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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Aug 17. 2020

무책임한 혐오의 재생산자, 기안84

기안84를 감싸는 이들도 결국 같은, 혐오의 재생산자일뿐

 또, 또 기안84가 문제가 됐다. 이번에는 여혐 논란. 심지어 그 내용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능력이 없는 여자 캐릭터가 귀여움을 어필하면서, 그리고 성관계를 통해 직업을 얻어낸다는 식의 내용. 물론 이걸 비유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비유도 너무 단순하고 1차원적이라 KTX 타고 가면서 봐도 그런 의도로 그렸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논란이 됐고, 과거의 여성 혐오 논란에는 침묵했던 기안84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터무니없었다.


현실감각 없이 현실을 '풍자'하려 했을 때

만들어지는 무책임한 혐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다."


 그의 사과문 중 일부를 가져왔다. 자, '풍자'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자.(출처:표준 국립국어원)

 다시 말해, 실제로 있는 현상을 비판할 때 '풍자'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데 요새, 대체, 누가, 귀여움으로 승부해서 일자리를 구하는가(...) 오히려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면접 기회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인 것을.(https://www.nocutnews.co.kr/news/4968677) 현실을 잘 모르면 이런 내용을 담지 말든가. 자료조사 없이 편견 하나만으로 무책임하게 만화를 그려놓고 '풍자'라는 그럴듯한 말을 붙이면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진 '멋진' 만화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는 여성 혐오의 재생산자일뿐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데도

그는 돌을 세 번째 던졌다


 지금까지 기안84와 관련된 논란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외국인 노동자 비하,.... 그럴 때마다 나오는, 기안84를 감싸는 말은 창작의 자유와 그가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거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는 무한정 주어지는 자유가 아니다. 누군가를 상처 주고 비난하는 내용이 창작의 자유라는 말 안에 허용되기 시작하다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담긴 작품들이 나온다는 사실 쯤이야 모두가 예상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그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대중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MBC '나 혼자 산다'의 영향이 큰데,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다소 어리숙하고 실수도 저지르지만 악의는 없는 착한 친구'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그가 여성 혐오를 하든, 장애인 혐오를 하든,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하든, '몰라서 그랬다'는 식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가 어리숙한 편이든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편이든 그런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악의의 유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결과다. 속담을 가져오자면, 그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는 게 팩트다. 그가 어떤 집단을 혐오하는 내용이 담긴 걸 만화에 담았고, 그로 인해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이 (아주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는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그는 TV에도 나오고 있는 '공인'에 가까운 인물 아닌가. 

 게다가 기안84의 경우에는 무심코 던진 돌이 3번째다.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반복되면 그건 잘못이다. 심지어 논란이 세 번이나 발생했는데도 고치지 않는 건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실수를 반복해도 된다는 생각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그에게 있다는 걸 말이다.


기안84의 모습도 절망적이지만

기안84를 감싸는 이들의 모습이 더 절망적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토록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기안84를 끝까지 감싸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산다'와 같은 관찰 예능의 경우에는 출연자와 시청자 간의 내적 친밀도가 쌓이게 된다. 그 덕분에, 기안84의 잘못을 둘러싸고 '저 정도 실수는 할 수 있지'나 급기야 '맞는 말 한 거 아냐?'라는 식의 의견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기안84가 저지른 잘못을 가볍게 치부해주거나, 기안84가 만들어낸 허구의 현실을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다. 결국 기안84도 기안84를 감싸는 이들도 혐오의 재생산자가 되고 있다.

 단언컨대 최악이다. 기안84의 잘못도, 기안84를 감싸기 위해 만들어내는 면죄부도. 이렇게 문제적인 인물이 왜 계속 끊임없이 소비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나 혼자 산다'도 그의 하차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또 이렇게 기안84의 논란이 그리고 기안84를 감싸는 이들의 잘못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까 봐 너무나 두렵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할 때다. 좀 더 그럴듯한 사과문을 내놓든가.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하든가. 끊임없이 혐오를 생산하고 있는 만화 연재를 접든가. '진심'이 담겨있는 그의 입장과 행동이 보고 싶다. 그리고 기안84의 변화에 맞춰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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