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자기 사랑의 과정안에서 무한한 안정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
나를 먼저 두는 법,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존감 높이기.
이런 "자기 사랑"에 한하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가고 연습한 지 햇수로 겨우 4년째입니다. 하지만 아무 밑받침 없이 시작해서 그런지 4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깨달아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들은 꽤나 광범위한 목록을 이룹니다.
처음으로 날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 나아가며 느꼈던 벅차오름을 전 잊지 못해요. 언제라도 지평선 아래로 뚝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옥죄였던 마음이 조용하고 따듯하게 잠재워지는 평안. 내가 내 힘으로 이뤄낸 평화라는 것에서 느낀 말로 이루하지 못할 뿌듯함과 감동은 제게 저를 계속해서 알아갈 이유가 되어주었어요.
하지만 처음의 그 벅차오름은 점점 무뎌졌고 그 방법들이 더 이상 예전의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전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왜 안 통하지? 왜 아무리 명상을 하고 나를 토닥여도 더 이상 전의 안정감이 안 느껴지지?
말 그대로 패닉상태.
난 날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나 자신조차 내 노력에 부응해주지 않는 걸까. 안 그래도 잃어버릴까 봐, 다시 전으로 돌아가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에 최대한 디테일하게 적어놓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수첩을 아무리 뒤적여도 여전히 불안정한 제 마음은 새로운 공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랑을 하는 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거라고 합니다.
한 가지 필연적인 건 우린 계속해서 바뀌어간단 것입니다. 더 나아지거나 퇴행하거나, 이런 걸 다 떠나 그냥 언제나 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살아있는 한 우린 언제나 변한다는 것. 그럼 난 왜 과거의 나에게 효과 있던 방법이 지금의 나한테 무조건 맞아야 한단 생각을 했을까? 조금은 게으른 사랑방식 아닌가?
우린 나 자신을 계속해서 탐구해 나가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배워가고 업데이트해 나가야 해요.
처음 2020년 저는 무조건적인 자기 연민이 필요했고, 제 자신을 아기 다루듯 소중히 사랑해 주는 게 필요했습니다.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걸 연습해야 했기에 명상에서 그만큼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제일 좋아하는 나무를 찾아가 그를 벗 삼아 내가 나 자신에게 조차 인정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얘기하는 일상은 제가 저에게 주는 애정 어린 노력이었고, 뒤늦게라도 내가 얼마나 아파왔는지 속상해서 펑펑 울어주는 게 저에겐 사랑이었습니다.
처음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고립된 시간을 보내는 건 저를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두계절이 지나고, 어느 정도 뿌리가 내려지자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전 낙담했어요. 아직도 타인을 원하는 내 마음에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아직도 타인을 바래?
하지만 제 감정과 욕구는 자연스럽게 다음의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던 거였습니다.
다음 제 자기 사랑 미션?은 사랑받는 게 너무나 절실해서 남이 바라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피플플리징 (people pleasing) 버릇을 내려두고 진짜 나로 내 주위사람들을 대하는 거였어요. 위태로웠던 나만의 세상을 안전하게 구축해 나갔으니 이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사회 안에서 다시 한번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게 저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내 진실된 모습을 보여줬을 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믿어보는 용기를 기르는 것. 그리고 내가 자신의 입맛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보며, 나를 억지로 바꾸는 게 아닌 그 관계를 놓아도 괜찮단 걸 배우는 것.
그 후엔 아마 제가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내 공간을 내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물건들로 채워나가는 조금 더 물질적인 자기 사랑을 거쳐가기도 하고, 평생 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제가 러닝을 시작하며 새로운 사랑을 느끼기도 하며,
이렇게 지난 4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저를 사랑해 주는 방식은 여러 모습들을 거쳐왔습니다.
배운 걸 또 배우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지금 제 자기 사랑은 엄격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참을성과 끈기가 부족한 나를 위해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걸 연습하는 건 현재 저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침에 운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아무리 싫어도 가는 것. 순간적인 쾌락과 늘어짐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임감을 선택하는 것.
2주 전에 새벽 5시에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데 눈물이 났어요.
"나 겁나 오래 살 거야! 내 심혈관 건강!!" 이러면서 진짜 열심히 심장이 터질 듯이 계단을 올라가는데 마침 엔시티의 무한적아(..ㅋㅋ)가 나왔거든요, 근데 가사에서
"나를 도와줘 잘할 수 있게, 가끔 난 길을 잃곤 해
우린 결국 이어져있단 걸 너도 알잖아
사막을 넘어 찾아낸 큰 바다처럼
무한의 너란 존재"
란 굉장히 에스엠스러운 웅장한 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 울었어요ㅋㅋ
잠시 길을 잃어도, 잠시 버벅거려도 난 또다시 날 위해 노력해 왔단 것에 울컥했습니다.
처음에 느꼈던 감동들과 맞먹는 따듯한 벅차오름, 정말 오랜만에 느꼈어요.
힘들어죽겠는 와중에 두둠칫 한 노래에 눈물 나는 제 자신이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웃겼지만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볍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가고 탐구하고 나를 궁금해하는 걸 멈추지 않는 이상, 난 날 사랑하며 느끼는 그 충족감을, 그 마음의 풍만함과 따듯함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구나. 살아있어서 나 자신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단 것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우리가 될 수 있는 무한한 "나"들을 기대하는 마음을 마음속 한구석에 언제나 지니길, 이 마음을 망각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그리고 깨달은 건 타인과의 좋은 사랑 역시 이렇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단 건 그만큼 변해가는 상대의 모습을 언제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탐구하고 이해하고 그가 느끼는 사랑을 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바뀌어나간다.
그걸 캐치해 내는 게 재밌는 것이고 날 배워가는 게 정말 의미 있는 것.
자기 사랑은 끝이 없다.
아니, 사랑 자체가 끝이 없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