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설계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얼마 전 재무설계사와의 상담이 있었다. 친언니와 참석했던 사회초년생 재테크 세미나 이후 이벤트성으로 진행한 상담이었다. 나를 담당한 설계사는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부동산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본인의 사수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사수를 불렀다고 했다. 그렇게 2:1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30살까지 모으고 싶은 금액을 말하자, 그 남자 사수가 나보고 여자가 재무 목표가 있다는 것이 매우 칭찬할 만할 일이며, 나보고 '신여성'이라고 했다. 여기서 먼저 1차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가요? 사회초년생이 목표가 있는 게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라?
나와 함께 세미나를 듣고 따로 상담을 진행한 언니의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다. 언니는 석사를 끝내고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데, 언니에게 몇 년이나 더 일할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언니는 이 직장에서의 근속연수를 묻는 줄 알았는데, 결혼 후에도 일을 할 것이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언니가 너무 황당하여 "당연하죠"라고 말하자 대단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학사를 최우수로 졸업하고 석사를 졸업 후 바로 전문직으로 일하는 엘리트 중 엘리트인 사람이다. 학석사 7년을 전액장학생으로 다녔고, 지금도 대기업 과차장급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재무상담 중에 언니의 직업이나 연봉이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 언니에게 몇 년이나 더 일할 거냐고? 그럼 결혼 전 3-4년 일하려고 7년 동안 공부했다는 말인가? 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성별 때문에 전문성과 능력을 과소평가받아야 하는가?
더 가관인 것은 그 사람이 우리 언니와 나랑 대학 동문이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는 자신과 학력이 같거나 더 높은 여성 동문들이 결혼하고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인가? 아니, 학력과 직장과 연봉을 떠나서 결혼을 하고 왜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가? 결혼과 동시에 이민을 가거나 복권에 당첨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의 커리어를 완전히 지지해주는 사람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두 번의 일이 아니었다. 학생 때부터 이래왔다. 내가 얼마나 승부욕 강하고 자존심 센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 남자 설계사는 내게 이런 말을 못했을 거다. 초등학생 때 남자애들보다 체력장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이악물고 방과후에 달리기 연습을 했다. 내 체력은 어쩔 수 없이 성별에 어느 정도 비례할 수밖에 없지만 나의 성적이나 지적 능력에 있어서는 '학점마녀' 따위로 무시받으면서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성격들, 예를 들면 남학생의 못된 행동을 '짓궂은 장난' 정도로 넘어가야 하는 자비로움 등을 강요받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언니는 그 때 어이가 없어 되받아치지 못한 것이 분해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언니에게 꼭 피드백을 보내라고 말했다. 그 설계사도 결국 다른 여성 고객들을 상담하게 될 텐데, 이런 구시대적인 사고로는 고객들이 상담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고 곧 낙오될 수밖에 없으니, 그 사람을 위한 말이기도 하다고 했다.
참지 않기로 했다. 나를 불편하고 화나고 언짢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이를 말해주기로 했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한 일이니, 선행 한 번 베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불만이라면 어쩔 수 없지. 사회는 바뀌어가고, 그에 따라 바뀌지 못하는 사람은 뒤처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