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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05. 2020

남편님, 제발 표현 좀 하세요!

'표현을 잘 못하는 자'의 글 속에 솔직함이 묻어난다.

아내는 매주 목요일마다 글 맛집이라는 글 쓰는 연습을 하는 모임에 간다. 나도 요즘은 브런치에 글 올리는 재미와 글 쓰는 재미에 맛들 린 나머지 글 맛집에서 배우는 내용이 내심 궁금했었다.

"여보 나도 따라갈래!"

하지만 아내는 단칼에 거절했다.

"다들 신청하고 소정의 비용을 내는 거야. 공평하지 않아!"


아내가 한다는 이유로 그 모임에 나는 무임승차하려 했지만 비용까지 내는 줄 몰랐다. 그냥 내 글에 대해 평가 좀 해달라, 피드백을 좀 달라며 아내한테 또 조르고 졸랐다. 아내는 글 맛집 회원분들에게 마지못해 소개를 해줬고 몇몇 피드백이 왔지만 글을 잘 보고 있고 재밌다고 했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이니만큼 비대면 온라인 ZOOM으로 수업을 시작했고 그때만큼은 나를 껴줬다.

'오예!!!'

마치 영알 못이 학원 가면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는 것처럼 글 맛집에 가면 내가 뭔가 엄청난 글 쓰는 테크닉을 배울 것처럼 기뻐했다.

줌 수업이 시작되고 강사님 포함 5명의 회원분들과 나 이렇게 6명이 듣게 되었다.

강사님이 평소 글을 잘 보고 있다면서 다른 회원님들에게 찰리 한 씨의 글에 대해 소감을 물어봤다.

"강사님 전 피드백받고 싶어요. 문장이 어색한지, 뺄 내용은 있는지..."


강사님은 그런 부분은 글을 보면서 할 수 있기에 줌으로는 좀 어렵고 우선은 소감부터 말해달라고 했다.

글을 재밌게 쓴다, 글이 자연스럽다 등 너무나 감사한 소감들에 나는 또 자만감이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갔다.

하지만 강사님의 소감에서 나는 소름도 이런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찰리 한 씨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경험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경험들을 이제 막 하나씩 꺼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 소중한 경험들을 글로 쓰는 건 아주 좋고 중요해요"


첫 번째 소름은 바로 저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라는 부분에서였다.

지금 내 작가의 서랍 에는 아직 내용을 다 쓰지 못해서 가제로 정한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글이 있다. 거기에는 내가 왜 생각이 많은지 주저리주저리 적어놨는데 강사님은 내 글만 보고는 한방에 날 통찰해버리셨다.


두 번째 놀란 건 강사님이 부부끼리의 대화를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제안했는데 그 제안 역시 내 수첩에 이미 기록되어있고 구상 중이었다. 강사님은 그 부분까지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버리셨다.


마지막은 '소중하게 생각한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맥시멀 리스트' 다. 모든 물건에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않고 쌓아놓는다. 정기적으로 그 물건들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이런 단기 기억을 지속적 학습을 통해 장기 기억과 마음속으로 쏟아붓는다. 하지만 아내와 결혼 때 마찰이 생긴 후 물건의 90%를 싹 다 버렸고 크게 미련이 남지 않는다.

버려진 물건들은 다행히 장기 기억과 마음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빨리 글로 다 써제꺼버리려다 보니 여러 가지 글들이 작가의 서랍에 여기저기 키워드와 제목만 나뒹굴려 져 있다.

나는 너무 놀랐다. 놀라기도 놀랐지만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

내 글에서 그런 부분이 보인다고 한다. 내 글에서? 내가 그렇게 표현을 한다고? 단어로 직접적인 표현은 없는데? 하물며 난 아내한테 감정표현을 1도 못하는 나한테서? 내가 작성한 그 글들에서 그런 부분들이 보인다고?


표현이 매우 서툰 사람

나는 감정표현을 정말 기가 막히게 못한다. 얼마나 못하냐면 아내와 다툰 다음 미안하다는 말 조차 못한다.(최근에는 카톡으로 소심하게 먼저 '미안해'라고 쓴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감사해 라는 이 쉬운 단어들을 기똥차게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냥 말이라도 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라도 표현하면 되는 건데 그걸 그렇게 못하냐며 가끔 아내가 핀잔을 준다. 하지만 어떡하냐? 잘 안되는데. 이미 그런 습관들이 굳어져 버렸는데.

심지어는 아이들한테 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 몸으로 표현하는 스킨십은 잘하냐? 그것도 아니다. 스킨십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물론 아내는 예외이다)

이건 또 역시나 가장 좋은 핑계인 부모님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부모님 때문이 아닌 그냥 내 성향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은 어릴 때일수록 더 부모님과 살을 부대끼며 놀고 기어오르고 하면서 친밀감을 높인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하지만 5살 때 아버지는 식탁에 나와 누나, 어머니를 앉히고선 딱 한마디 하셨다.

"이제부터 엄마는 어머니, 아빠는 아버지라 불러라. 그리고 뒤에 존댓말 써라!"

그다음 날 존댓말 안 썼다가 정말 혼났다. 엄마라고 불렀다가 구둣주걱로 맞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어머니 같이 가요"라고 말하면서 5살짜리 애가 뒤에 졸졸 쫓아오는 게 징그러워서 서둘러 가버리셨다고 했다.

그 후로는 난 부모님에게 어떠한 아양도 부리지 않았고 껴안지도 볼뽀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습관들 때문에 난 웃기게도 첫째님과 둘째 놈의 볼에 지금까지도 뽀뽀를 한 적이 없다. 무려 7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들의 볼에 뽀뽀하지 않는 아빠이다.

(아버지가 왜 그때 그랬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5살이 된 둘째 놈 보니.... 하아... 아버지가 그럴 만도 하셨구나. 둘째 놈보다 내 어릴 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근데, 내 감정과 그 표현들이 보인다고요?

내 글에서, 내가 쓰는 조잡한 글들에서 그런 감정들이 보인다는 말이 여전히 의문이다. 이건 단순히 글인데. 그저 내가 기억하고 생각한 것들로만 쓰는 글인데 어떻게 여기서 그런 감정들을 읽을 수 있다는 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왜? 어째서? 난 감정 표현을 못하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났다. 내가 이 메거진을 처음 쓸 때 나만의 그 독립된 절대공간 안에서 내 모든 감정을 여과 없이 써버 린다는 그 문장이. 여기를 클릭하면 그 절대공간이 확인 가능합니다.(대놓고 내 글 홍보함)

솔직하게 글을 쓰다 보니 솔직한 내 감정들이 문장에 얼핏 얼핏 녹아 나오고 있었구나.

이게 남들 눈에도 보일 정도로 표현이 된다는 게, 단순한 글에서 이런 게 보인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카메라나 자동차를 봐도 만든 이의 의도는 딱하나 밖에 없다. '이전의 카메라보다 성능이 향상되어 사진이 더 잘 나와요, 더 잘 찍힙니다' 라던지 '잘 달리고 잘 멈추고 잘 돌아요' 라던지. 그 이외의 디자인이나 제작 초기의 고심은 제작자를 찾아가 물어보지 않는다면 알아채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글은 좀 다른 것 같다. 쓰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사람도 꽤 있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 걸 넘어 사람을 통찰하기 까지 한다.

글이 주는 즐거움이 또 하나 생긴 기분이 든다. 글은 정말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존재였다.

왜 이런 솔직한 표현들을 아내한테 하지 못했을까 내심 또 후회를 한다.

사랑해! 이것부터 해볼까?


-공장장 찰리한의 어린아이 같은 표현이 자라나 성인이 될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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