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우 복싱

픽?

by 한수

C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마음에 걸린다. C가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괜찮다니까!”


분명 괜찮다고 했지만 이건 정말 괜찮은 게 아닐 수 있다. 정말로 괜찮으면 “괜찮아.”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괜찮다니까.”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괜찮아, 괜찮은걸, 괜찮으니 너무 신경쓰지 마, 아무렇지 않아 등 표현할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필 괜찮다니까? 분명 뭔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그날 아침 못생겼다며 하하 웃은 게 기분 나빴을까? 양손 가득 있던 짐을 나눠 들었는데 내가 더 가벼운 걸 들어서? 아니, 그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잖아? 그거 가지고 삐진 거야? 아니, 아니겠지. 의견이 나뉘었을 때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였을까? 그런데 나도 의견이 있을 수 있잖아. 그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참. 그러고 보니 요즘은 전에 비해 저기압인 것 같던데, 설마 전부터 나에게 감정이 있었나? 그럼 나에게 이미 화가 나 있었던 거잖아! 내가 뭘 해도 기분이 나쁜 거였어. 진작 얘기를 하지 뭘 그렇게 쪼잔하게 구는 거야? 그거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나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내가 그런 놈을 여태 친구라고 두고 있었다니…. 맞아. ‘괜찮다니까’ 중에 ‘까’에 힘을 주었지. ‘귀찮으니까 저리로 꺼져!’와 다를 게 없는 거잖아. 하… 앞으로 내가 너랑 상종을 하나 봐라.


“까똑.”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 야 ]

야 같은 소리 하네.

[ 뭐 ]

[ 술 한잔 할까? ]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 됐다 ]

[ 뭐래 튀 나와라 ]

[ 됐다고 ]


동 동 도로로로 도로로 롱~

휴대폰이 울린다.

“아 왜.”

“나오라고.”

“....”

“왜 그러는데?”

“너 나한테 화났잖아.”

“엥?”

“….”

“뭐래.”

“너 내가 아까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니까' 하면서 성낸 거 기억 안 나냐? 큰일도 아닌데 그렇게 짜증내는 건 이미 감정이 있다는 거 아니야?”

“뭐래 이 미친놈이. 니가 괜찮냐고 수십 번은 물었잖아. 미안하다고는 수백 번 했던가? 미친놈처럼.”

“...내가?”

“나와 이 정신나간 미친놈아.”

뚝.


아직 화면이 꺼지지 않은 휴대폰을 바라본다. C, C, C…. C의 이름이 깜빡인다.

“에이 씨….”

널부러진 바지와 티를 주워 입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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