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잘 통한다.”
서로의 마음이 잘 맞을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합니다.
‘잘 통하는’ 건 어느 정도 깊은 관계가 형성된 후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의 깊이와 상관없이 종종 그것을 원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심지어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 사람이 나의 바람대로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내 뜻과 다른 과정이나 결과를 볼 때면 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연애할 때부터 서로를 지켜본 사람이에요. 기죽어 있으면 힘을 북돋아 주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건네기도 합니다. 찌질한 모습은 물론, 유치한 애정표현과 어쭙잖은 개그까지 사이좋게 나눈 사이입니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비밀을 공유해 왔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커집니다. 친한 사람에게 갖는 기대감이 있잖아요. ‘친하다’ 혹은 ‘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우리는, 기대감이 아니라 확신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항상 그래 왔으니까 알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지.’
그렇게 하지 않을까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신경쓸 필요 없어요. 당연히 그렇게 될 거잖아요.
종종 그 기대는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사람이 항상 그럴 수는 없거든요.
상대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나처럼 (솔직히 말해 내 뜻과 동일하게) 할 수가 있나요? 어떻게 나의 뜻을 알 수가 있나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대신 나의 직감과 바람을 믿어요. 결국 아쉽고 실망스럽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언제나’ ‘정확히’ ‘내 뜻대로’ 될 리는 없거든요.
실망은 다툼의 불씨가 됩니다. 아무런 언질도 해 주지 않았으면서 “왜 나의 뜻을 모르느냐.” 합니다.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해요. 그러면 상대방은 미안해집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잘하겠다고, 잘 헤아리겠다고 다짐해요.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요.
우리는 두 사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 봐야 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지만, 이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그 사람과 나는 따로 존재하잖아요. 부부가 되기로 했다고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일심동체라는 말은 ‘같아진다’거나 ‘같아지라’는 말이 아니라 ‘함께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습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마음이 잘 보이기는 합니다. 속이 훤하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순간을 잡아냅니다. 상대의 얼굴에 희미하게 비치는 표정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오랜 시간 상대에 대해 공부를 해 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분 좋을 때와 나쁠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와 맛없는 것을 먹을 때, 좋아하는 사람을 대할 때,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때로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적인 신호들까지 알아채기 때문에 상대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지요. 그때, 놀란 표정을 지은 상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알아 주는 건 역시 당신밖에 없어!”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확률에 근거하여 판단합니다. 상대가 늘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언제나 같았던 선택이 있어요. 어제 좋아했던 것이라 해서, 열에 아홉 같은 선택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와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도출한 것이 대부분 정답이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되겠지요.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될 테고요. 사이가 깊어질수록 서로의 많은 것을 대신해 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대 그 누구의 마음도 읽을 수 없습니다. 깊고 진한 시간을 오래도록 거쳐 왔음에도 여전히 예측할 뿐이에요. 경험에 근거하여 반응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한 적도 생각보다 많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나의 바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험도 해 봤을 거고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중이 진심이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
그래서 표현이 중요합니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세요. 나의 상태를 알려주세요. 상대방에게도 말해 달라 하세요. 그래야 서로를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불안해’ ‘슬퍼’ ‘속상해’ ‘섭섭해’ ‘좋아’ ‘싫어’라고 말하세요. ‘먹고 싶지 않아’ ‘가지고 싶어’ ‘중요해’ ‘중요하지 않아’ ‘맛있어’라고 말하세요.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 이유까지 구체적으로요.
한번은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런 말을 듣습니다.
“말을 하지 그랬어.”
하마터면 “그걸 꼭 말해야 아느냐!”고 소리칠 뻔했습니다. 그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요.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알려주지 않은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때로는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말이죠.
솔직한 표현. 우리 대부분이 제대로 익히지 못한 능력입니다. 참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멋있고 옳은 것처럼 배워 왔지요. 물론 어떤 관계에는 어느 정도 가식이 필요한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부부 사이는 달라야 합니다. 늘 겪게 될 일, 늘 느끼게 될 감정을 숨기지 마세요. 어렵겠지만 터놓고 얘기하세요. 우리는 초능력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