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나, 그리고 아내

여보 나 친구 좀 만나고 올게

by 한수

“여보. 나 ㅇ월 ㅇ일에 친구 좀 만나도 될까?”

“누구 만나는데?”

“대학 동창들. 우리 그날 별일 없지?”


결혼 후에는 친구를 만날 때도 제약이 생깁니다. 내 일정만 살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내와의 약속,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시간 등을 피해야 합니다. 약속한 건 아니더라도 같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때가 있다면 그 역시 고려하는 것이 좋겠지요.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어떤 날은 그리 단순하게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아내 입장에서 그것은 ‘나와의 약속’을 잊은 겁니다. 나의 말을 흘려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나요? 아닙니다. 우리 다 알고 있어요.


월요일 저녁, 아내에게 말합니다. “미션 임파서블 마지막 편 나왔다던데 토요일에 보러 갈까?” 아내가 답합니다. “오랜만에 영화? 좋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 금요일이 됩니다. 아내가 말해요. “나 내일 친구 좀 만나고 올게.” 이때 어떤 기분이 들지 충분히 짐작이 되시죠?


친구를 아예 안 만날 수는 없습니다. 전에 비해 만나는 횟수는 줄지언정 그 관계 역시 필요합니다. 그럴 땐 아내에게 미리 물어보고 확인하는 걸 권합니다. 혹시 내가 잊었던 스케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미뤄 두었던 어떤 일을 하기에 그날이 적기인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요. 그날 하기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물어보세요. 허락 받는 모습이 아내에게 믿음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친구와 아주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응 좋은 시간 보내고 와.” 긍정적인 한마디 말이 나의 마음을 얼마나 잔잔하게 만드는지 모르시지 않죠?


그렇다면 나의 친구는 아내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나야 늘 좋은 친구를 만납니다. 좋으니까 친구가 되었겠죠? 하지만 아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지는 모를 일입니다. 아내의 판단은 안 그래도 줄어든 만남 횟수 혹은 만남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나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1박 2일 여행을 떠나거나 술을 마시거나 PC방을 가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아내는 무언가를 끊거나 자제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만남 자체는 잘 이루어지지만 늘 하던 무언가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나의 오랜 친구인데, 우리는 만나면 늘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니요. 하지만 별 수 없습니다. 크든 작든 변화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경계하고 질투하고 걱정하는 건 친구 사이에도 있는 일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부부잖아요.


아내의 눈에는 그 친구가 너무 가벼워 보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때로는 너무 자주 만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이 오해일지라도 아내가 나의 친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번쯤 고민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내로부터 직접적인 압박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간섭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왕이면 그 상황은 피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롭습니다. 아내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요. 싫다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친구에 대한 아내와 나의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득을 시도해야겠지요.


조금 팍팍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반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가 친하게 지내거나 자주 만나는 누군가가 내 눈에 매우 부정적으로 보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사람을 판단하는 건 대단히 쉬운 반면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겉모습과 주변의 환경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의 말, 한 번의 행동, 하나의 사건이 그 사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판단합니다. 특히 부족한 부분을 꼬집기 좋아합니다. 그 행위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낮춤으로써 나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나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트집은 어디서든 잡을 수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잖아요.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 없지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싫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싫어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면 족하잖아요.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내가 싫어한다고 하는 그 단점, 나와는 상관없는 걸까요?


이유 없이 그냥 싫은 경우도 많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싫은 이유’라기엔 무언가 부족해서 말할 수 없는 것뿐이지요. 키가 작아서, 잘생기지 않아서, 가진 게 없어서일 수 있습니다. 나를 너무나 괴롭혔던 그 사람과 생김새가 비슷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스타일이 별로여서, 아니면 너무 잘나서일 수도 있습니다. 잘생기고 예뻐서, 경제적인 능력이 아주 좋아서, 사회적인 위치가 높아서 싫을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여전히 가끔씩 그러고 있고요. 뒤돌아 반성하고 이내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저는 그렇게 아내의 지인을 판단했습니다. 눈에 차지 않는 모두를 끊어 내라 할 수는 없었지만요. 놀라운 사실은, 나의 지인에게만은 관대했다는 겁니다. 아내가 나의 지인에 대해 언급하면 불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저 깊은 곳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걔에 대해 뭘 안다고 판단하지?’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부끄럽습니다.


사람의, 나의 그런 마음을 토대로 아내의 지인에 대해 마음을 열어 보세요. 정말 양보할 수 없는 기준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포용하는 겁니다. 아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 주세요.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친구가 채워 주기도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내 지인에 대한 오해도 풀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야 해요. 설득하려는 시도 또한 상대를 향한 배려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내의 실눈이 조금은 커질 거예요.


나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것 또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믿는다면 내가 누구를 만나도 걱정하지 않을 거예요. 몇 가지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만나는 횟수, 만나는 시간, 만나서 하는 일을 조금 달리 하는 겁니다.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그럴 때는 과감히 아내의 손을 들어주세요. 그렇게 할 거라면, 가능한 궁시렁거리지 말고 깔끔하게요. 토달지 않아도 나의 속마음 정도는 아내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형식적인 행동을 왜 해야 하냐고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편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껴요. 억지로 하는 게 뻔히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살다 보면 그런 기술 아닌 기술도 필요하다는 걸 느낄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저 역시 아내에게 바라게 되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더라고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이 기로에 서게 될 거예요. 결국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은 곧 변화를 의미합니다. 인생의 큰 변화 앞에서 모든 것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큰 욕심인지도 모릅니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나와 친구가 아닌 나와 아내의 문제입니다.

이전 09화효자 vs 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