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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08. 2020

어떻게 취미가 변하니?(1/2)

계속 잘하는 줄 알았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3위: 군대 얘기

2위: 축구 얘기

1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하지만 난 군대 얘기가 들어가긴 해도 농구 얘기가 들어가니까 누구나 그리 싫어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글을 쓴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만화책이 바로 최고의 판타지 드래곤볼이며,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강백호가 나오는 슬램덩크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니면 전설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 은 알것이다.(지금 20대는 혹시나 모를 수 있지만 30대, 40대, 50대 초반까지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아니 모른다면 분명 간첩일 것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체육을 너무 좋아했다. 안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유난히 더 좋아했다. 언제나 운동장 2바퀴를 돌고 나면 체육선생님은

"농구, 축구 기타 헤쳐 모여"

라고 외치면 항상 농구 줄에 서있었다. 당시 슬램덩크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축구는 기껏해야 슛돌이 정도라 농구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아 1,2군으로 나뉠 정도였다.

나는 당연히 1군, 자랑스러운 반대표까지 했었다. 키는 지금이나 고등학생 때나 딱 164cm 하나도 자라지 않았고 작은 키 덕분에 가드라는 포지션밖에 할 수 없었다.

나름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기에 태니스공으로 드리블 연습을 했다. 다리 근력도 나쁘지 않아 농구대, 흔히 백보드라고 불리는 곳을 뛰어서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180cm 센터에게 블록킹 당하는 수모는 있었지만)

테니스공으로 양손 드리블을 연습하다 보니 커다란 농구공을 다루는 게 쉬웠고 지구력은 부족하지만 순간 스피드가 빨랐다. 즉 치고 나가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상대가 엉성한 드리블로 다른 곳을 본다면 여지없이 스틸한다. 그리고 작은 키라 이 정도면 못 잡겠지 하면서 내 키 위로 공을 던지면 기가 막히게 낚아채서 골대로 달려갔다.

즉, 슬램덩크의 송태섭을 매우 좋아했고 그가 하는 드리블, 스틸, 상대를 제치는 방법이나 기가 막힌 패스 등 경기 운영 판단력(?)을 배우면서 밥만 먹었다 하면 바로 농구를 하러 뛰쳐나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송태섭에게도 약점이 있듯, 나 역시도 그대로 그 약점을 물려받았다. 바로 슛.

슛이 안 들어간다. 미들슛은 그렇다 쳐도 골밑슛은 레이업을 제외하고는 정말 엉망 그 자체였다. 그래서 반대표로 나가 스틸과 드리블을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점수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없어서 경기 중간 교체당하는 일이 생겼다.


슛 연습만은 참 안됐다. 슛에 재능이 없는 걸까? 연습이 부족한 걸까? 아마 둘 다 였겠지만 슛보다는 상대의 공을 뺏고 상대를 제치는 것을 좋아했었다. 가장 중요한 슛, 골 결정력은 내 농구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가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역시나 농구를 외치고 열심히 했다.

 농구는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최고의 운동이자 최고의 취미생활이었다.


군대에 입대했다. 이제 막 일주일도 안된 이등병 짬 찌꺼기가 되었는데 수송 부대와 우리 중대가 농구시합을 하게 되었다. 각 중대 인원들이 모두 나와서 농구장을 빙 둘렀다. 우린 전투 중대라는 체면도 있거니와 당시 수송 부대만큼은 절대 지면 안 되는 국률이 있었다. 시합이 열심히 진행되던 때에 우리 중대의 가드가 갑자기 상대 센터와 부딪히면서 넘어졌고 다리에 부상을 당했다.

소대장님은 얼른 일으키고 대체자를 찾아야 했는데 마땅한 병사가 없어 보였는지 다급하게

"야 가드 누가 할 수 있어?"

"저, 저 가드 가능합니다"

나는 번뜩 손을 들었다. 이제 막 짬 찌꺼기인 주제에 자기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소대장님은 얼른 나를 데리고 들어왔고 시합은 재개되었다.

평소 하던 것처럼 나는 농구를 했다. 역시나 상대방의 느린 동작과 엉성한 드리블을 보며 재빠르게 스틸한 후 골대로 달려갔다. 근데 저 옆에 3점 라인에서 선임 한 명이 공을 달라고 소리쳤다. 노마크 찬스였다. 하지만 3점 라인에서 슛하는 건 약간의 무리수라 판단한 나머지 나는 얼른 레이업으로 골을 성공했다.

골을 성공시킨 후 군대에서의 첫 골을 만끽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공을 뺏을 때까지 환호하고 골대에 골을 넣기 전까지 소리쳤던 그 아우성들이 들리지 않았고 아주 싸늘한 표정과 응원하려고 뻗은 두 팔, 손뼉 치던 두 손이 굳어진 행동들. 오로지 기뻐하는 건 소대장님 한 명뿐.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승리를 위해 다시 스틸하고 또 하고 드리블하고 하다 다른 선임이 드리블하는 게 못마땅해서 한발 더 나아가 박수를 치면서 "여기! 여기여기!"를 외쳤다.

그날 수송부대에게 큰 점수 차이로 이겼고 소대장님은 수송부대의 간부에게 거하게 한턱 얻어먹었다. 기분이 날아가신 소대장님은 PX로 우릴 인도했고 냉동식품을 배 터지게 먹었다.

기분 좋은 배부름과 함께 내무실로 돌아오면서 '오늘의 농구 플레이로 인해 급 ACE가 되었구나'라는 혼자만의 착각을 하며 어떤 칭찬이 쏟아질지 내심 기뻐하며 들어왔다.

내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등병 일병 심지어 이제 막 불합리한 군대의 규율들이 싹 다 풀리는 상병까지 집합되었다. 난 2003년 1월에 입대했다. 1개월 단위로 선후임이 나뉘며 가장 무섭다는 맞선임은 11월 군번, 그리고 1년 차이 나면 아버지라고 불리는 2002년 1월 군번들이 싹 다 모여서 각을 잡고 앉아있었다.

우리 중대는 5중대였고 1,2,3, 화기소대로 나눠져 있었다. 난 3소대의 화기 분대 소속이었고 1,2 소대는 해안소초로 투입 중이라 3소대, 화기소대 그리고 약간 중대는 다르지만 한 소속이라고 불리는 본부중대까지 집합을 시켰다.


농구공을 들고 온 선임. 내무실에서 농구공을 튀기면서 나를 나오라고 했다.

"야! 아까 패스해달라고 할 때 기가 막히더라! 너 한 거 그대로 해봐!"

"예! 알겠습니다. 패스!"

이러고 난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농구공이 강속구가 되어 날아왔다.

"이#$##. 니가 그렇게 했다고? 다시 해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했더라?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했더니 그 선임이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면서 "패스! 패스!" 또 박수를 치면서 "여기! 여기"

참담했다. 내가 저렇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수송부대와의 시합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했을 뿐. 그렇게 그 모습을 보여준 선임은 일병 밑으로 다 식당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이젠 일병의 최고 선임이 식당 옆 흔히 말하는 너구리 굴로 우리를 모두 앉혔다. 설거지가 끝나면 너구리 굴로 가서 담배 필 사람 담배 피우면서 일병 최고선임이 윗 선임들의 지령을 하달받아 공식적으로 우리를 갈구는 장소이다.

"아.... 어디서 개념을 물에 말아먹은 놈이 들어와서. 너 개념이 있냐? 개념? 탑재는 돼있어? 뇌가 머리에는 박혀는 있니?" 라며 공식적 갈굼과 약간의 육체적 대면이 시작되었다.

대답을 안 하면 대답 안 한다고 갈구고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면 "아닌 걸 알면서 왜 그랬어?" 하면서 끝이 없는 내리 갈굼을 당했다.

단지 농구가 좋았고 농구를 사랑했던, 슬램덩크를 보며 자랐던 나에게 농구라는 종목이 그날따라 유난히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군대에서 농구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군대만의 법을 잘 몰랐다. 농구의 룰은 잘 알았지만 그 룰보다는 군대의 룰이 훨씬 더 막강했다.


-공장장 찰리 한의 농구와의 첫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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