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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Mar 22. 2023

고전의 최선, 연극 ‘만선’ 리뷰

가부장제의 굴레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

(※연극 '만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극 '만선' 포스터(출처 : 연극 '만선' 인터파크 티켓 예매 페이지)

연극 ‘만선’을 보고 왔다. 페미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고전을 보기 전에 별 다른 걱정 없이 갔던 건 순진했는지 모른다. ‘만선’ 속 여성들은 견고한 가부장제의 굴레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극 ‘만선’이 좋았던 것은 여성들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연극 ‘만선’은 뱃사람 곰치가 부서 떼를 가득 안고 돌아왔지만, 선주 임제순에 의해 잡아들인 부서와 배를 모두 넘겨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곰치는 뱃사람 그 자체다. 배와 바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들 셋을 바다에서 잃은 가족의 비애는 뒤로 물러나 있다. 곰치의 고집은 아들을 사지로, 가족을 빚더미의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즉, 곰치는 그 시대의 ‘가부장제의 상징’이다.     


그러나 고전인 ‘만선’이 지금 시대에도 공연될 수 있는 것은 이전에도 갖고 있었고, 지금에도 갖고 있는, 시대를 앞서나가는 가치 때문이다.     


참지 않는 여성 캐릭터,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들도 말할 수 있다     


곰치의 아내, 구포댁은 자신의 아들을 바다에서 3명을 잃은 인물이다. 그런데 또다시 아들을 한 명 더 잃게 된다. 결국 정신을 놓은 구포댁이 내린 결정은 마지막 남은 아기를 배에다가 두고 배를 띄워버리는 것이었다. 바다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형들과 똑같은 숙명을 겪는 게 아니라 뭍으로 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구포댁은 곰치의 고집스러운 행동에 자신의 아들을 잃고 나서 참지 않았다. 다소 무모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구포댁만의 발악이었을 것이다. 구포댁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이 연극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연극이 1960년대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해당 내용이 당시에는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2023년의 만선에는 원작과 다른 내용이 추가돼 새로운 파격을 선사한다. 바로 곰치와 구포댁의 딸 ‘슬슬이’의 이야기다.     


슬슬이도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폐해 속 희생자다. 색시(작품 속 표현)가 여러 명 있는 범쇠가 슬슬이를 돈을 주고 데려가려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고집에 오빠와 자신이 사랑하는 연철, 둘 다 잃고 끝내 자살한다.     


그러나 2023년의 만선에는 눈 여겨볼 설정이 있다. 슬슬이를 내내 탐하던 범쇠가 슬슬이를 추행하자 슬슬이는 참지 않는다. 낫을 들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래도 끝끝내 남성캐릭터가 위협적으로 나오자 슬슬이는 범쇠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개인적으로는 슬슬이가 그 캐릭터를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여성 캐릭터가 참지 않고 표현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고전이 고전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교훈이 존재하고, 그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고전의 의미가 흔들리는 경우가 다수다. 많은 고전에서 여성의 역할은 축소되거나 아니면 아예 사라져 있거나 하므로.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변화다. 시대에 맞게 새롭게 각색해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만선은 애초에도 열려있는 작품이었다. 고전이 일반적으로 가진 특성과는 달리 여성에게 행동의 주체성을 쥐어주는 극이었다. 거기다가 최근의 각색을 더해 또 다른 여성 인물에게도 행동의 주체성을 부여했다.     


즉, 2023년의 만선은 고전의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보러 가시길. 배우들의 열연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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