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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n 08. 2021

그 누구도 청년을 대표할 수 없다

하나로 퉁치지 마라, 모두 배경도 경험도 생각도 다르니까

이 브런치에서정치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행복하고 싶었으니까.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도 불편하고 예민하게 바라보느라 마냥 행복한 글을 쓰진 못한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그럴 때가 있다. 이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지이 그런 때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데도, 혹은 누군가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이 글을 써야 내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이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았다.


4.7 재보궐선거 이후, 한 정치인이 '청년의 대표'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기성세대 정치인들과는 다른 직설적 화법이나 행동을 드러내기도 하고,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인 '공정'과 '능력주의'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청년세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일반적' 관점(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당했다거나, 5.18 민주화운동을 긍정한다거나)을 보여주면서 극우보수와의 명확한 차별점을 나타냈다. 이런 모습들을 본 기성세대들과, 그리고 기성세대들이 이끄는 언론과, 그리고 그 자신은  '청년의 대표', 'MZ세대의 대표'처럼 바라보고 또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가능한 걸까? 그리고 옳은 걸까?


청년을 대표하는 것이 가능한가?


필자는 MZ세대에 속해있는 청년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정치인과 연결되는 지점이 딱 하나뿐이다. 역사적 관점. 필자는 그의 직설적 화법도, 행동을 바라보며 '굳이 저렇게 해야 하나?'라고 여기는 '유교걸'이다.

그가 말하는 공정에도, 능력주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새 운동화를, 누군가는 헤어진 운동화를, 누군가는 킥보드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선을 갖게 하면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차별과 불평등이 평범해진 지 오래다. "공정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조정이 필요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할당제다.

그와 제일 다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얘기는 뒤에서 자세히 할 것이다. 한 줄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며, 성차별 구조를 외면하고 때로는 재생산하려 한다.

나의 사례를 든 이유는, 같은 MZ세대라고 해도 위의 정치인과 관점이 아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보여주기 위해서다. MZ세대 혹은 청년들이 가진 생각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의 영역에 같은 청년 세대가 놓일 수도 있다. 나와 그 정치인처럼. 따라서, '청년들'의 생각은 '청년'의 생각으로 단순히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화가 날 수밖에. 나는 위 정치인과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계속 같은 MZ세대라고 하나로 묶이지 않는가.(!@#%^#&%$*^%$!%))


세대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계급, 성별 등의 문제에 눈 가리게 만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세대로 묶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세대보다는 계급이 중요하다. 꽤나 멀어져 버린 과거, 한국에서 청년들이 상/하위 몇 %를 제외하고는 비슷비슷한 가정형편 아래서 자랐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는 와장창 깨졌다.

각자 신발의 질만 좀 달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까 말했듯이 누군가는 킥보드를, 누군가는 자전거를, 누군가는 자동차를(!) 타고 출발선에 서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쥐어주고 태워준 이동수단이다. 이런 경우에 출발선에 같이 서있는 사람들을 '나이' 하나로만 같이 묶을 수 있을까?

뭐, 묶으려면 묶을 순 있다(독자 : 네?) 하지만 이렇게 묶는 건 치명적인 단점을 낳는다. 세대의 특성에 갇혀 계급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못 보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시가 성적 장학금이다. 2019년 성적 장학금 폐지에 대한 논란이 대학가에서 있었다. '능력주의'만 놓고 보자면, 성적 장학금이 필요 기반 장학금보다 타당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학생 A와 B를 한 번 떠올려보자.


학생 A : 월 200만 원으로 가족 4명이 생활해야 한다. 용돈은 꿈도 꿀 수 없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생활비를 위해 평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생 B : 돈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가정환경이다. 용돈도 풍족하게 받는다.


이 두 학생 중 물리적으로 공부에 시간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학생은 누구인가? 당연히 학생 B다. 학생 B는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 좋은 성적을 받고 성적 장학금을 받는다.


지금의 '공정' 프레임과 '능력주의'에 따르면 성적 장학금이 맞다. MZ세대의 목소리에 "상당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정치권에서 공정과 능력주의에 따라간다면 성적 장학금과 "필요 기반 장학금" 사이에서 성적 장학금을 채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 학생 A를 위해서.


우리 사회에는 커다란 불평등 구조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성별이다. 그런데 세대, 나이만 바라보면 이런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이야기는 기득권과 주류 담론에 의해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불평등을, 차별을 뼈저리게 겪고 있다. 우선 사회, 문화적인 지점을 생각해보자. K-장녀라는 말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장녀라는 이유로 가족에게서 직, 간접적으로 요구받는 역할이자 스스로 체화한 가족 내 역할을 의미한다. 이는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사회가 정말로 성차별이 사라졌다면 왜 K-장녀는 존재하는가?

취업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0대에서 여자 취업률이 남자 취업률을 앞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취업 연령 자체가 늦어진 것 + 여성들의, 회사의 조건이 좋지 않아도 빨리 취업하고 싶어 하는 성향(30이 넘어가면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속설 아닌 속설이 있다.)과 남성들의, 조금 늦게 취업해도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자 하는 성향이 합쳐졌다는 분석이 있다. 이 또한 성차별 구조에서 기인한다.

또한 여성들은 20대에 취업을 해봤자 30대에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혼과 출산, 육아 때문에. 그런데 왜, 결혼은 남자도 하고 아이는 요새 남편들도 같이 키우는 세상이라는데 여성들만 경력단절을 걱정하고 실제로 경력단절을 겪게 되는가?


'보편적 청년'이  정치인은

모든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


지금까지 청년세대, MZ세대를 하나로 묶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하지만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특징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대론은 언제나 있어왔던 이유다.

아마도 이런 배경에서 한 정치인이 청년세대를 대표하게 된 것일 테다. 가 '포괄적인' 특징을 가진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생각보다 이 정치인이 대다수의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가정환경 아래서 자란 인물이다. 그의 가정 형편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가정 형편 = 특권의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양한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살아온 인생의 범위 내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이들의 삶도 접해볼 수 있다. 완전한 공감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접해보고 이해까지만 해도 좋은 정책을 고안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거까지 가지 못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여성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다. 그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의원이 30세 이하 여성의 강간 피해가 남성의 약 175배인 상황을 제시하자 “성폭행이라는 범죄의 특성상 남녀 차이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다. 나는 아직도 그가 이런 말을 하고도 멀쩡히 당대표 후보로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일단 성폭행이라는 범죄에 무슨 특성이 있는가? 힘의 문제?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피해를 입는 게 당연하단 말인가?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를 개선할 제도나 정책, 법을 만들 의지는 있을까? 자주 잊는 것 같은데(...) 아주 단순히 계산해도 청년의 반이 여성이다. 그는 청년의 반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노동의 문제에도 크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특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 말이다. 산재로 돌아가신 김용균 씨, 이선호 씨 모두 청년이었지만 그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된 네이버 갑질에 대해서도.

그는 청년들 중에서도 일부를 선택해 대변하고 있다. 반페미니즘+공정성/능력주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엘리트들로. 안 그래도 위험한 청년세대 담론이 갈수록 그로 인해 더욱 위험해지는 이유다.


청년들 각각의 배경과 경험과 생각이,

MZ세대를 향한 고정관념에 납작하게 눌려서는 안 된다.


MZ세대(1981년생부터 2010년생까지)가 약 1700만 명정도 된다고 한다. 그럼 약 1700만 개의 생각이 있는 셈이다. 이걸 다 하나하나 대변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1700만 개의 생각을 마치 하나인 것처럼 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특히 엘리트의 입장에서 말이다.


청년들 중에서는,

반페미니즘이 지배적인 담론처럼 여겨져도 페미니즘이 옳다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인 청년들도 있지만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인 청년들도 있다.

대기업 안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로 고통받는 청년들 있다.


이들의 배경과 경험과 생각이, "MZ세대는 솔직해"라든가 "MZ세대는 공정한 걸 중요시해"라든가 "MZ세대는 페미니즘을 싫어해"와 같은 문장에 납작하게 눌려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갈등을 희생을 멈추기 위해, MZ세대를 쉽게 쉽게 하나로 묶어 처리해버리는 걸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세대 안에서도 각기 다른 계층과 성별 등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선택' 정치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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