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내려놓기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결정에 두 사람의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당을 고를 때, 여행지를 고민할 때, 심지어 나의 옷을 살 때도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나의 옷인데도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 ‘나의’ 옷이라고 했습니다.
신혼일 때는 서로 양보하느라 바쁠 겁니다. 사실 양보랄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수긍하는 거지요.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실제로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신혼이란 좀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누리세요. 가장 순수하게 그리할 수 있는 때인지도 모릅니다.
역시나 시간이 문제입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아내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이 아내의 뜻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머리가 마음에 드는데 아내는 완전 별로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네. ‘나의’ 머리 스타일을 말하는 겁니다.) 때로는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다툴 수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그건 아니지” 하는 건 내 입장에서도 전혀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은 언젠가 다가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종종 줄을 세웁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번호를 매기는 겁니다.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덜 좋은지,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순서를 정하는 겁니다. 때로는 줄 세우기를 넘어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행동이든 상황이든 상관없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결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없어도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결혼생활 중에 정말로 순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순서가 대표적입니다. (꼭 부모님이 아니어도 명절마다 있는 가족모임이 있다면 그것도 같습니다.) 동시에 두 곳을 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형제들이 모두 일찍 모인다고 해서 빨리 가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면 이것만큼 난감한 게 또 없습니다. 묘한 긴장감 속에 순서를 정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좋지 않을 거예요. 예민해질 거예요. 배우자의 모든 행동들이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상대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예요. 이런 문제로 싸우는 부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참 별 것 아닌 일로도 싸우는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싸움의 이유란 보통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익숙함이 그것의 중요성을 희석시켰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마음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나의 것을 우선하고 싶은 게,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챙겨 주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한편으로는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마음 다 같습니다. 어떤 때는 욕심이 더 생기고 참을성이 조금 줄어드는 것뿐이지요. 명절 때 나의 바람을 우선하려는 것은, 확장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내 마음 속에 평등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딸 같은 며느리’나 ‘아들 같은 사위’가 실제로는 몇 안 되는 것처럼요.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허다하게 펼쳐집니다. 그동안 많이 양보한 것 같아서입니다. 이것만큼은 나를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의 마음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에는 함께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원래부터’ 그랬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남들처럼’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가 정한 기본을 갖춘다면 나머지는 자유롭게 놓아 주어도 됩니다. 아내가 먼저든 내가 먼저든 상관없습니다. 누가 한 입 더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혹시 자존심 상하나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건 자존심 세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저도 이제야 알았거든요.
명절에 부모님댁 방문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양가에서 정한 날짜가 엇갈리면 각각 날짜에 맞춰 가면 됩니다. 번갈아 가며 방문 순서를 정할 수도 있지요.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합의가 되면 그만입니다. 단, 경쟁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규칙을 정해도 예외의 경우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가 생겼는데도 규칙을 들이밀 때는 나 역시 각오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촘촘한 규칙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는 약간의 틈이 필요합니다.
맛있는 게 보이면 이렇게 말해 보세요.
“이거 사서 장모님 드려야겠다.”
명절 때는,
“여보, 이번 명절에 가족들 언제 모인대?”
이렇게요.
일단 그 한마디에 진심을 담으세요.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여건이 맞지 않아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이미 나의 의지를 표현한 거잖아요. 아내가 일일이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에는 차곡차곡 쌓이기 마련입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믿으세요. 아내가 나의 모든 제안에 따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겁니다.
태도는 감정을 건드리고 감정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내가 존중하면 나 역시 존중받게 되지요. 그 시작을 내가 하는 겁니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말할 거예요.
“여보, 우리 어머니 아버지 뵈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