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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13: 거지새와 갈매기!

난 새만도 못해!

by 찰리한

시드니 surryhills 지역, 엘리베이터가 있는 4층 건물, 그 셰어하우스에는 4명이 한방을 사용했다. 흔히들 닭장 셰어라고 한다. 이름 모를 낯선 한국인 3명. 하필 또 내가 형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린 낯선 땅에서 만난 이름 모를 친구들이니까. 그리고 밤이 되면 sydney tower 가 보여 혼자 생각을 잠기기에 충분히 좋은 야경이었다.

시드니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여전히 캐시 잡이 구하기 쉽지만 일자리가 많은 만큼 구직자도 많아 이마저도 쉽진 않다고 한다.

시드니는 타일 관련은 거의 없었다. 초밥 말이, 폐가전 또는 폐가구 수거, 매장 서빙, 세차장 등등 여러 직종군이 있었지만 시급은 거의 동일했다. 다른 방에는 여자 4명이 머무는데 중국어를 좀 하는 여자애는 중국 식품관에서 일한다고 한다.


'호주나라' 라는 사이트가 여기서 일을 구하기 가장 흔한 한국인들의 웹사이트였고 하루에 적게는 20개부터 많게는 100개가 넘는 일자리 공고가 올라왔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카페 서빙 공고였다.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지만 그 돈마저 아껴보겠다며 40분을 걸어갔다.

당시 스마트폰이 보급화 되지 않았기에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도로명을 따라 겨우 도착했는데 하필 담당자가 외쿡인이었다. 영어로 물어보는데 호주애들 발음도 알아듣기 힘든데 담당자의 영어는 여전히도 알아듯기 힘들었다. 턱수염이라도 자르면 입모양 보고 뉘앙스로 어떡해서든 맞장구치고 싶은데 입모양도 안보이지, 표정도 없지 감정도 읽기 힘들지 그래서 그냥 나도 내 할 말만 했다.

"I am very good worker. I can do anything." "Nothing is impossible"

이 말만 5번은 하고 나온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은 끝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저 멀리 익숙한 피에로가 보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나의 사랑 맥도널드 아냐!!”

마치 오랜만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얼른 그곳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호주의 맥도널드는 이날이 처음이라 아무 정보도 없었다. 그저 한국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나의 사랑 불고기버거를 찾아보는데 눈 씻고 찾아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의 환상 콜라보 set 메뉴가 보이지 않았다.

'세트메뉴 어딨는거냐고!!!'

외쿡은 set가 아닌 meal이라고 표기되는데 그것을 알리 없고 알아차릴 수도 없던 나란... 녀석은 참.

도저히 불고기 버거를 을 수 없어 한참을 쳐다보다 angus burger를 주문했다. 왠지 위에 aussie가 붙어있기에 시그니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Hi how are you"

"I wanna angus burger set please."

(이젠 hi how are you는 익숙해져서 대답하지 않는다)


캐셔는 바로 대답했다

"anything else?"

"Take out please. Thanks"

하고 기다렸다. 날이 좋으니 밖에서 영화에 나오는 그들처럼 멋지게 한 손엔 버거, 한 손엔 콜라, 얼굴엔 선글라스를 끼고 먹어보고 싶은 허세만 가득 차 있었다.

번호가 불리고 내 것이 나왔다. 근데 분명 set 달라고 했는데 버거만 달랑 하나 나왔다. set이라는 말이 안 들린 건가, 주문실수인가 하고 영수증을 보니 진짜 달랑 햄버거 하나만 주문 들어갔다. meal이란 것을 몰랐기에 다시 설명할 영어 구사력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추가 주문을 하고 돈을 더 주고 시켜야 했다. 그 와중에 감자 프라이드보다는 해시 포테이토가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변경했다.


맥도널드에서 낭만적인 항구 달링하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그놈의 허세를 꼭 거기까지 걸어가서 부렸다.

달링하버는 원래 발전소나 조선소 같은 것들이 있는 지저분한 곳이었는데 뭐 20년 전에? 대대적 공사를 통해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좋아라 하고 자주 가는 스타시티 카지노가 있기에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나에겐 언제나 방문하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난 당시 하버브리지 러버이자 서쿨러퀴 사생팬 수준이었기에 셰어하우스에서 10분이면 가는 달링하버 보다는 30분 걸어가야 나오는 저곳들을 더 자주 찾았다.


그렇게 달링하버에서 선글라스 끼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며 콜라를 마시며 나만의 허세를 가득 부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갈매기들이 날아왔다. 뭐 한국에서도 한강 가면 저런 새들이야 맨날 날아오니까 대수롭지 않았는데 '페... 펠리컨?? 펠리컨을 내가 도심에서 본다고?'

펠리컨이 날아왔다. 너무 놀라서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근데 펠리컨 치고 주둥이가 너무 작고 앙증맞았다. 저건 또 뭔 새인가 하고 봤다.

말로만 그렇게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거지새였다. 정확한 이름은 IBIS라는 새인데 사람들이 뭔가 먹기만 하면 날아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해서 한국인들은 이 새를 통상 거지새로 부른다.


'펠리컨은 아녔구나' 라는 아쉬움과 함께 먹던 버거와 콜라를 열심히 먹는데 갈매기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거지새 역시 점점 그 개체수를 늘리고 있었다.

거지새와 갈매기가 서로 영역싸움을 한다.

'뭐지? 난 줄 생각도 없는데?' 나의 피딩 타임 욕구를 샘솟게 하는 건 왕관앵무새 하나였다.


신경 쓰지 않고 먹던 버거와 콜라를 마시는데 거지새가 갈매기가 아닌 나한테 선제공격을 날렸다. 내가 마시던 콜라를 긴 부리로 한대 톡 치는 것이다.

"아니 이런 새 같은 놈이 어딜 감히" 하면서 일어나 새들을 쫓았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멀어질 뿐 다시 와서 또 내 먹을 것들을 하나씩 뺏으려 했다.

인해전술에 내가 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버거를 얼른 입에 쑤셔 넣고 콜라를 마구 빨아 마셨다.

잊혔던 것이 하나 있었다. 햄버거 다 먹고 디저트로 먹을 커다란 해시 포테이토 튀김은 고스란히 내 옆에 남아있었다. 아직도 배가 고픈 나는 이것 역시 한치의 양보는 할 수 없었다.

거지새의 레이더망에 해시 포테이토가 들어왔고 그 커다란 부리로 포테이토를 쪼으려고 한다. 얼른 포테이토 봉지를 치켜들었다.

그때 아주 정확한 슬로모션으로 저 멀리 갈매기가 날아와서는 부리로 마이 프레셔스 해시 포테이토를 쏙 빼서 날아갔다.

"아... 이런 거지세... 아.. 아니 거지 같은 세.... 아... 아우 이 거지새가 진짜"


하지만 그들의 인해전술과 연합작전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나마 남은 콜라는 끝까지 사수했다. 해시 포테이토를 물고 날아가는 갈매기들 뒤로 다른 갈매기와 거지새가 따라 날아갔다. 그리고 남아있던 새들은 내가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쏜살같이 떠나버렸고, 내 손에는 빈 해시 포테이토 봉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달링하버와 나의 첫 만남은 이렇게 어이 없었다.

달링하버라고? 달링? 달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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