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족

그들과 나의 어색한 만남

by 한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 결혼 허락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보았던 드라마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모으기에 결혼이라는 소재가, 그중에서도 결혼을 반대하는 상황이 안성맞춤이었던 거지요.


내용은 보통 이렇습니다. 자식이 원하는 상대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시키기를 꺼려합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음을 소위 ‘낮은 급’으로 인식한 부모가 자녀의 상대를 내칩니다. 자식의 앞길을 망친다고요. 제발 그만 만나라며 돈 봉투를 건네는 장면도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가끔은 주인공 둘이 결혼을 반대하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자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거센 반발을 무시하고 결혼을 강행하려는 경우도 있었지요.


많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극에 빠져들었습니다. 실제 그 부모처럼 행한 사람도 몰입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도 극중 인물을 욕하며 드라마를 봤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참 할 말이 많은가 봅니다.



결혼할 때, 우리 둘이 잘 맞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은 있었어요. 어쩌면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 푹 빠져 있었으니까요. 제 인생에 그렇게 직진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앞이고 옆이고 볼 생각도 안 했어요. 물론 무언가 봤다 한들 대수롭지 않게 어겼을 겁니다.


결혼 후 그 생각은 금세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는 동시에 아내의 가족들도 신경써야 했으니까요. 일단 가족 행사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기쁜 일에는 축하를 안 좋은 일에는 위로를 해야 했지요. 명절은 두말할 것도 없었죠.


자, 오늘은 우리집에서 처가댁 일가친척이 모이는 날입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어른들이 도착하셨답니다. 버선발은 아닐지언정 나름 후다닥 마중을 나갑니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인사하고 기뻐합니다. 짐을 나누어 들고 도란도란 집으로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형제들이 옵니다. 내 형제는 아니지만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까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닐지라도 역시 문앞으로 나갑니다. 미소는 필수지요. 안부를 물으며 함께 들어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밝은 표정을 잃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경청합니다. 웃기지 않아도 제일 크게 또 많이 웃습니다. 주장하는 말에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공감을 표합니다. 가능한 말하는 사람의 목적에 부합한 반응을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에 피로함을 느끼지만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음식이든 술이든 권하시는 대로 먹고 마십니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하하 호호 박장대소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인사를 하고 나서야 모임이 끝납니다. 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이제야 닦습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그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내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신경쓰는 거잖아요. 어색하지만 친한 척하고, 재미있지 않지만 재밌는 척하고, 공감하지 않지만 공감하는 척하는 것도 이미 많이 해 봤으니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우러나지 않더라도 예의상 그렇게 행동할 수 있지요.


진짜 당황스러운 건 이겁니다. 시간이 없어요. 아니,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매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이제 막 알게 된 상대의 가족들과 정말로 친해져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서로 마주한 것이 결혼 전 한두 번이었을지라도 티를 내지 않습니다. 늘 반가운 듯, 즐거운 듯 행동해야 합니다. 예상하다시피 첫인사도 끝인사도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으로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한 가족이 되었기에 가족처럼 대하는 겁니다. 모두가 그렇게 해 왔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는 눈인사 한 번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와 놓고는 결혼과 동시에 친근감을 표현해야 하니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양가 가족들도 그렇습니다. 반가이 맞아 주고 정성을 다해 대접해 줍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역시 어색할 거예요. 만남이 끝나고 뿔뿔이 집으로 향할 때, 얼굴 근육을 풀어야 하는 사람은 우리 둘만이 아닙니다. 처음 본 어른이 나를 향해 양 팔을 펼칠 때 “삼촌이니 괜찮다.”며 가 보라던 때만큼이나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익숙해지고 친근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데 아내에게는 내심 기대를 하게 됩니다. 아내도 어색하고 불편하겠지요. 특별한 (한국사회에서는 특별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우가 아니라면 남편인 나보다 훨씬 많이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갑갑함이 분명 있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형, 형님, 처제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나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하는 어색한 행동에서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끼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태도가 왜 그래? 그게 그렇게 어려워?”


당연히 어렵지요. 아직 정이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정이 있어도 어색할 수 있고요. 이해해야 합니다. 남자가 비교적 덜 어려운 이유는 그 부분에 있어 아내보다 덜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민감도가 다른 거지요. 남자가 갖는 어려움이 약하다는 게 아닙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 종류와 무게감이 다를 뿐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라는 거예요. 그 일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도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마세요. 상황이 그런 것뿐입니다. 스스럼 없는 정도가 애정의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든 과정이 필요한 법이고요. 어렵고 어색하다고 짜증내거나 섭섭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에서 어떤 의도를 찾지 마세요.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결혼은 새로운 가정을 만듦과 동시에 여러 가정의 결합일지도 모릅니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사이가 썩 매끄럽지 않더라도 그 끈은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확장된 그 가족 모두를 가능한 소중히 대해야 해요. 물론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저 각자의 속도대로, 허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진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툴더라도 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내와 나의 관계는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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