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야. 아니라고!!!
시드니에서 볼만한 건? 역시나 나에겐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거지새와 갈매기에게 해시 포테이토를 빼앗긴 달링하버 정도였다. 돈이 많다면 더 볼만한 것들이 많겠지만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아낄 거 아껴가며 생활했었다. 그렇다면 역시나 무료관람이 좋은 것이고 저 3곳은 무료관람이라 하기엔 더없이 큰 기쁨과 감동을 줬다.
우리나라도 5일장, 새벽시장, 벼룩시장?, 도깨비시장이 열리듯이 토, 일요일마다 the rocks 지역에서는 rocks market 이 열린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음식, 예술, 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예술공연과 작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주는 색다른 재미에 빠지다 보니 주말마다 가는 것이 새로운 기쁨이 돼버렸다.
유리공예부터 스프레이 공예까지 예술가들이 많았다. 한참을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돈 없이 마켓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냐? 이거 사면 어떤 기분이 드냐, 내가 이걸 살 때 얻을 수 있는 건 뭐냐" 등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질문하면서 영어 습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 다시 달링하버까지 걸어갔다. 근데 웬걸... 저 멀리 뭔가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다.
"옳다구나. 마켓 같은 건가?" 하고 얼른 달려갔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정말 달랐다. 그건 바로 동성애자의 축제 퍼레이드였다. 뭐 너무 선정적인 것들이 많아서 여기다 다 적을 수 없지만 1년에 특정 날 이런 퍼레이드를 한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뛰어갔다가 퍼레이드의 목적을 확인하고선 다른 곳으로 길을 향했다.
나는 오로지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펍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 말끔하게 생기신 분들이 나를 불렀다. 흔히 뭐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야! 어디가? 여기 와서 우리랑 놀래?"
어이쿠! 드디어 친절한 외쿡인을 만났구나 해서 기뻤다. '그래 드디어 외쿡인 친구를 사귀게 되는구나' 하고
"OK~~~~"를 크게 외치고 그 펍 앞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펍 안으로 나를 안내했고, 친절한 그들의 스킨십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술까지 사줘? 완전 땡큐"
하지만 펍에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문용어로 "쎄 했다"
펍 안이 너무 어둡다. 조명은 약간 정육점 같은 핑크빛이 돈다. 펍인데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앉아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술 마시는 관경은 낯설지 않았는데 그들의 손 위치가 아주 낯설었다. 보통 내가 아는 손 위치는 기껏 손, 어깨, 머리 정도까지 였지만 그 위치가 아닌 장소에 손이 가 있었다.
잘못됐다, 뭔가 이상함을 피부가 느꼈다.
'뭐... 뭐야... 이거'
근데 난 이미 어깨동무를 한 채 펍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뭔가 빠져나와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더 큰 오해가 생길 것 같았다.
"I... like woman. I love girl... I am not gay. Sorry buddy"
어깨동무하던 두 외쿡인 친구는 내가 이 말을 하자 팔을 풀었고, 그때 난 잽싸게 튀어나왔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아무 방향으로든 뛰었다.
셰어하우스로 와서 룸메이트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 명이 말해줬다.
"형! 핑크색 옷이 여기서 무슨 의미인 줄 알아?"
"아니, 뭔데?"
"형 성 소수자라고 알리는 거야. 핑크색은 게이를 뜻하는 거라고"
"뭐???"
아니 한국에서도 없는 문화인데 여긴 왜 그런 걸까. 왜 그 누구도 나한테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근데 핑크색 옷 보다 더 충격적인 건 등에 새겨진 글자였다. 아마도 핑크색옷은 시선을 끌었다면 결정적 한방은 바로 뒤에 새겨진 글자가 맞을 것 같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펍은 게이 펍이었다. 나는 핑크색 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은 내가 같은 성 소수자인줄 알았다. 근데 등에는 "친절한 봉사"라는 글씨가 똬악 적혀있으니, 결과야 당연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난 그 옷을 입지 않았다. 귀걸이도 빼버렸다.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도 입지 않았고, 빨간 바지 또한. 붉디붉은 모든 것은 케리어에 넣어놓고 나니 노란색과 검은색 옷, 청바지 3벌밖에 남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패션이 될 수밖에 없는 옷들의 조합이지만
"괜찮아 어차피 한국 친구들은 이거 안 볼 거니까"
성소수자의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만약 알았다면 그때 그옷을 안입고 나갔을 것이고 그럼 그 펍의 친구들과 서로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지!
외국인들이 한글 새겨진 티를 입고 지나가는 걸 보면 참 재밌다. 그저 검은티에 흰글자로 앞에는 '앞' , 뒤에는 '뒤' 라고 씌여져 있는데 그 의미는 알고 입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