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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n 28. 2020

완벽하지 않은 ‘언니들’을
응원하는 이유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 개그우먼> 후기

 며칠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다. 개그우먼 박나래가 본인의 인스타에 명품 로고가 박힌 똥 모양 소품을 머리 위에 올린 본인 사진을 올린 후 ‘된장녀’라고 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된장녀라는 표현 자체가 여성들에 대한 혐오적 시각을 담고 있어, 박나래에게 많은 이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사실 박나래가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개그를 추구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는 다른 ‘언니들’(송은이, 이영자, 김숙 등으로 대표되는 개그우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여성혐오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 여러 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특히 여성들은) 언니들을 응원한다. 그들의 단점을 ‘흐린 눈’으로 무시하고 그들의 장점을 보려고 애쓴다. 여성들은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다큐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 개그우먼>’이다.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 개그우먼>에 참여한 6명의 개그우먼. (출처: 다큐인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외부의 바람에 끊임없이 나부끼던,

개그우먼의 삶


 ‘다큐인사이트 : 개그우먼’은 개그우먼의 역사를 짚은 다큐멘터리다. 1980년대부터 사회적 분위기와 방송계의 흐름에 따라 개그우먼의 역할과 입지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초창기, 남성들의 개그에 여성들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개그우먼이 투입되는 수준이었다. 또한,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사회적 가치들이 그대로 개그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열녀, 순종적인 여성 등) 이후 ‘쓰리랑 부부’ 코너에서 악처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변화가 오는 듯했으나, 남성 개그맨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흐름은 꾸준히 유지됐다.

 이런 흐름을 변화시킨 건 김숙이나 박나래로 대표되는, 기존에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이미지를 벗어난 개그우먼들이었다. 이전까지 숨겨야만 했던 ‘드세 보이는’ 외양을 살려 ‘따귀 소녀’라는 캐릭터를 만들거나 과장된 화장과 의상을 입는 코너 ‘패션 7080’에서 활약했고, 새로운 콘셉트에 사람들은 웃음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자연스레 ‘비호감’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김숙과 박나래 외에도 그들만의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개그우먼들에게 비호감이라는 타이틀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검색창에 개그우먼 비호감이라고 치면 우수수 나오는 인터뷰 기사가 그 증거다.

 개그우먼들의 활약을 통해 비호감이 호감으로 서서히 바뀌어 갈 때쯤 토크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진행의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기용되며(특히 송은이)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침의 시기가 찾아왔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오면서 ‘망가지지 않는다’라는 고정관념 속에 있던 여성들의 입지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예능의 흐름이 관찰 예능으로 옮겨갔지만, 개그우먼의 상황은 여전했다. 엄마, 딸, 아내로서의 모습을 가진 개그우먼들만 몇몇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고 김숙의 말대로 자식도, 남편도, 시아버지도 없는 개그우먼들은 방송에서 일자리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개그우먼의 삶, 여성의 삶


 우리가 때로는 완벽하지 않은 개그우먼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아 버텨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면서,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은 2019년 기준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가 제일 낮았고, 성별 임금 격차도 제일 심각했다.(각각 100점 만점에 20점, 31.7%).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등 개인의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는 수치에서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에 우세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즉, 실력이 남성들과 비등하거나 우세해도 성별 때문에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그우먼들이 개그 코너를 구성하거나 프로그램을 이끌어감에 있어서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역할만을 맡거나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었던 과거와 상당히 흡사하다.


스스로 기초를 세우고 중심을 잡는,

여성들의 '롤모델'이 된 개그우먼


 게다가 이제 개그우먼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이들은 더는 바깥세상이 흔들어 놓는다고 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기초를 세우고 중심을 잡고 있다. 성공한 개그우먼이 사람들에게(특히 여성들에게) ‘본받을만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의 시작은 송은이와 김숙이 제작한 팟캐스트 프로그램 ‘비밀보장’이다. 하루 전에 캐스팅이 무산되자 고민하던 김숙에게 송은이가 팟캐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한 ‘비밀보장‘은 콘텐츠랩 비보로 발전해 여성 개그우먼들에게 ‘판’을 깔아주고 있다. 셀럽 파이브나 둘째이모 김다비가 대표적이다.

둘째이모 김다비 앨범 사진. (출처 : 비보 공식 홈페이지)

 개그우먼들은 남초 계그계, 지금까지의 예능적 흐름 등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워진 여성들에게 한계란 없다는 걸 목격하는 중이다. 김숙이 말한 대로, 개그우먼들은 시대를 ‘만난’ 게 아니라 시대를 ‘바꿨다’. 

 

 그러나 개그우먼들이 시대를 바꾸는 것에 응답해준 시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가능했다. 소위 말해 ‘나대는’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물론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호감을 느끼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과거였다면 <다큐인사이트-개그우먼>과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개그우먼의 삶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송은이가 ‘이제는 우리가 걸어왔던 일에 대해서 회상하고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뇌와 고통을 받아들일 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해졌다.


'흐린 눈'도 한계가 있다,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도 잘못이라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흐린 눈’으로만 보다 보면 결국 개그우먼을 향한 차별의 뿌리가 되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방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성숙해진 토양 아래 만들어질 개그우먼들의 성장과 활약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뽐내지 못하는 많은 개그우먼이 있다. 웃음을 주는 현장에서 이들이 스스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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