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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이너뷰Point of View Oct 11. 2020

영화 <당통> 1983년작

근대 헌법의 딜레마

근대 헌법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프랑스혁명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앙시앙 레짐을 극복하고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설계도로서 성문헌법이 수차례 만들어진다. 미국 혁명기에 제정된 여러 헌법과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여러 헌법이 근대 헌법의 모습을 완성시켰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인권,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 그리고 국민주권(민주주의), 권력분립 등의 원리를 선언하였다.


당통의 배경


프랑스혁명을 테마로 하는 영화로서 폴란드의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당통>이 있다. 영화 당통은 1794년 4월 상순의 며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789년 7월부터 헌법 제정 작업을 진행한 헌법 제정 의회는 1789년 8월 26일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한다. 그리고 그 인권선언과 한 몸을 이루는 헌법이 1791년 8월 3일에 제정된다. 91년 헌법체제는 자유주의 귀족과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타협적 개혁노선(입헌군주제)이지만, 반혁명세력과 외국군대에 의해 혁명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민중에 의해 92년 8월 10일 봉기로, 91년 헌법체제는 붕괴하였다. 신헌법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공회가 선출되었다. 그 후 군주제가 폐지되어 루이 16세는 처형된다. 국민공회에서는 산악파(자코뱅파) 주도로 93년 6월 24일 신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93년 10월 10일 혁명정부가 수립되어, 93년 헌법의 시행은 "평화의 도래" 시점까지 연기되었다(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산악파(자코뱅파)는 공안위원회와 보안위원회를 거점으로 하여, 독재, 공포정치를 행했다. 94년 들어 산악파의 내부에서 노선 대립이 발생했다. 부르주아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우파(당통파)와 민중의 요구를 더 수용하자는 좌파(에베르 파) 쌍방이 대립한다. 중간에 선 로베스피에르 파는 불만을 갖게 되고, 우선 94년 3월에 에베르 파를 처형하고 후에 당통파를 배제하려고 한다. 영화 당통은 이 시기부터 시작한다.


원작자, 감독, 배우


이 영화의 원작은 요절한 폴란드의 극작가  스테니 슬라바 프르치비제우스카(1901-35)의 희곡 <당통 사건>(1929)이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베르 마티에의 <프랑스혁명>(1922-27)을 참고하여 이 희곡을 썼다. 생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60년대에 재발견되어, 지금은 폴란드 연극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바이다는 1975년 이래 이 희곡을 무대에서 연출해 왔다. 그리고 폴란드-프랑스 합작으로 1983년 영화화된 것이다.


무대는 파리의 거리, 로베스피에르의 방, 국민공회, 공안위원회, 혁명재판소, 감옥, 단두대 등이다. 당통파와 로베스피에르 파가 대결하고, 로베스피에르 파가 당통파를 처형하기까지의 수일간을 그린다. 혁명을 지키고 완수하기 위해서는 공포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로베스피에르와, 좀 더 관용적이고 관대한 당통의 사이에서, 혁명의 노선 대립이 있고,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을 배제했다는 것이 핵심 줄거리다. 당통은 호방한 웅변으로 민중에게 사랑받는 정치가이고, 로베스피에르는 결벽증에 냉정한 이상주의자/전략가로서 묘사되고 있다.


당통은 프랑스인  제라르 드파르디유, 로베스피에르는 폴란드인  워즈시에크 사조니악이 연기했다. 바이다는 드파르디유를 뽑아 영화의 제작을 결심했다고 할 정도로, 드파르디유는 당통 그 자체였다고 한다. 사조니악은 1975년 이래 바이다가 연출한 로베스피에르를 연기하였다. 이 영화에서 폴란드인 배우는 폴란드어로 연기하고 후에 프랑스어 더빙을 하였다.

혁명의 딜레마


가장 먼저 주목되는 장면은 로베스피에르가 당통과 만난 후 공안위원회 심의에서 당통 체포를 결의하고 공안 위원이 체포장에 서명하는 부분부터, 당통파가 체포되어 체포 다음날의 국민공회의 회의장에서 당통 지지를 부르짖는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의 연설을 들은 후에 로베스피에르 지지로 전환하여, 라마르세예즈를 합창하는 부분일 것이다. 어찌 보면 우스운 정치의 논리, 생리, 역동성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


혁명재판소에서 심리를 받고 있는 당통이, 방청하고 있는 민중을 향해 연설을 하는 곳은 드파르디유의 독무대이다. 당통파가 혁명재판소의 재판을 선고받고, 기요틴에서 처형된 신은 강렬하다. 영화의 최후에 나오는 로베스피에르의 대사와 당통의 대사에 프르치비제우스카와 바이다가 하고자 하는 말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당통 사건은 딜레마다. 만약 우리들이 재판에서 지게 되면 혁명은 쓸모없게 된다. 우리가 이겨도 마찬가지다."(로베스피에르)

"우리가 없으면 혁명은 붕괴한다. 이것은 공포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은 사라졌다. 기껏해야 3달이면 붕괴한다. 고작 3달."(처형 전 당통)

"여기까지 우리가 목표로 해 온 것이 영원히 붕괴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혁명은 방향을 그르쳤다."(당통 처형 후의 로베스피에르)

자유와 민주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대화 사이에는 근대 헌법이 안고 있는 원리적 모순이 드러난다. 당통은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민중으로부터의 인기에 도취되어 나오는 말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국가보다 우선하는 존재라는 외침은 사실 고전적 자유주의의 교리를 확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교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권력 앞에 인간은 무참하게 유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말이 당통을 처형하게 되는 빌미가 된다. 국민의 주권보다 우선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의 자유 또한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통과 같은 생각을 방치하면 귀족과 부르주아가 다시 힘을 얻어 혁명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리상 모순되는 자유와 민주, 어떻게든 그 사이의 조화를 찾아보려는 것이 근대 헌법의 실제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


이 희곡/영화의 주제는, 당통의 처형이 로베스피에르와 혁명 전체에 가져온 임팩트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딜레마 또는 혁명의 딜레마라고 해도 될 것이다. 당통의 처형 직후, 로베스피에르가 하숙하고 있는 듀프레가의 장녀 에레오노레가 어린 동생을 끌고 와 로베스피에르의 방에 들어온다. 그리고 동생은 침대에 걸터앉은 로베스피에르 앞에서, 5년 전인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을 제1조부터 순서대로 암송한다. 이것을 듣고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표정은 복잡하다. 놀라움과 공포가 교차하는 표정이다. 혁명정부는 결국 인권선언과 헌법을 완전히 정지시켰다는 자각 때문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당통파 처형 3개월 후, 로베스피에르 파도 처형된다. 이후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프랑스혁명은 끝이 난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유혈과 희생을 치러 얻은 근대 헌법의 이념 - 자유, 평등, 사회적 연대 - 는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그리고 인류사회가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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