뼈를 때렸던, 기본이 없는 사람이란 부분에서 난 크게 깨닫게 되었다.

기본... 교육회사의 8년 경력은 업종이 변하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난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누군가를 관리하는 역할이 아닌 말단사원이었다. 나이만 많은, 다른 사회경력만 많은 그저 말단사원.

그런 말단 막내가 아무리 조직 구성원이 대표, 부사장, 경력직원, 나 이렇게 4명이 있다고 쳐도 그리 대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행인 건지 경력직원은 내편이 돼 주었다. 띠동갑으로 어렸기에 본인의 불합리함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은 이렇게 바꿔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불합리한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대표님은 그 의견에 응해주셨지만 부사장님은 썩 내키지 않으셨다. 내가 관리자였을 때의 모습을 보며'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그래도 소통하려 했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려고 했는데'. 그놈의' 나 때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면서 윗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러다 또 부사장님과 갈등이 생겼고 그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었다.


되돌아보니, 아내의 기본이라는 한마디에 그간 11개월의 일들을 회상해봤다. 회상해보니 난 무경력 꼰대였다.

나이 많고 카페 쪽 일이 아닌 경력을 들이밀고, 내가 관리자의 역할에서 잘했던 모습만 생각하며 윗사람의 관리 능력을 판단하고 잘못된 면만 보며 무시해버리는 나이 어린 무경력 꼰대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갑자기 사장님과 부사장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도 여기에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있었는데 난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만 시도하려고 했었던 철없는 막내였었다.

그런 나를 그래도 11개월간 참아준 두 분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 2단계 발령으로 우리 매장도 테이크아웃밖에 할 수 없게 되는 날, 부사장님이 나왔다. 그리고 나와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찰리 한 씨. 우리 서로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나도 강사 경력이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말투가 세기도 하고 좀 성격이 급해요. 그래서 찰리 한 씨에게 좀 성급하게 말하고 무시하고 큰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건 절대 미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


충분히 알아들었다. 부사장님은 워낙 목적 지향주의이다 보니 결과가 똑바로 나오지 않으면 참지 않고 바로 지적한다. 그게 손님 앞에서 하는 경우도 있어서 좀 언짢았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부사장님. 저는 부사장님을 미워하지도, 오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부사장님에게 말대꾸하고 자꾸 대들었던 일들만 죄송할 뿐입니다."


부사장님도 이렇게 내가 해고당한 것이 본인 탓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고 나도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실수를 반복한다면 잘못이지만 고쳐나간다면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취업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며 이번엔 집과 좀 가까운 곳으로 알아봐야겠다. 그전에 꼭 남기고 싶었다.

그래. 난 이제 더 이상 교육회사의 과장이 아니다. 더 이상 관리직이 아니다. 생각을 멈추고 알려준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 경험은 나중에 내가 카페의 사장이 되었을 때까지 꼭 기억하고 두고두고 되뇌자!


-공장장 찰리한의 자기반성 중-


인생에 있어 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손해 보는 일은 없다고 했다. 어머니, 아내, 내비게이션
 도대체 어머니와 내비게이션 말은 그렇게 잘 들었으면서 아내 말은 왜 그렇게 안 들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나도 책과 친해질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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