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하마터면 소리지를 뻔했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온갖 ‘척’ 덕분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전자책 제작을 마무리하던 때였다.
안 된다고 할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어쩌면 재작업이 필요할 수 있으니 비용 이야기를 꺼낼까? 정도를 넘어서면 두 배가 된다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말도, 마음의 진정도.
내용 수정은 매우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책 전체를 ‘꼼꼼히’ 읽어 보겠다는 것이다. 책의 주인으로서 혹은 담당자로서 필요한 일일 수 있지만, 나로선 참 난감하다.
EPUB의 편집화면
EPUB 전자책을 제작할 때는 기본적으로 ‘태그’라는 걸 사용한다. 보통 모든 문단에는 <p> 태그가 붙는다. 그래야 한다. 그 모습은 아래와 같다.
이건 매우 간단한, 기본적인 형태이다. 추가로 여러 속성(색상, 크기, 간격 등)이 필요하다면 모양은 더 복잡해진다.
EPUB 전자책이 되기 위한 여러 장치라고 봐도 좋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띄워 놓은 것보다 복잡하다. 읽기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p>, <h1>, <h2>, <h3>, <div>, <span>, <table> 등 다양한 태그들이 클래스니 속성이니 하는 것들(이해할 필요는 없다.)과 섞여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찾기 기능을 사용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지만, 원고만 있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위 이미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Ctrl+C, Ctrl+V
나는 빠른 사람이 아니다. 나를 크게 믿지도 않는다. 원고 수정이 있다면 Ctrl+C, Ctrl+V를 반복한다. 바뀔 내용을 복사하여 붙여넣기하는 것이다. 직접 타이핑할 수 있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아니,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수를 줄이려면, 나에게는 이 방법이 최고다.
수정 전에도 확인 작업은 필요하다. 행여 표현이 비슷한 다른 위치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예민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다. 무려 ‘책’이지 않은가! 한 문장, 한 글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내용이 훼손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행여 앞선 몇몇 작업이 원고를 훼손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때, 나는 이전 작업을 모두 엎는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다시, 전체 교정
전체 교정본이 나왔다. 최종 교정이라고 하자. 수정한 부분이 많지 않다면 다행이다. 고쳐야 할 곳을 찾아 복사/붙여넣기하면 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정했다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일단 의뢰인은 어디를 어떻게 수정했는지 체크해서 혹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그 내용을 나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고민을 시작한다. 이것을 찾아 고치는 것이 나을 것인가, 최종본을 받아 다시 처음부터 작업하는 게 나을 것인가. 두 번째 안이 최선일 정도로 수정한 부분이 현저히 많다면 금액 책정도 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작업자의 입장에서 정당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최종 원고를 주세요
그래서 나는 늘 더 이상 수정할 게 없는 ‘최종 원고’를 요청한다. 물론 최종 원고라 해서 수정할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영세한 출판사나 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EPUB을 만들다가도 종종 발견한다. (EPUB을 제작하며 책을 정독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이해한다. 오래 전 교정을 위해 한 권의 책을 여덟 번 정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읽을 때마다 오류를 발견했다. 아홉 번, 열 번 읽었더라면 더 발견했을 거라는 게 확신에 가까운 나의 예상이다.
나에게 ‘최종 원고’는 더 이상 수정할 게 없는 ‘완벽한 원고’가 아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수정한 원고를 뜻한다. 그렇게 해 두어야 나중에 서로 난감한 일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교정!
책을 맡긴 후에는 교정보지 말라고 읽힐 수도 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상하면 봐야 한다. 때로는 책이 다 나온 후라도 필요하면 봐야 한다. 표지가 마음에 안 들거나 일부 문장이 미흡하게 느껴지는 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오탈자 등은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일관성 없는 표현이나 오탈자를 통해 책을 만들 때의 노고를 폄하할지도 모른다. 내용이 주는 깊이가 얕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작가일지 출판사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그렇다.
인쇄 기계를 멈추자
몇 해 동안 업무와 관련하여 인쇄 감리를 본 적이 있다. 인쇄를 시작하기 위해 작업자들은 거대한 옵셋 인쇄기에 인쇄판을 걸고 잉크를 채운다. 그 인쇄물에 맞춰 주문된 종이를 준비하고 인쇄를 시작한다. 몇 장 인쇄 후 잠시 멈추고 인쇄물을 확인한다. 색의 농도가 의도한 것과 같은지, 깨끗하게 인쇄되는지, 인쇄된 종이를 접었을 때 페이지가 순서대로 나오는지 등을 체크한다. 몇 번의 테스트 끝에 이상 없음을 확인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쇄에 들어가게 된다. (오래 전에는 그랬다.) 그때 알게 된 건, 하나의 인쇄물을 찍기 위한 사전 작업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드물지만 인쇄하는 중에 오탈자 혹은 그에 버금가는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식은땀이 절로 난다. 일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그 현장에서 “이거 잘못됐으니 인쇄 멈추고 취소해 주세요. 수정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별 수 없다. 해야 했다. 두 눈 질끈 감더라도. 다행히 내가 만났던 분들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다.
필요할 땐 언제든 “잠깐만!”을 외쳐야 한다. 이 작품의 최종 책임자로서 해야 할 일이다. 민망함이든 돈이든 뭐든 감수해야지 않겠는가.
…
EPUB 하나 만들면서 참 말 많다.
그래도 짧게 정리해 보겠다.
첫째, 최종 원고로 의뢰하자.
둘째, 아무래도 이상하면 외치자. “스탑!” (눈을 감아도 좋다.)
편집에 오류가 있어 본문 한 장을 통으로 갈아끼운 때가 있었다. 출판기념회 중인 식당 구석진 방에 틀어박혀 표지에 수정 스티커를 붙이던 때도 생각난다. 다행이다. 전자책은 파일 하나만 수정해도 되니 말이다. 그러니 나중에 발견한 한두 가지 오류에 너무 놀라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