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무서워지는 것이 하나 있다. 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온갖 바이러스이다. 여름에 유치원에서 매일 물놀이를 하는 아들 써니는 작년엔 폐렴, 올해는 구내염 수족구에 걸렸다. 면역력이 약해진 것인지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감염이 된 것처럼 몸이 아팠다. 내 몸이 멀쩡하면 이 시간이 크게 고되지는 않은데 몸이 아픈 채로 아이를 돌보려면 발 끝에서부터 짜증 내지 않는 영혼을 끌어당겨와야만 한다.
게다가 잘 먹어야 금방 낫지만 구내염 걸린 아이에게 잘 먹길 바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최대한 물어보고 먹겠다 해서 만들어주지만 금방 만든 음식 앞에서 거부하는 것 역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받아줘야 한다. 상전이 따로 없다. (평소엔 얄짤없지. 아프니까 봐준다;;)
얼마 전 짝꿍의 1박 2일 친구들 모임이 생겼다. 이런 나의 고된 상황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써니랑 둘이 다녀올 테니 자유부인을 하라며 나만의 시간을 얻었다. 타이밍이 아이가 아프고 회복된 직후였다. 나도 쉼이 필요한 기가 막힌 시기였다.
얼마 만에 누리는 주말 자유시간인가. 고백하건대 나는 물건을 잘 못 산다. 특히 옷, 화장품(특히 색조) 같은 뷰티 제품들을 잘 못 산다. 립스틱도 직접 가서 발라보고 사고 싶다는 염원을 핑계로 계속 미뤄왔었다. 매장 가서 한번 발라보자 하는 마음이 실행 가기가 참 어렵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어제 드디어 백화점 매장에 가서 나에게 맞는 색을 골라가며 직접 발라보니 구매 속도가 빨라졌다. 혼자 새우탕면도 후루룩 먹고, 가고 싶었던 당인리 책발전소 서점에 들러 주인장의 추천책도 하나 골랐다. 카페에 앉아 시간을 살피지 않고 책에 푹 빠져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고 배가 고파 초밥 한 판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평소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밀러 맥주 한 캔과 초밥을 야무지게 먹고 영화 한 편을 늦은 시간까지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 나만의 행복 포인트는 시간을 염두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이었다.
주말이건 평일이건 엄마들은 늘 선행(先行)을 한다. 아침 먹으면서 점심 생각을, 점심 먹으면서 저녁 걱정을 한다. 늘 하던 이 선행을 하지 않아 편안한 하루였다고나 할까. 엄마도 쉼이 필요하다. 본인 페이스에 맞게 자유시간을 잘 누리는 엄마들은 참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간간히 친구 만나 콧구멍 귓구멍에 바람도 쐬고 나름의 환기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하루종일 내 몸 하나만 건사해도 되는 온전한 자유로움도 가끔씩은 필요하다. 이런 쉼은 누구와 동행하지 않고 철저하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요새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쉼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필요한 에너지를 채워본다. 그리고 다시 내가 피할 수 없는 집안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매일 반복되는 식사준비, 집청소, 빨래와 같은 일상적인 노동도 분명 신성한 것이라고. 집안일 노동을 할 때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한 것이라고. 신성한 일을 매일 하다가 가끔씩은 온전한 쉼도 필요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