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한 서운함이 나조차 감당되지 않을 때
나는 아직까지도 사랑 - 연애에 있어서 본질적인 적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나의 가치를 아는 걸 떠나서, 두 사람이 만나 오랜 시간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질려하지 않으며 지켜나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나의 회의의 이유이다. 그리고 현재 난 7개월간 서로 마음을 키워 온 사람과 연애를 막 시작했다.
언제나 사랑을 받는 것에 급급했기에 내가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상대를 채 알지도 못한 채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연애라는 서로가 서로의 것이라는 약속으로 내 불안을 급하게 잠재웠었고, 상대 역시 나를 깊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관계는 성립이 되었었다. 나는 그래서 상대방들을 조금 더 깊게 알게 된 후엔 굉장히 억지로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그리려 애를 썼었다.
그래서 이번엔 서로를 오래 봐오고 싶었다. 공적인 관계란 명분이 도와준 것도 있지만 난 7개월 동안 감정과 호르몬에 휩쓸리지 않고, 최대한 중심을 잡으며 마음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내 바람과 판타지를 상대에게 투사하지 않고 정말 있는 그대로 상대를 찬찬히 살펴왔다. 전에는 가져본 적 없는 유대감, 친밀감, 믿음과 많은 대화가 쌓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표현하니까 익숙한 불안들이 치솟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원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받는다고 한다. 관계 안에서 받아온 내 상처들을 한번 똑바로 바라보려고 한다.
1.
첫 연애는 성인이 된 직후 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2년 정도 장거리 연애를 했었다. 상대방은 따듯하게 날 챙겨줬었고, 난 그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에게 짜증과 심술을 부렸었다. 흡사 내가 아빠와 가져보지 못했던 관계를 - 투정 부려도 너그러이 모두 받아주는 그런 관계를 못 가진 한을 - 이 사람에게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됐던 “감정소용돌이”가 있는데, 상대의 아주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가 갑자기 나한테 미친듯한 짜증?을 불러일으켜서 상대를 막 할퀴고 아프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로 인해 이 사람이 아파했으면 하는, 말 그대로 “유해”한 마음이 정말 겉잡지 못할 정도로 나를 덮어 씌었다. 소용돌이처럼 휩쓸려버리는. 짜증 내고 싶고, 울고 싶고, 화내고 싶으면서, 동시에 자기 혐오감이 강하게 밀려오는, 뭔지 모르겠는 괴로운 무언가.
상대방의 사랑이 내가 바라는 만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아주 사소한 서운함에 이 소용돌이는 시작되었다.
이런 감정을 아예 숨기거나, 폭발적으로 터뜨리거나, 혹은 "삐지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대부분 말 그대로 지랄을 했었다.
사실 이 “소용돌이”는 첫 연애에서 제일 빈번하게 나타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애에선 별로 안 나타났었다. 세미 ”바람”을 핀 두 번째 남자친구한테 한번 느꼈는데, 바로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세 번째 “연애”는 서로 거의 보지도 못했고, 아예 별로 상대에게 기대가 없었어서 그런지 한 번도 안 느꼈던 거 같다.
2.
최근에 현재의 상대에게 처음으로 이 감정을 느꼈다.
별건 아닌 무엇인가에 갑작스럽게 치솟은 (솔직히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이 소용돌이는 나를 당황시켰고 진심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공적인 관계인 사람과 공적인 상황 장소에서 치솟은 거라 정말 난처했고, 일단 상대에게서 떨어졌다.
보통 서로 함께 있을 수 있는 만큼 함께 하려고 하는데 난 괜히 상대를 혼자 두고 여기저기 다른 곳을 방황했다. 이 사람 옆에 있으면 내가 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버릴까 두려웠다. 예전에 내가 이 소용돌이에 잠식되었을 때 첫 애인과 엄마와 동생 넷이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엄마는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에 경멸이 가득 차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저렇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왜 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저렇게 볼까 하셨다고 추후에 전하셨다. 난 내 첫 애인을 정말 많이 사랑했단 걸 안다. 그럼에도 이 소용돌이 안에서 내 눈빛까지 차갑게 날이 선단걸 안다. 옆에 있으면 눈빛으로, 내 에너지로 상대가 내 혼란을 느끼게 될 걸 알아.
난 억지로 상대에게 웃어 보였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쫑알쫑알 떠들던걸 해야 할 말만 했다. 이게 내 최선이었다. 상대도 그걸 느꼈지만 그럼에도 내 머리칼을 넘겨주는 상대의 손짓은 계속됐고, 날 바라보는 상대의 눈은 너무나 따듯해서 난 더더욱 화가 치밀었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 내가 짜증을 낼 때 그걸 알아봐 주고 달래주면 그럴수록 난 더 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더 미쳐 날뛰었었다.
다행히 곧 점심시간이었어서 한두 시간 거리를 둔 후, 난 상대옆에서 이 감정을 풀어내는 글을 써 내려갔다. 오직 대상이 있어야만 나오는 감정들이라서 그런지 이 감정을 혼자서 내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각 잡고 앉아서 나 자신을 살폈다.
3.
난 분명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해야만 이 감정을 느낀다. 어느 정도 유대감과 믿음이 있는 관계에서만 느낀다. 생각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꽤 잘 유지하는 내가 냉정함을 잃는 유일한 상황은 나에게 어느 정도 확신을 주는 사랑 안에서, 그뿐이다. 이 짜증은 나 좀 봐달라는 어린 나의 생떼와 많이 닮았다. 흡사 마트에서 드러누워 장난감 사달라고 뒹굴거리면서 악쓰는 아이.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네가 나 때문에 아팠으면 좋겠어, 날 신경 쓰게 하고 싶어"는 아마도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대여섯 살에서 열 살쯤 - 그때의 나의 잔상인 거 같다.
서운함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잘못된 표현방식.
엄마의 폰에서 열 살 남짓한 내가 찍어놓은 영상들을 동생이 복구해서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음 좀.. 미친 거 같았다ㅋㅋ. 애교란 애교는 다 부리고 목소리와 행동은 지나치게 컸다. 동생을 가리며 엄마의 관심을 받으려고 애를 쓰던 그 모습이 난 갑자기 생각났다. 난 그 영상들을 보면서 웃기다, 귀엽다기보단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관종(?)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저렇게 애를 쓸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고,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너무너무 애처로웠다. 그때의 나를 아주 잘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말 안 통하는 새로운 나라에서, 친구 없는 학교에서, 너무 지쳐 내가 뭘 해도 웃지 않던 엄마와 가끔 보면 스트레스에 예민하던 아빠. 아직 어떤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인지가 안 되는 아이의 과장된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톤 높은 목소리가 불현듯 이 감정과 함께 생각이 났다.
이걸 깨달은 순간, 이성의 끈을 아주 간신히,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몰아붙이던 이 소용돌이가 단숨에 잠재워졌다. 그리고 눈물이 갑자기 왈칵 나왔다. 방금 내가 날 알아주니까 잠재워진 이 감정이 말해준다, 이건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전부터 상대방이 날 인정해 줘도 난 진정이 안 됐다. 날 무시하면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았었는데, 그건 진심으로 가라앉는 게 아니라 슬픔에 포기를 해버린 거였다. 익숙한 무시, 그리고 뭘 해도 난 사랑받지 못한다는 포기. 반대로 상대가 달래주고 사랑해 주면 해줄수록 나는 울분이 치밀고 내 짜증은 통제를 벗어났다. 과거의 설움을 상대에게 토해내는 감정적인 폭력.
이 감정은 절대 상대의 책임이 되선 안 된단 걸 너무 잘 안다.
3.
난 첫애인과 헤어진 후 몇 년을 후회했었다. 상대에게 내 상처들의 잔상을 그대로 쏟아부은 것에. 첫 애인 이후 처음으로 내가 이 감정을 느낄 정도로 나에게 안정감과 평온함을 주는 지금 상대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서 정말 뿌듯했다. 이 감정은 어린 나이기에, 내가 안정이 되고 사랑을 어느 정도 받는다고 느껴야지만 나오는 무엇인가인걸 알기에, 오랜만에 이 감정을 느낄 정도로 나에게 안정감을 준 상대에게 고마웠고 마음이 다 잡혔다.
내가 떼쓰고 짜증 부리면서 상대의 사랑과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아도 되도록 미리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줄 것을 나 자신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짜증 부리면서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안정되고 나서야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고, 상대방에게 내 입장을 전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너와 내 인식이 다를 거 기 때문에 너를 바꾸라고 하진 않겠다고. 하지만 내 인식은 이렇기 때문에 너의 행동에 꽤 강하게 안 좋은 감정이 들었다고. 그래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거였다고.
고맙게도 상대방은 먼저 알아서 내가 자신의 인식을 고려하여 이해하려는 만큼, 자신 역시 내 인식을 고려하며 행동하겠다고 얘기했다.
그게 다였다.
난 내가 자랑스러웠고,
상대는 날 조금 더 이해했고,
난 상대를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