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학생 시절은 조금 힘에 부쳤습니다. 상상도 못한 상황과 마주쳤거든요.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인 양 누비고 다녔던 초등학생 시절과 비교하자면 더할나위 없이 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날은 중학교 예비소집일이었습니다. 몇 안 되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운동장 스탠드에 서 있는데 다른 학교 학생이 지나가며 나에게 비키라는 겁니다. 한 칸 오르거나 내려가서 지나가면 될 일이라 피하지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자 그 녀석은 내게 매우 험한 말을 쏟아부었습니다. 험상궂은 표정과 함께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지나갔어요. 다행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지만, 등교가 시작된 날부터 얼마 동안은 불안을 안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자신의 숙제를 대신 하라고 강요하던 동급생에게 배를 걷어차인 적이 있었습니다. 골목길로 끌려가 돈을 빼앗긴 기억도 꽤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 밑으로 쑥 들어와 어깨동무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나직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특별히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배짱도 없고 체구 또한 왜소한 나는 그들의 눈에 참 쉬운 상대였나 봅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공구로 사용해야 하는 니퍼로 아이들의 손톱을 잘랐습니다. 언젠가는 그 니퍼로 배를 꼬집혀서 살짝 피가 맺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들이 없겠지만 지각한 아이들을 속옷만 남기고 교문 앞에서 벌씌우던 학교였습니다. 첫차로 등교해야만 했던 나는 겪어 보지 않은 일이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매우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그 일들에 관해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자주 보고 겪는 일들이라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판단을 못했나 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처럼 ‘어른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후회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떳떳하게 대처할 걸, 차라리 힘껏 싸워볼 걸, 학교의 부당함에 대해 어른들께 말씀드릴 걸 하고 말이죠. 물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며 생각으로 그치기는 했습니다. 지금처럼 인권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도 아니었고요. 그때라도 알렸어야 후배들이 그런 일을 조금이나마 덜 겪지 않았을까 다시금 후회되곤 합니다.
이따금 마주치는 청소년 친구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분명 어떤 힘겨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하지만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장난도 잘 안 받는데 속마음을 얘기하는 건 더 어렵겠지요. 나 어릴 적 감정과 비슷하겠지 추측합니다. 어차피 어른들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나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그대로 버텨내고 있는 친구들도 많을 테지요.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귀 기울인다고 내 속을 활짝 열어 보일 것도 아니지요. 뭐가 문제인지 말해 보라는 어른들의 태도가 닦달로 보여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어른들에게 얘기할 생각조차 안 하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른들은 이제라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입장에서는 정말 해결이 될지 믿음도 안 가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어색하겠지만요.
가끔은 어른들이 그 문제에 직접 개입하게 될 겁니다. 너무 심각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것이 싫을 수 있습니다. 해결을 바라는 건 맞지만 내 구역에 어른들이 들어오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거부감이 들 수 있어요. 당연합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사람의 마음이더라고요. 여러분이 한 발짝 물러나 직접 개입을 허용한다 한들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처를 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그 문제를 완전히 뿌리 뽑는 일은 우리 삶 전체를 두고 비교하더라도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만족할 만한 방법을 만들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도움이 되고 싶은 게 어른들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크든 작든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손톱만큼의 믿음이라도 좋습니다. 적어도 위급하다는 신호 정도는 주세요. 아니, 더 위험해지기 전에 알려 주세요. “우리 어릴 때는 더 심했다.”며 “그 정도는 누구나 견딜 수 있어.”라는 무책임한 말만 내뱉고 싶은 어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른들도 조심스럽습니다. 말했다시피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해결해 주는 것인지도 항상 고민입니다. 결국에는 여러분이 살아가야 하는 여러분의 삶이라서 그렇습니다. 그 삶 전체를 고려했을 때 돕겠다는 나의 손길이 득이 될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고 손을 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늘 고민입니다. 해결책이 무얼까 하고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길 바라는 그 마음만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 정답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곤 합니다. 정답이 있다면 그것만 보고 따라가면 되잖아요. 틀릴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의 바람과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그 대부분이 옳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