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함정

소중함을 ‘인식’해야 할 때

by 한수

좋은 사람과 만나면 행복한 감정 이상의 무언가를 얻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또 어떨까요.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입니다. 나를 편견 없이 긍정적으로 보아 주는 상대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복 받은 겁니다. 그 소중한 인연 꼭 이어가길 바랍니다.


제 옆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는 늘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거든요. 필요한 모든 일과 부모님 생신, 보험, 그 외 흘려들어도 될 법한 모든 일을 꿰뚫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하니 놓치는 게 일상이라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아집니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상대에게 필요한 건 내가 채워 주고 내가 부족한 건 상대가 힘써 주는 거죠. 같이 산다는 건, 함께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요.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설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늘 배우자의 손길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고생했어요.”


이런 말, 여러분은 자주 하시나요?


오래된 고철에는 녹이 슬고, 매일 같이 사람의 무게를 견딘 나무 의자는 닳고 닳아 모서리 부분이 둥글고 매끄러워져요. 멈추지 않는 것은 늘 어떤 일을 해냅니다. 하지만 때마다 티가 나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이 흘러 새롭게 변한(혹은 여전히 그대로인) 무언가를 보고 알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내가 잊었던 수많은 수간에도 너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구나.’


대부분은 일상이 됩니다. 어제도 오늘도 같았거든요. 내일도 같을 거라 기대되거든요. 반복되는 건, 적어도 무의식에서는 큰 의미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일상이라는 건 익숙한 무언가를 뜻하잖아요. 우리는 익숙해지면 무뎌지고, 무뎌진 감정은 나의 마음을 그것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고요? 우리가 지금(어쩌면 곧)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 사람과 나는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가능한 같이 식사하고 여행하고 쉬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결혼까지 왔습니다. 소중한 이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어서요. 제 말이 틀리지 않죠?


처음에는 심장이 마구 뛸 거예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잠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지도 모릅니다. 정말 멋진 일이라고,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려나요? 좋습니다. 마음껏 누리세요. 이런 말 조심스럽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거든요.


이제 곧 같이 있는 게 당연해질 겁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자는 게 신기하지 않을 거예요. 인간이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잖아요. 적응하는 게 당연합니다. 굳이 무언가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는 늘 그대로일 거기 때문이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일상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일처럼, 그냥 지내는 겁니다. 어제처럼, 또 오늘처럼요.


성인이 되어, 특히 결혼 후에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내와의 관계에 충실하고자 다짐하고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었거든요. 결혼 전 가족들에게 했던 수많은 말과 행동이 기억났습니다. 많이 후회됐어요. 내 기분만 생각해서 툭툭 던져 버린 말과 예의 없던 행동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임이 분명한데 말이죠.


‘익숙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옆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진 가족은 조심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더라고요. 좀 재수없고 버릇없이 군다고 끊어지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험한 말을 해대고도 며칠 지나면 눙치고 지낼 수 있었지요. 일일이 따져 가며 행동한 건 아니지만 내심 알고 있던 겁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최악의 상황은 쉽게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요. 당연히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겁을 먹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 같은 인격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가족들 역시 하고 싶거나 하기 싫은 것이 있을 텐데 그것을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나만큼 감정이 격했을 텐데도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끄집어내어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우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이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나를 보게 되었거든요.


이제는 아내를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시시각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소중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지금은 ‘생각 없음’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흐트러져도 아내는 늘 곁에 있으니까요. 그것이 기본이 되었으니까요.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 모든 걸 ‘잡은 물고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곧 잊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항상 곁에 있어서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그것들처럼요. 늘 곁에 있다는 안도감조차 희미해지고, 당연함을 넘어 잊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겁니다. 이제는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뒷전으로 밀립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인식하지 않는다고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압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지요. 하다 보니 그런 모양새가 된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꽤 심각합니다. 나를 소중히 생각해 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확인받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눈에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아내의 마음이에요. 알다시피 여러분과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요.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처음 만났던 그 설렘을 떠올리며 고마움과 애정을 말로, 행동으로 전해 보세요. 작은 칭찬, 짧은 감사의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나 역시 이 사람이 내 옆을 지켜주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될 거예요.


가끔은 익숙함을 내려놓고 소중한 내 사람을 바라보세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모든 날들이 더 빛날 수 있도록이요. 오늘, 작은 표현 하나로 서로의 하루가 조금 더 특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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