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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Mar 20. 2021

<비극의 탄생>, 이 책이 출간됐다는 게 비극이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읽은 건 아니었다. 현재 어딘가 속해있고, 그곳에서 이 책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데 그것 자체가 너무나 고역이었다. 내가 인세를 더해주고 있겠지. 그 생각에. 그리고 어딘가 앉아 꾸역꾸역 읽어낸 이 책은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2차 가해.


1페이지부터 끝까지, 2차 가해.


 이 책의 표지엔 선한 표정을 한 가해자가 있다. 거기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글쓴이가 만난 가해자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남다른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그건 이 사건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사람이었건 아니건 그가 했던 행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가해자의 좋은 모습만 부각해 가해자의 악한 모습을 순화시키려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실상 글쓴이의, '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요'라는 고백서다. 글쓴이는 지금까지 모든 박원순 지지자가 해왔던, 피해자에 대한 의심을 책에서 쏟아낸다. 문제는 그가 '기자'이고 이 책도 '기자의 취재기'라는 명목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기자가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잃었다는 생각을 가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자가 취재했다고 하면 혹하기 마련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책의 한 부분에서 피해자의 편지 전문을 인용하고 이 편지에서 무슨 생각이었을까?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놓고 있는데, 이 부분 정말 최악이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상사나 높은 사람에게 별로 할 말은 없지만 편지는 채워야 할 때 억지로 쓰는 말이지 않나. 학창 시절 때 선생님 사랑합니다. 하면서 선생님한테 성적 끌림을 느껴본 사람 계세요?(....)

책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부분을 더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냥 이 책의 1페이지부터 끝까지 그런 거라서 어딜 인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대부분 기자가 사람을 만나 증언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증언 중에서 여러 증언이 피해자의 성격을 얘기하거나 겉으로 보기에 그런 일을 겪은 사람 같지 않았다거나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이런 건 사건의 진위를 따지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더 얘기 안 해도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텔레그램 메시지에 관한 증언이 제일 압권이다. 텔레그램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증인을 만났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곤 뒤에서 자기가 확인한 건 문자 하나뿐이고 다른 건 확인 못했다는 식으로 써놓았다. 그런데 인권위 결정문에서 인정한 다른 메시지는 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증인의 증언이 인권위에 제출한 피해자의 텔레그램 메시지만큼의 의미가 있는가? 인권위 결정문 기사와 비교하면서 읽으면서, 정말 본인의 주장에 유리하게만 책을 써놨다고 생각했다.


책의 나비효과,

또 다른 비극의 탄생


 이 책의 나비효과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출처 : 인터파크 도서 캡처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저질렀던 일을 로맨스로 해석하고, 이걸 '사생활'이라 얘기하며, 그건 또 공직업무와는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니..... 놀랍게도 이 추천사를 잘 읽어보면 추천사를 쓴 사람의 젠더 감수성은 나쁘지 않게 출발한다.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가 달라져서 그렇지.

 이제 이 책으로 인해 추천사를 쓴 이와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얘기, SNS상에서 카드 뉴스로 정리되어 떠돌고 있다는 얘기,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구매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있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다. 또 다른 비극의 탄생이다.

 나는 이 비극이 기자로부터 시작된 것이 무척이나 비참하고 슬프다. 다른 글에서 나는 기자 지망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책에는 글쓴이가 언론을 비판한 부분도 있는데, 언론이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다는 것이 그 골자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글쓴이야말로 편향적이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니 피해자를 의심할 수밖에. 한 챕터에서 그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한 이유를 의심한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해자가 그 행위를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사고 읽으러 향하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대체 뭘 하면 바뀔까. 누군가 죽어서 유서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통과 무력감을 하나하나 써놓는다면 바뀔까?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해서 바뀔 거였으면 진작에 바뀌었겠지. 얼마나 많은 소수자들이 죽었는데. 뭐, 이런 생각.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그날 밤에는 악몽에 시달렸다. 무슨 꿈이었는지 아주 상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내가 그걸 지켜보고 있는 꿈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기자 지망생이자 페미니스트라. 지금 이 상황이 아주 고통스럽다. 진로를 싹 다 갈아엎고 싶을 정도로. 근데 결국 글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의 글쓴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글쓴이만큼 파급력 있지는 못하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 누군가는 저 책을 비판하고 있고, 누군가는 피해자의 편에 서있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나 모를 불필요한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댓글창을 막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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