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구속

그 외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선택’이다

by 한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여행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히 혼자 다니는 여행을요. 친구 만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는데도 여행은 혼자 가게 되더라고요. 여럿이 다니면 혼자보다 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게 취미이자 특기거든요. 여행을 가서 숙소에 짐을 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주변 탐색이지요. 이왕 가는 여행인데 애초에 계획한 것만 하고 돌아온다면 무척 아쉬울 거예요. 반면 어떤 날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즐겼습니다. 꽤나 잘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딱히 좋아하지 않음에도 괜시리 그런 곳이 끌리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북적거리는 곳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선호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늘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꿈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보고 싶으면 보는 겁니다. 쉬고 싶으면 쉬고요. 그렇게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좋겠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비슷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 표현하지는 않겠지만요. 돈, 시간, 온갖 규칙, 의무,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싫어서가 아니에요. 원할 때 머물고 원하지 않을 때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시죠?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나 자유를 원하는데 결혼을 하겠다니요. 기어코 결혼을 하다니요. 결혼은 구속인데 말이죠. 알면서도 제 발로 들어갑니다. 그 사람의 감옥에 갇히고 싶어 해요. 혹시, 저만 그랬나요?


솔직해져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요. 함께라면 뭐든 좋으니까요.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든 상관없습니다. 단 한 번도 음식의 메뉴나 영화의 내용, 장소에 이끌려 데이트한 적 없잖아요. 관심사는 오직 그 사람뿐이니까요. 그래서 결혼합니다. 자유 따위가 나를 가로막을 수는 없죠.


“결혼은 할 테지만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야지.”

이렇게 다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거예요. ‘행복하게 해 줘야지.’ ’맞춰 가며 살아야지.’ ‘늘 이 사람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지.’ 상대방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미래를 꿈꿉니다. 적어도 그러한 마음은 가지고 있어야 시작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지요. 그토록 원했던 상황이 되고 보니 이제는 종종 혼자일 때 누렸던 자유가 그리워집니다.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자는 것도 어딘가에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했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신경쓸 사람도 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던 과거를 그리며 ‘그때가 좋았지.’ 후회합니다. 고개를 들어 오른쪽 허공을 향해 아련한 눈빛을 보낼 거예요. 그리고, 결혼을 앞둔 후배와 술 한잔 기울이다가 “결혼하면 좋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해 버리겠지요.


“야, 결혼하면 좋을 것 같지?”


이제 막 결혼을 결심한 그에게, 바쁘기도 하고 들뜨기도 해서 발이 땅에 닿지도 않을 그에게 충고를 가장한 경고를 날려줍니다. 대부분은 장난으로 시작한 말일 테지만, 그중에도 진심은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가 너무 억울한 나머지 ‘너희들도 나처럼 힘들어질 거야.’ 예언 혹은 바람을 띄워 보내는 거지요.


물론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결혼 전후는 너무나 다르니까요. 결과에 대한 원인은 둘째 치고, 직접 경험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진짜 필요한 말들은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존심인지 낯간지러움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아차! 문제가 또 있네요. 자신이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나와 다른데 말이죠.



결혼 후,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처럼 즉흥적으로 만나 술잔을 기울이거나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갈 수 있습니다. 가도 되고요. 하지만 그 양상이 결혼 전과 같다면, 상대는 어떤 고민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건 다른 누군가에게 사용했던 시간과 관심을 거둔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관계를 끊지는 않더라도 전보다 느슨해질 거예요. 어떤 날은 나 자신에게 썼던 시간도 그 사람에게 할애해야 할 거고요. 그러다 보면 친구와의 술 한 잔이 이렇게 어려웠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취미생활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할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물론 조절은 필요합니다. 정말로 구속하면 안 될 일이지요. 다만, ‘선택’은 포기를 동반한다는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잃는 것 없이 얻을 수는 없습니다. 결혼해 대해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무언가를 잃게 되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그것을 위해 움직인 겁니다.


스스로 옮긴 발걸음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나의 선택이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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