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픽?

by 한수

그날이다.

뭐 특별히 기다린 건 아니다.

'그날'이 왔음을 알게 되었고 작년 '그날'이 떠올랐을 뿐이다.

일 년에 한 번, 우리는 가까운 강변으로 나들이를 간다.


장비를 든 친척들이 하나 둘 우리집으로 모인다.

누가 누가 왔나….


늘 땅땅거리는 큰집이 왔다.

큰집이라 그러는 건지 정말 뭐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큰집 말이라면 군소리 없이 따른다.

신기한 노릇이다.

혼자 사는 삼촌도 왔다.

몇 년 전 이혼해서 혼자가 됐는데, 예나 지금이나 밝고 엉뚱하고 빠릿빠릿하다.

어릴 땐 나와 잘 놀아 줬는데, 이제는 내가 좀 어색하다.

그렇다고 삼촌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쉽지 않다.

이런, 웃는 걸 들킨 것 같다.

모른 척해야지.


사촌들도 빼곡하다.

뭐 좋다고 따라들 오는지.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일곱 살, 다섯 살… 나이대도 다양하다.

귀찮은 녀석들.

그래도 가끔 줄세워 놓고 이것저것 시키는 맛은 있다.


우리 가족까지 대략 서른 다섯 명 정도가 강변으로 간다.

일부는 장비를 실은 경운기를 타고, 나머지는 슬슬 걸어서 그곳에 도착한다.

어른들 몇몇은 천막을 치고, 또 몇몇은 먹을 것 준비를 한다.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고 갓 지어서 가져 온 밥을 그릇에 옮겨 담는다.

어린 녀석들은 갖가지 잔심부름을 한다.

없는 게 더 나을 정도지만.


나는 여기에 오는 게 그리 탐탁지는 않다.

나는 애가 아니니까.

그냥 오늘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날'이기도 하니까 참고 따라온 것이다.

밥을 두 그릇이나 먹은 건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일 뿐이다.


접시며 남은 음식이며 큰 대야에 옮겨 놓고 수박을 자른다.

어린 놈들은 수박 하나씩 들고 얕은 강물에서 첨벙첨벙 놀고 있다.

중고생 놈들도 아이들 볼 겸 그곳에 있는데 꽤 귀찮은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끼리 물을 뿌리며 진심이 드러난다.

그래 너희들도 애들이지.


천막 아래 몇몇 어른들이 각각 맥주캔을 들고 둘러앉았다.

“대학생! 맥주 한 캔 해야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잡고 맥주캔을 받는다.

“마실 줄은 알지?”

흥. 작년의 내가 아니다.


딸깍, 치-

지난 일 년 간 수도 없이 들었던 익숙한 소리다.


좋다. 한 번에 가는 거다.

꿀꺽 꿀꺽.

맛있다. 시원하다. 원래 이런 거였나?

꿀꺽 꿀꺽.

너무 싱겁게 끝나겠다.

꿀꺽 꿀꺽.

“오 대학생. 술 마실 줄 아네?”

삼촌의 한마디.

나는 곁눈질로 삼촌을 보며 ‘이게 뭐 큰일입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꿀꺽 꿀 꺽.

좀 배가 부르다. 목도 따갑고.

꿀꺽.

조금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꿀 꺽.

조금만, 힘내자!

꿀꺽… “우엑!”


지난 해 오늘을 잊지 못한다.

술 한 잔 못 한다는 말, 꼭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한 거였다.

옆에 있던 동생놈들이 웃어서도 아니다.

나도 어른인데, 이것 하나 못 마신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자신 있었다.

지난 일 년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벌떡 일어나 천막을 벗어난다.

혼자 있고 싶다.

내년 여름에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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