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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n 04. 2021

'안일함'에 대하여, - 라비의 작사 논란

그는 왜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는가?/왜 유난이라는 의견이 나오는가?

필자는 연예인은 이미지 장사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일반인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연예인이 스스로 드러내는 이미지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사람이 꾸며내는 이미지가 수많은 경로를 통해 가짜였다는 것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이 잘못을 스스로 저지르는 바람에 무너지는 경우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착한 막내 동생'처럼 예능을 통해 보여줬지만 알고 보니 성범죄자였던 누구처럼.

이번에도 똑같이, 예능을 통해 '착한 막내 동생'으로 어필했던 한 연예인이 스스로 무너졌다. 그는 빅스의 전 멤버이자 현 래퍼, 독립 레이블 그루블린의 대표 라비다. 그는 지난 3일 발매된 <로지스>라는 앨범의 수록곡 'RED VELVET'을 작사했는데, 이 곡의 가사가 문제가 됐다.

라비 - RED VELVET 가사 전문 캡처

"I TAKE A BIT OUT OF A RED VELVET", "난 더는 못 참아 날 그만 TEST 해" "더 크게 베어 물어줄래" "누가 대신할 수 없어 너란 자극은"와 같은 가사에서 봤을 때, 이 곡은 연인 간의 스킨십 혹은 애정행위를 다루고 있는 곡이다.

동시에, RED VELVET을 소재로 한 곡이다. 제목 자체도 'RED VELVET'인 데다, 곡 중간중간 레드벨벳 멤버들의 이름이 나오고(수영, 예리), 레드벨벳의 곡이 계속 인용된다.(DUMB DUMB, RUSSIAN ROULETTE)

이 노래가 만약 윗 내용, 다시 말해 연인 간의 스킨십이나 애정행위만을 이야기했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레드벨벳이 아. 주.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문제가 된다. 연인 간의 스킨십 혹은 (사실상 이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정행위를 다루는 곡에서 레드벨벳 그룹명, 곡명, 급기야(!!!!!) 레드벨벳 멤버들의 이름까지 썼다는 건 대놓고 스킨십과 애정행위의 대상으로 레드벨벳 멤버들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는 건데, 왜 이런 최악의 일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논란이 커지자 라비는 사과문을 올렸다. SM과 레드벨벳에 대한 사과와 음원을 내리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런 부분은 괜찮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 부분이 두 군데 있었다.

라비 사과문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6041511001)

1.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2. 의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성희롱적 가사가 남았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


처음엔, "가사 속 내용들로 인해 많은 분들이 불쾌함을 느끼실 수 있음에 대하여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여기. 아니 어떻게 대체 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레드벨벳 멤버들의 이름까지 인용했고, 가사 안에 레드벨벳을 먹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성희롱적이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만약 여기서 미러링 한 가사를 쓴다면 내가 라비를 성희롱했다는 댓글이 엄청나게 쓰이지 않을까? 그래 놓고 어이쿠; 제가 사전에 스스로 인지를 못했어요 이렇게 하면 해결되는 걸까?

사실 라비의 사례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발언을 했을 때, 사람들의 불쾌함이 어느 정도 일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며 사과한다. 그런데 정말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하면 다가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사람들의 생각이 예민한 이 시기에 그렇게 말하는 건 무책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 노래는 밝은 에너지를 표현하려 했던 곡이었으나". 라비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밝은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 1235923917948개의 방법이 있는데 왜 하필 레드벨벳이라는 실존하는 그룹의 이름, 곡명, 멤버 이름까지 써먹나? 그것도 연인 간의 애정행위를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이 사태를 만든,

라비의 안일함이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번 일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라비의 '안일함'이다. 2021년에, 이런 식의 가사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그 안일함. 그리고 안일함을 가능하게 만든, 여전히 안일한 사회적 분위기. 이번 라비 논란에 있어서 '유난이다'라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 이런 비난이 가능한 것도 안일한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진짜 솔직해지자. 남성이 여성을 먹는다라는 표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았는가? 그것도 매우 폭력적인 의미로.

게다가 지금 어딘가에서는 집게손가락 하나에도 부들부들 떠는데, 남자 가수가 여자 가수 그룹명을 대면서 '먹는다'라고 써놓은 것에 분노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이거야말로 이중잣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1박2일 캡처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hu-XFrPSdQ)

이번의 라비 논란을 바라보면서 필자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또, 연예인 이미지 장사에 넘어갔구나. 또, 사람을 헛되게 믿었구나. 최근 1박2일과 놀라운 토요일,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 등을 보면서 그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1박 2일에서의 막내 이미지가 크지 않았을까, 싶은데. 안타깝게도 라비는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순탄하게 판매되고 있던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걷어차버렸다. '안일함' 때문에. 라비는 사과문을 통해 앞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실망 없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오히려 사과문 때문에 그에게서 희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는, 그리고 또 많은 시청자들이 불편함 없이 볼 만한 연예인 하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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