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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Aug 15. 2023

타협이 안되는 신생아 육아

초보 아빠의 육아 감상문

출산휴가 10일에다 연차까지 며칠 더해보름에 가까운 시간을 아내와 육아에 전념하며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태어난 지 40여 일이 되는 날부터 휴가가 시작됐다. 회사에 입사한 뒤로 이토록 긴 시간 휴가를 써본 적이 여태 없었다. 사실 '휴가'라는 표현을 쓰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귀했을 때 "잘 쉬고 돌아왔냐"는 회사 선후배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래도 육아를 제대로 경험해본 선배들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였던가, 아님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였던가. '애 하나 낳고 기르는 걸로 너무 유세부리지 마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양심 고백하자면,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했더랬다. 그래, 예전에는 육남매, 칠남매도 업어 키웠는데 아기 하나 갖고 무슨 호들갑은. 이런 '철 없는'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치열했던 생후 3주의 기록. 이렇게 써놓질 않으면 몆시에 뭘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일상의 쳇바퀴이기에.


그런 생각은 아내와 아이가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며칠 뒤부터 산산히 조각났다. 이혼과 부부 관계를 다루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성이 "신생아는 하루종일 누워서 잠만 자잖아요"라고 발언했는데, SNS로 그 발언을 접하고 나도 가슴을 두드리며 공분을 했다. 산후조리원을 갓 졸업한 아이는 밤낮 없이 정확히 3시간마다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초보 엄마 아빠가 2인 1조를 이뤄 함께 투입돼야만 했다.


기저귀 가는 법도 익숙치 않아 종종 소변이 흘러내렸고, 기저귀를 가는 타이밍에 대변이나 소변의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건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피하는지 알고 싶다) '맘마'를 주면 끝이 아니라, 트림을 할 때까지 어르고 달래야 한다. 방심하는 순간 먹은 걸 도로 게워냈고, 옷을 너무 자주 갈아입어 잠옷이 모자랄 정도였다.


아내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모유를 주고 싶었기에 분유가 아닌 모유를 물렸고, 방법을 잘 몰랐던 초반에는 유축을 해야했다. 모유를 먹이고 모자란 만큼 분유를 주는 동안 아내는 유축을 했다. 그런 아내 앞에서 '힘들다'며 이러쿵 저러쿵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평소에 잠이 많던 아내가 수면부족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참 괴로웠다. 아내의 우울감을 덜어주기 위해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데, 어느 날엔 통했고 어느 날엔 먹히지 않았다.


하룻밤새 3~4번 아이가 깨는동안에는 정말 입 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고된 하루들을 보냈다. 하루가 지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내게 훈련병 때로 돌아가 한 달간의 훈련소 생활과 갓난아기를 키우는 걸 고르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갓난아이와는 타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초보 엄마 아빠의 고됨, 속상함, 실수, 우울감과는 무관하게 아이는 울고 먹고 잔다. 아무리 고된 생활이라 할 지라도 어른들의 세계에선 그래도 '힘들어 죽겠으니 잠깐만 쉴게요'가 통한다.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걸, 이렇게 힘들 거라는 이야길 왜 아무도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쓴웃음도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는 여러차례 말해줬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건 내가 아니었을까.


냉정한 계산일지는 모르겠으나 아이가 주는 편익이 클지 비용이 클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렇게 초반에 압도적으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난다면, 아이는 점점 우상향하는 편익을 제공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육아 선배들의 이야기로는 아이가 일어서서 걷고 뛰면 그때가 더 힘들다고 했다. 차라리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낫다고.


그래도 아내와 나 둘이서 지낼 때보다, 갓난아이지만 셋이서 함께 지낸다는 사실이 주는 포근함이 있다. 아이 덕분에 아내와의 일종의 연대도 한층 강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힘들 순간이 많이 있겠지만, 함께 넘어설 수 있다는 그런 연대감. 어느 아파트 광고의 문구가 가장 공감됐다. "근데 뭐 둘보다는, 셋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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