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효자가 되었다
아내로부터 “효자 됐다”는 말을 몇 번 들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다는데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볼 만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제 관심과 태도가 결혼 전후로 극명하게 갈리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명절을 제외하곤 부모님 댁에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가 봐야지.’ 생각 자체를 잘 안 했어요. 어떤 날은 바빠서, 어떤 날은 괜시리 불편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과 관련한 일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생신을 챙기러 가는 일도 드물었고, 농사일을 도우러 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그랬어요. 굳이 변명하자면, 그때는 제가 그러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해서 달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결혼 후에는 전보다 자주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명절 방문은 필수가 되었지요. 농사일이 바쁘실 때 시간이 맞으면 일손을 보태러 가기도 하고 생신도 꼬박꼬박 챙깁니다. 결혼 전에는 생각조차 안 했던 김장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요. 이유야 어떻든 그 양상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부모님께 더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참 별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과 관련된 스케줄이 엉키면 내심 불안해져요. 대소사에 그렇게나 관심이 갑니다. 얼마나 기억하고 세심하게 챙기느냐와는 별개로요. 내가 전에도 이랬나 싶습니다. 지금의 이 마음이 거짓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더 짙어지는 듯합니다.
그러한 변화가 저에게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에게서도 비슷한 기운을 느꼈어요. 과거를 본 적은 없을지라도 지금이 그때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기에 없던 효심이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요? 입대 후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처럼요. 어쩌면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부모님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새로운 상황은 부모를 향한 자식의 마음을 변화시키기도 하는가 봅니다.
…
사람은 끊임없이 비교하는 동물입니다. 저 역시 그랬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를 향해 속삭였습니다. “부모님께 지금보다 잘해 드리면 좋겠는데….” 물론 속으로요. 괄호 안에 ‘나의’가 빠졌네요. 모두 한 가족이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사실은 ‘내 가족’과 ‘네 가족’을 구분 짓고 있었던 듯합니다. 경쟁을 했던 거지요.
우스운 말이지만 그 마음 자체는 순수했습니다. 아내의 부모님보다 더 잘해 드리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내의 부모님께는 덜 하고자 하는 마음도 아니에요. 그저 나의 부모님께 잘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혼자서 신경전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그것으로 인한 다툼은 없었습니다. 마음 상함의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다 여겼을 테지요. “왜 당신 부모님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우리 부모님 집에 머무는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짧지?”라거나 “왜 그때보다 더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거야?”라고 하면 말하면서 창피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숨긴다고 숨겨 지는 게 아닙니다. 예민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의도한 것’처럼 보게 되거든요.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때론 원래 그랬던 것처럼 태연한 척했지만, ‘내가 부모님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마음 속으로 정당성을 어필해 보려 했지만, 사실 그런 마음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애틋해지고, 이렇게 이해와 배려가 넘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왜 갑자기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건지 파고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세요. 부모님께 관심을 두고 조금 더 잘하겠다는 마음이 결코 그릇된 것은 아니니까요. 더하여 나와 비슷한 심정이 되었을지도 모를 아내의 마음까지 헤아린다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겁니다.
여유가 된다면 한마디 건네 보세요.
“우리 이제 슬슬 철이 드는가 봐.”
덧붙이자면, 효자와 효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꼭 하나 기준이 있다면, 나의 마음가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