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결국 이곳으로 와 버렸네. 서 있을 자리조차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먹을 만한 곳이라곤 여기뿐이니까.
"햄버거 다섯 개 주세요."
영혼 없는 주문에도 직원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기차가 도착했는지 플랫폼이 부산스러워졌다. 또 이 복잡한 곳으로 들어오겠지.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문득 시선이 닿은 출입문에 동양인이 한 사람 보였다.
이 밤에? 캐리어를 세 개씩이나 끌고 온 걸 보니 영락없는 여행객이다. 문이라도 열어줄까 했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덩치도 작은데 짐은 어찌 그리 많은지. 공항에서 바로 온 걸까? 피곤에 절은 얼굴이 누가 봐도 막 도착한 사람이었다. 이 시간에 도착했으니 밥 먹을 데가 없을 테지. 나도 그래서 이곳에 나온 거니까.
오호, 키오스크에 도전하려나 보다. 머리를 싸매도 쉽지 않을 텐데. 나도 저건 영 별로였거든. 노력은 가상하지만 한참 걸릴 거야. 가서 도와줄까? 아니다. 지난번 일을 떠올리니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그냥 내버려 두자.
그런데 저 아저씨 좀 이상하네. 왜 자꾸 나를 힐끔힐끔 보는 거지? 잔득 움츠러들어가지고….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못 볼 걸 봤나? 아니면, 도와달라는 건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건가?
에휴, 어쩔 수 없다. 착한 내가 나서야지.
"저기, 혹시 도와드릴…."
아저씨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그러니까 필요한 게 있냐고요."
왜 뒤로 가는 걸까?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아저씨는 주문하는 걸 잊었는지 캐리어를 끌며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만 있었다. 내 표정이 너무 그랬나?
웃는 게 좋겠다 싶어 활짝 웃어 보인다.
"놀라지 마세요. 도와드리려는 거니까."
아저씨의 눈이 더 커졌다.
"야 뭐 해? 햄버거 안 나왔어?"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들어와 내 옆에 섰다. 아저씨는 불안한 듯 우리를 둘러보더니 양팔로 캐리어를 감싸 안았다.
"&%*#&$%#^$^*"
아저씨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야 한국 사람이잖아. 내가 넷플릭스에서 들어 봤거든. 한국말이야. 번역기 돌려 보자."
친구 하나가 휴대폰을 꺼내려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드르륵 덜컹 드르르륵.
아저씨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자기 몸통보다 큰 캐리어를 세 개나 끌고는 어느새 문밖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있었다. 빠르게 멀어지는 택시의 불빛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또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