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진행자

어쩌다 보니 진행이 업이 되어있었다

by 서유

진행 잘하는 기획자


기획자란 단어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10년을 고민했지만 여전히 정의가 어렵다.

그냥 일이 정말 많아요... 정도?


진행은 즐겁다. 마이크 잡고 사람들 앞에 서서 주어진 시간 안에 뭔가를 해낸다는 건 늘 설렌다. 특히 내가 짠 '와꾸'를 풀어가는 시간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나는 잡스런 기획자다. '기획'이란게 붙을만한 건 다 재밌다.

문화예술씬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리고 공연의 문법을 베이스로 창작자로도 활동하다 보니, 그럼 공연 기획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지만, 딱히 공연기획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주로 공공프로젝트를 했고, 사람들을 모아서 이슈 토론을 하거나, 목표지향적 활동을 하거나, 모이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네트워킹을 기획하곤 한다. 내가 직접 운영했던 커뮤니티도 있었다.


눈치는 키울 수 있다


기획이든 진행이든 '센스'가 필요하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눈치 꽝에 머리에 꽃단 애였다.

연극을 하면서 '사람'이 되었다.


인간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말 한 마디의 상징과 의미를 통찰해내고, 갈등의 양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싫어하는 캐릭터가 내몫이 되면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배우고 공연제작을 위한 실무를 훈련하느라 자연스럽게 기획력이 늘었다. 발성도 좋아지고 시간 관리를 잘하고, 청중과의 밀당을 포함한 진행력도 좋아졌다.


애초에 어릴 때부터 항상 리더의 자리에 있었다. 반장, 동아리 회장, 학생회장, ...

누군가 나에게 어쩜 그렇게 진행을 편안하게 잘 하세요, 라고 물으면, 연극 한 10년 해보세요 라고 웃으며 농반진반 던진다.


진행도 잘하는 기획자가 되기까지


본격적인 프리랜서로 시작할 때는 독립기획자라 스스로 소개했다.

지금도 기획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맡아도 잘할 자신도 있지만, 어느샌가 진행을 많이 보기 시작했다. 와꾸 설계보다는 이미 기획된 자리를 잘 풀어주는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고갱님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물론 워낙에 기획자다 보니 고갱님들에게 질문이 많다. 모임의 취지와 의도가 뭔지 디테일하게 캐묻고, 참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데이터는 얼마나 있는지, 없다면 내가 사전 설문을 좀 만들어서 뿌려도 되는지, 자꾸 끼어들 틈을 찾는다. 진행비만 꽂히는 거면 진행만 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말도 듣지만, 좋은 진행- 내가 만족하는 진행을 위해서 나는 사전 셋팅이 촘촘하게 필요하다. 참여자들을 위한 최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중요한게 아니다. 나한테 주어진 태스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서유라는 진행자만의 특이점


내게는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심령술 아니구요, 독심술 아니구요.

레이더가 기민하게 훈련돼있어서, 표정 시선 몸짓 등 비언어적 제스처들에서 많은 정보를 읽는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 사람들의 성향이나 태도에 따라 네트워킹을 탄력적으로 잘 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그 무엇, 나는 이것을 주로 '역동'이라고 부른다. 역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역동을 설계하는 것.

공공극장이라는 이슈에 대해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스무명 가량의 고관여도 참여자들이 고양되려면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까, 머리털 빠지게 고민하며 그런 대화를 설계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10년 쯤 하다 보니 가끔 강연도 다니고 컨설팅도 하지만, 주제도 정해져 있고 시간 제약도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들이 늘 남았다.

브런치에 조금씩 썰을 풀어보고, 나의 노하우를 모아서 책으로도 내볼 예정이다.


사실 초파리 뒷다리(!) 같은 얘기가 아닐까 고민도 많지만,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내 얘기를 궁금해하고 귀 기울여주는 분이 있다면, 수다쟁이 서유는 신나게 이백번씩 떠들 수 있답니다.


갈 길은 멀고...


근본 없는 모양새다 보니, 아직도 공부할 게 많다.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이론서를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기획자들은 어떤지 관찰도 많이 한다.

한때는 대학원 진학도 잠시 고민해봤지만, 어디서 뭘 배울지도 막막해서 일단 접었다.


모르는 것, 못 하는 것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많이 해본 것, 잘하는 것들부터 하나씩 브런치를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궁금한 점이 있거나 제안이 있다면 언제든 dynamicmaker.seoyou@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