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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5. 2020

자동차도 '고마워' 라고 표현하고 싶다!

운전 경력 18년 차! 여전히 조심스럽다!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이 끝난 후 운전면허 시험을 봤다.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하려 했고 필기시험에서는 신기하게도 중, 고등학교 시험 때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90점을 넘겼다. 강서 면허시험장에서 치렀으며 90점 넘는 사람들은 당시에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고, 나도 그렇게 기분 좋게 출발했다.

동네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본격적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난 엑셀과 브레이크는 알았지만 클러치라는 것은 몰랐다.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아주 사납게 생긴 선생님이 타자마자 외쳤다.

"클러치 밟고 브레이크 밟고 기어 1단에 넣고 시동 켜세요!

그리고 난 브레이크를 밟고 엑셀을 세차게 밟고 변속될 리 없는 기어를 1단에 넣었다 생각하고 시동을 켰다. 시동이 켜질 리가 없었다.

"아... 클러치 밟으랬더니 왜 액셀을 밟아요"

시작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뭐가 클러치인지 모르는 나에게 다짜고짜 소리치면서 왼쪽 끝에 있는 클러치를 밟으라고 소리소리 지르셨다. 그렇게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안도감에 클러치를 발에서 때니 또 시동이 꺼졌다.

"아.. 왜 클러치에서 발 떼어요? 내가 때라고 했어요?"

"아... 아니 그게 시동 걸려서 때도 되는 줄..."

기어는 다시 중립에 놓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2단을 넣으라고 했는데 'R'과 2가 헷갈려서 난 참 대단하게도 후진기어를 넣었다. 앞으로 가야 할 차가 뒤로 밀리자 강사의 불호령은 도를 넘어섰고 그렇게 90점짜리 필기 합격생의 운전연습 첫날은 빵점짜리 연습생이 되어버렸다.

둘째 날에 시동 켜고 연습을 하자 강사는 도대체 첫째 날에는 왜 그렇게 어리바리했냐며 급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기분 좋게 칭찬받으며 장내 기능시험 통과 후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합격했다.


당시 부모님의 차는 현대 엑셀이라는 92년도형 차였다. 나름 세단이고 오토차량이었다. 92년도 구입 당시에 창문을 버튼으로 내리는 오토 윈도라는 엄청난 옵션이 들어간 차였다. 스티어링 휠은 지금의 mdps가 없는 정말 빡빡하게 힘으로 돌려야 했다.

명절날 고향에 거의 다다를 때쯤 아버지가 갑자기 나한테 운전대를 잡으라고 했다. 오토차량이라 시동 꺼질 위험도 없으니 아버지는 분명 내가 큰 위협적인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었다. 기어는 P에, 사이드 브레이크는 잠겨있었다.

깜빡하고 기어만 D로 놓은 채 엑셀을 시원하게 쏴악 밟아버렸다. 옆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그 불같은 강사보다 더 심하게 야단을 쳤고 그날 알았다.

"가족끼리는 절대 운전 연수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보다 재밌는 것을 봤다. 7년 전 프로그램이었는데 바로 존댓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실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부부끼리 운전연수를 하는데 연령대별로 실험을 했다. 남편은 운전 경력자이며, 아내는 면허 딴 왕초보였다. 안 봐도 결과는 훤했다. 저러다 이혼 안 하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으로 시청했다.

역시나 결과는 내가 예상한 것을 그대로 따라갔다. 남편은 속 터져 죽으려고 하고 아내는 가뜩이나 긴장상태 인데 남편의 참다못한 불호령에 이미 운전을 하냐 마냐 보다는 남편과 사냐 마냐의 기로였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로 어느 의사분이 존댓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남편이 처음에는 소리 버럭버럭 지르다가 점점 말이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대화가 되는 그 장면이 참 재밌었고 더 재밌었던 건 30대 부부의 운전연수 중 남편의 대사였다.

아내가 운전하다 차선을 변경했다. 그리고 땡큐 버튼이라고 뭔가를 누르는데 바로 비상 깜빡이였다.

그거 찾다가 전방주시가 흐트러질까 봐 남편이 대신 눌러줬다. 그리고는

"뒤차에게 땡큐 하다가 앞차에 아임쏘리야!"

완전 난 배꼽 잡고 웃었다. 남편의 화가 나면서도 어이없어하며 말하는 저 센스가 너무 재밌었고 나 또한 아버지한테 연수받았을 때의 그 상황들이 잠시 떠올랐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해본 것이 있다. 왜 자동차에는 땡큐 버튼이 따로 없을까? 왜 비상 깜빡이로만 표현해야 할까?


초등학생 때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당시에 좀 1차 편도로 왕복할 만한 거리인데도 차선이 없다 보니 인도가 없었다. 30km 서행은 더더욱 없었다. 학교가 근처에 있지만 아이들이 다닐만한 보도블록 같은 건 없이 그냥 차 오면 알아서 옆으로 비켜야 했다.

나도 친구들도 그렇게 길 가운데서 장난치다 뒤에서 참다못한 아저씨들이 연신 클락션을 울려대면 짜증 나서 그 차를 째려보곤 했다.

어떤 날은 신기하게도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차가 지나가요"라는 말이 뒤에서 들렸고 얼른 뒤를 돌아봤더니 차 한 대가 서서 우리가 비켜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게 차를 쳐다봤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모두 길을 터주었다.


적어도 표현만 가능하다면!

운전경력 18년 차. 여전히 차선 변경 시에는 반드시 깜빡이를 켜고 내가 가야 할 목적지에 맞게 미리미리 차선을 변경한다. 좀 급하게 변경해야 할 경우에는 최대한 창문을 내려 손을 들고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제스처를 한다. 그러다 저 땡큐 버튼과 초등학생 때 비켜달라는 차의 클락션이 생각났다.

왜 저런 클락션이 기본으로 장착되지 않을까? 그리고 왜 땡큐 버튼은 차에 없을까? 비상 깜빡이는 엄연히 그 역할이 따로 있다. 근데 땡큐 버튼을 비상 깜빡이로 대체하는 게 물론 지금의 암묵적인 룰이 되었지만 따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운전을 하다 보면 차선 변경이야 당연히 해야 한다. 물론 원치 않게 급차선 변경을 할 경우도 많다. 그때마다 비상 깜빡이를 켜거나 손을 들지만 일일이 다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가끔은 뒤차가 상향 등을 연신 켜거나 클락션을 울려댄다.

그럼 기분이 그렇게 나쁘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버려?' 하지만 이건 보복운전이 되어버린다.

평소처럼 비상 깜빡이나 손을 들었다면 저 차는 나에게 저런 행동을 했을까? 아마도 10중 8,9는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바꿔 생각하면 그냥 깜빡이에 "땡큐"라는 글귀가 나오게 하던지, 뭔가 비켜줘서 고맙다는 감정을 알릴 수 있는 표시를 한다면 서로가 기분 좋게 양보받고 양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동차는 개인이 소유한 물건이며 그 안에서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익명성 또한 보장된다. 때로는 부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개인의 물건을 끌고 가면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니까, 내차가 상대차보다 더 비싼 차니까, 내 차가 더 크니까, 내 차가 더 빠르니까 라며 급차선 변경을 하거나 흔히 말하는 칼치기를 해서 위협적인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정말 급해서 그렇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연신 비상 깜빡이를 켜는 건 아무리 경력이 많더라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고속으로 달리다 보면 전방주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상 깜빡이를 누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4차 산업혁명시대이자 AI가 판을 치는 세상이 왔다. 그에 맞춰 요즘 나오는 차들은 음성인식을 통한 인포메이션 작동이 가능해졌다. 편의를 위한 기술 발달은 고도화되어 간다. 이런 기술들이 안전이나 사회적 감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난폭운전, 보복운전이 날로 기승을 치고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하는대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다.

그냥 운전자 말로 "고마워""먼저 갈게 미안해"라고 말만 한다면 자동차 뒤에 어디서든 그런 글귀나 표시가 뜨게 된다면 난폭운전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보복운전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도 양보한 차에 대한 감사 표시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그럼 그만큼 운전자들이 한결 더 편안하고 기분 좋게 운전을 하지 않을까?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운전자들에게, 그리고 그 마음을 대변하려는 자동차에게만큼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장장 찰리한의 아직도 급차선 변경에 따른 보복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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