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불편해

시금치, 시동생, 시누이, 시집살이, 시월드…

by 한수

관습 혹은 문화는 참 대단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거든요. 그것은 우리의 수많은 선배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놓은 규칙이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행위가 비판받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보통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누군가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잦아서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행위는 금지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약속은 몇십 혹은 몇백 년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사업은 아무나 해? 거기나 열심히 다녀”, “윗 사람한테 말대꾸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 한 번쯤 들어 보지 않았나요?


비단 ‘하면 안 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는 꼭 낳아야 해”, “아이는 엄하게 키워야 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참 많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거쳐 전수된 그것들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들어 왔으니까요. 이제 이유는 필요없습니다. ‘그냥’ 그런 거예요. ‘원래’ 그런 거죠.


“원래 그렇다”는 말은 참 무서운 말입니다.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거든요. 반박하지 말라는 속내를 일부러 내비치는 걸 수도 있고요. ‘원래 그렇다’는 걸 달리 생각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결국 나도 그 익숙한 말 뒤에 숨고 맙니다.


그 위상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공고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원래 그랬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유용한 시스템입니다. 미리 경험한 사람들의 답이잖아요. 사실상 시행착오를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이지요.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물론 어떠한 선택이 좋을지 또 옳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과정도 결과도 예측하는 게 어렵거든요. 잘될지 안 될지,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일단 해봐야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직접 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럴 만한 힘도 시간도 부족하지요. 자, 때가 왔습니다. 세상의 선배들이 전해 준 지혜가 힘을 발휘할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 사회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것이 적어도 최악을 피할 확률은 높여 줄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것은 나에게 확신을 줄 겁니다. 이제는 나의 손으로 잘 다듬은 그 지식 혹은 의견을 누군가에게 전합니다. 오랜 시간 겹겹이 쌓여 더욱 단단해진 그것은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식과 기술 또한 그러한 연속성을 통해 더욱 발전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비판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해 보지도 않고 결과를 속단할 수도 있고요. 고민의 시간을 가져 보지도 않고 옳다 그르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명품, 구멍가게, 부, 가난, 여행, 정치, 토론, 집회, 비판, 만화, 게임, 결혼, 이혼, 왼손잡이…. 이 단어들을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좋은 느낌인가요, 안 좋은 느낌인가요? 옳은가요, 그른가요? 나의 경험에 의한 건가요? 그것이 타당한가요?



결혼식을 준비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업무상 다른 지역에 출장을 간 날이었습니다. 점심 무렵 잠시 여유가 생겨 가족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일정을 포함한 결혼식 관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의견을 교환한 후 예비신부였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가족들은 토요일 예식이 좋다고 하네요.” 이에 대꾸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마음이 상한 것처럼 들렸어요. 기분 좋은 상태로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화할 시간도 안 되었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도 아니었기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아내를 만나러 갔습니다. 어떻게든 풀어야 했으니까요.


아내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저 의견인 것을 알면서도 압박을 느꼈다고요. 그렇게 반응했음을 저에게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담을 갖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 아무런 의도가 없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더 조심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뒤가 영 개운치 못했습니다. 마무리가 된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꼈나 봅니다.


결혼 후에도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었습니다. 가족들의 의도 없는 말과 행동에 크게 반응하더라고요. 통제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저였기에 애초에 그런 부분은 더욱 조심하는 가족들입니다. 결혼 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고요. 그런데도 아내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의미를 두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과 형제들이 이유 없이 미움 받는 것 같아 한번 더 속이 상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시집에 대한 이미지가 왜 그렇게 부정적이 되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겪어 보기 전부터 만들어지는 그 이미지는 누가 심어 놓은 걸까요?



시집은 자유가 없습니다. 인정이 메마른 곳이지요. 가만히 앉아 쉬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곳입니다. 나의 의견은 없고 오로지 복종해야 합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할 말 없는 척해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그 악랄한 곳의 정점에 있습니다. 뭐든 어렵고 힘든 일은 며느리 몫입니다. 결혼한 시누이는 자기도 며느리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만 두지요. 시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결혼 후에 아침을 굶는다며 혀를 찹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딸 같은 며느리’라 말하고 다닙니다. 시집에는 내가 없습니다. 적어도, 나다웁게 행동할 수 없는 곳입니다.


너무 많이 갔나요? 저 역시 이렇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시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집’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혹은 중립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나요? 한국의 많은 여자들에게 시집은 이렇게 나쁘거나 불편한 곳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지요. 고부간의 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시집과 관련된 자극적인 이야기를 자주 해 줍니다. 유독 그런 부분만 기억에 남는 걸까요?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미담보다는 험담이 훨씬 재미있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좋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봅니다. 어머니와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를 떠올려 봐요. 그것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도 기억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집’에 대한 이미지는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아내에게 말하려 했습니다.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곧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어요. 시간이 지나 우려했던 예상이 빗나가면, 그때는 알아주겠지 하고요. 한편으로는 아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접 경험도 강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주변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때론 판타지보다 다큐에 가깝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경계심과 공포심을 전해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의 사고를 하는 경우가 잦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아내의 의심과 불편함은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껏 아내는 그 무엇보다 크고 강력한 선입견과 싸워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서로에게 악의도 의도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나름 괜찮은 관계를 맺고 있지요. 혹여 다시 그런 모습을 본다 해도 전보다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세요.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마음은 실재합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조차 마트가 전쟁터로 느껴지는 우리의 마음처럼 말이죠. 우리에게는 늘 공감과 대화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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