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일

내가 나만 좋자고 이래?

by 한수

아내와 나는 기본적으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때로는 다른 고민을 할지언정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둘과 관련한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고 또 모든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나만의 것도 아내만의 것도 아닙니다. ‘한 배를 탔다’는 표현이 이렇게나 딱 맞는 상황이 어디 있을까요.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인간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하던 대로 행동해요. 휴대폰을 보면서도 길을 걷고, 정신없이 술을 마셔도 아침은 꼭 우리집 방바닥에서 맞이하게 되잖아요.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발이 알아서 움직여 줘요. 신경쓰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는, 습관이란 참 신기하고 고마운 것입니다.


습관은 관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도 있고요. 언제든 무슨 일이든 특정한 그 역할은 ‘그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로 약속한 게 아닌데도요.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떠밀렸든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든 한두 번 나서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으레 그렇게 됩니다. 나중에는 공공연하게 그 역할의 담당이 되어 버립니다.


가정에서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흐름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익숙하거나 조금 더 잘하는 일을 맡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요리에 능숙해 주로 식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다른 한 사람은 깔끔한 성격 덕분에 청소나 정리 정돈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좋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납득하고 이해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상황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출근이 늦은 어느 날, 옷도 제대로 여미지 못하고 허둥지둥 현관을 나서는 내게 아내가 말합니다.

“오늘 분리수거 당신이 하는 날이잖아. 저녁에는 안 가져가니까 지금 하면서 나가.”


이런 건 어떤가요?


주말 오후, 아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습니다. 나는 그 옆에 누워 TV를 시청하고 있어요.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내가 묻습니다.

"밥은 언제 줄 거야?"



물론 살다 보면, 언급했다시피 각자의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밥은 남편이 설거지는 아내가, 주문은 아내가 결제는 남편이, 청소는 남편이 정리는 아내가 할 수 있지요.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맡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은 효율성을 고려하여 정해집니다. 가끔은 선호에 의해 배정될지도 모르겠네요. 비선호를 피해 갈 수도 있고요. 그 자체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역시 태도에서 나오지요.


“왜 세탁기는 나만 돌려?”


어느 날 아내가 한 말입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탁기는 아내만 돌린 게 사실이거든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으로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괜찮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아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집안일을 언급할 때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언뜻 보면 다정한 듯 보이지만 조금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우리의 일인데 도와준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 일을 하고 있는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요. 함께 먹을 밥을 차리고 있는데 손을 보탰다 해서 ‘도와줬다’ 말하는 건 무언가 이상하지요. 내가 청소를 했으니 고마워하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할 일 네가 할 일 구분하며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닙니다. 여긴 직장이 아니잖아요.



그렇다 해도 정석대로만 갈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변형된 문제가 출제되기도 하거든요. 간혹 아내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귀찮은데… 당신이 해 주면 안 돼?”


몸과 마음의 여유가 된다면, 아내가 힘들어 보인다면, 눈치를 보니 ‘흔쾌히 수락하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거라면, 까짓 기꺼이 하세요.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화목한 가정의 기초가 되어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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