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 나쁜 놈들아!
호주에서 일할 땐 시간제와 능력제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농장에서 대부분 두 가지를 선택하게 한다.
시급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든 시간당 비용을 말하고, 능력제는 시급과 상관없이 결과물에 대한 보상이다. 농장에서는 수확물을 얼마나 수확하느냐에 따라 능력제로 돈을 받는 경우가 적은 시간 대비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물론 이는 한국인처럼 죽어라 일만 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언제나처럼 '호주나라'사이트에서 일을 구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일은 구하기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일 노동자의 삶을 있어가고 있었다. 운 좋게도 폐가전 및 폐가구 수거하는 일을 3일 정도 꾸준히 했었다. 이사 가면서 놓고 가는 물건들을 치우기도 했고, 조금 섬뜻했지만 범죄사건이 일어난 집의 물건을 치우기도 했었다. 집안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거미줄 처럼 쳐져있었고 카펫의 핏자국을 보면서도 가구를 치워서 팔아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충격받을 시간이나 여유는 없었다.
아파트에 가서 물건을 치울 때는 한 남성분과 여성분이 우리가 치우는 물건들을 보면서 자기네 집에 좀 옮겨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때 사장님은 어차피 돈으로 받지도 못할 것들이라며 바로 옆집이니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직원 한 명과 함께 물건을 옮기려고 옆집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웬 담배냄새가 아주 찌들 때로 찌들었던 그 집에는 물담배를 피우는 기구들이 바닥에 나뒹굴려 져 있었다. 속옷이며 옷이며 정말 집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은 없었다.
물건을 얼른 놓고 나오는데 같이 물건을 나르던 직원이 나한테 말해줬다.
"이 사람들 마리화나 하는 사람들이야. 봤지? 저 물담배? 저기에 마리화나 넣고 피면 일반 담배보다 흡수도 빠르고 더 강력한 효과를 봐. 집안 냄새 맡아봤지? 담배 쩐 냄새보다 더 독해"
그게 말로만 들었던, 호주에서 밤에 길 가다가 도 누군가 와서 "Drug Drug"하면 바로 구매할 수 있다는 마약 마리화나였다. 냄새는 너무 역했다. 그렇게 재미없는 경험을 하고 아파트에서 물건을 다 빼서 차에 옮기고 있었는데 옆집에 있던 그 남녀는 우리를 보고는 그냥 쌩 하고 가버렸다. 아니 마치 우리를 못 알아보는 것처럼.
그러자 또 그 직원이 말했다.
"지금 약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거야"
그 모습을 보니 좀 한심스러웠다. '저렇게 사는 게 과연 좋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집을 보면서 과연 그게 옳은 삶인가 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3일간 그렇게 일하고 나니 수중에 돈이 좀 생겼다. 2주간의 셰어하우스 비용은 벌었으니 앞으로 또 꾸준히 일한다면 식비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또다시 사이트에 나온 일자리를 검색해봤다. 그중에 내 눈에 확 하고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농장에 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농장일은 시간으로 버는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일이 숙달되면 능력제로 전환해서 한주에 1000달러 정도는 쉽게 벌 수 있다고 했다. 농작물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인 같이 일만 죽어라 하는 민족은 한주에 적어도 600달러는 쉽게 번다고 들어서 언젠가는 꼭 가야지 했는데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올라온 것이다.
얼른 클릭해서 내용을 읽어봤다. 농장 출발은 시드니에서 며칠 몇 시 어디에서 할 것이며, 케빈(그냥 컨테이너 박스에 침대 몇 개 넣은 숙소)에 머물 비용, 장갑 비용, 농작물 채취용 가위 비용으로 300달러를 선지급해야 한다고 써져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난 surryhills에 머물고 있어 어디서 만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센트럴 스테이션에서 만나자고 했다.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여서 나도 좋다고 했다.
3일간 열심히 번 돈과 갖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서 300달러를 만들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서 센트럴 스테이션으로 갔다. 농장에 가면 한국인의 근성과 끈질김을 유감없이 보여줄 기세를 갖고 월 4000달러를 벌겠다는 허황된 생각과 함께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상대방을 기다렸다.
저 멀리 선글라스를 낀 남자분이 다가왔다.
"찰리 한 씨 맞죠?"
"네 제가 찰리 한입니다"
그리고선 인터넷의 내용대로 선지급이 필요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난 어느 지역에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봤고 캐빈은 몇 명이 사용하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에 대한 답을 다 듣고 난 후 아무런 의심 없이 300달러를 건넸다.
"그럼 이틀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부푼 꿈을 꾸면서 셰어하우스로 돌아와 동생들 에게 말했다.
"얘들아! 나 농장 간다. 만다린 좀 따다가 체리농장 갈 거야. 드디어 시드니를 벗어나 돈을 좀 많이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어떻게 형이 한잔 쏠까?"
그런데 룸메이트 동생들은 그 말을 듣고는 나한테 물어본다.
"형! 그 사람 누군지 알고 돈 건넨 거야?"
"뭐? 누구냐니. 호주나라에 올라온 일인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왜 선글라스를 건물 안에서도 썼지?'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의기양양하게
"연락처 받았어. 이틀 뒤에 전화 준데"
그랬더니 동생들이 말했다.
"형! 지금 전화 빨리 해봐"
나는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 대기음만 들릴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늘은 바빠서 그럴 거야. 이틀 뒤에 전화 준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오겠지"
동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형마저도 이렇게 정신 못 차리냐면서.
하지만 난 믿었다. 이게 다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연락 온다던 그 번호는 연락이 없었다. 수백 통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통화대기 음만 울릴 뿐이었다.
옆에 있던 동생들이 말을 건넨다.
"형! 호주나라 일들이 다 믿을 건 아니야! 근데 어떻게 의심조차 안 했어? 형!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한국인 등 처먹는 건 한국인밖에 없어!"
갑자기 골드코스트에서 타일 일을 하면서 못 받은 돈.... 그 Dr.kim 이 생각났다. 그 한국인 사장도 그랬는데 이번엔 생판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에게 농장 간다는 공고만 보고 혼자 들떠서 있는 돈 다 들고 가서 그냥 갇다 바친 내 모습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아니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계속 나를 자책할 뿐이었다.
"아니 어떻게 의심 한번 안 했니?" 이 말이 그날 내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 온 지 5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모님한테 돈이야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생활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했고 거지처럼 살더라도 내 힘으로 벌어서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
동생들이 위로해준다. 술 한잔 하자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와인을 샀고 그날 와인만 3병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숙취로 인한 두통이었다.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바보 멍청이" 온갖 부정적 수식어가 가득 차 있었다.
동생들이 괜찮냐며 물어봤다.
어제 2병째부터 좀 이상했는데 3병 딱 마시더니 "얘들아 미안하다 나 먼저 잘게" 하고 방에 들어가길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거 아닌가 하고 창문 잠가놓고 계속 날 예의주시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런 동생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이국땅에서도 걱정해주는 녀석들이 고마웠지만 한심스러운 형의 모습을 보여준 게 창피하기도 했다.
아픈 머리를 이끌고 또 서큘러키로 갔다. 가서 물 멍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드니는 너무 아름다웠다. 따사로운 햇살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란 하늘, 실타래 풀어놓은 것처럼 흩날리는 구름, 그 사이를 오고 가는 비행기와 새들. 페리들이 오고 가며 출렁이는 바닷물에 따라 춤추듯 반짝이는 빛들,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찬 표정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 초대받지 못한 손님!
나는 한번 더 여기서 외톨이가 되었다.
이때는 정말 신기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 전화했다. 하필이면 그 누나(지금의 아내)한테 전화했을 때 울먹이는 것 빼고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