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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Jul 21. 2023

로켓배송이 인내심에 미치는 영향

육아에세이 │균형 잡힌 결핍 유지하기

동물, 곤충을 좋아하는 아들 써니는 얼마 전에 가끔 가는 유료 숲 놀이터에 다녀왔다. 동물피규어로 재밌게 놀았는지 피규어 하나를 사달라고 했다. 이젠 좀 컸다고 온라인 구매도 같이 고르고 싶단다. 로켓배송해 주는 구매 앱을 켜고 아이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골라 결제했다.


"엄마, 호랑이 언제 온대?

"이거 내일 올 거야 아마."

"으잉? 오늘 아니고, 내일 온다 구우우우????"

"그럼~ 지금 사는데 어떻게 오늘 와??"

"아니야~ 지금 오라 그래애애애애."


다음 날 배송된다는 대답에 놀라면서 약간 징징대는 아들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로켓배송의 노예가 된 나는 늘 생각 없이 앱을 켜고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다. 며칠 의식하며 구매를 해보니 오전 9시 정도 이전에 구매를 하면 당일 저녁에 배송이 되는 로켓배송 상품들이 많았다. 와, 진짜 로켓이었구나! 써니도 그동안 내가 물건을 아침에 샀다고 이야기한 뒤 저녁에 받은 것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핸드폰으로 물건을 사면 당일에 바로 받는다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 동안은 장난감 사더라도 기다리는 미덕을 알게 해 주려고 미국에서 바다 건너오는 거라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도 댔었던 나이거늘. 아이의 인내심은 특별한 활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길러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거늘. 고삐가 풀렸다.


나는 생필품이 소진되어도 꼭 사야 하는 물품에 포함시키지도 않는 주도면밀성을, 아이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언제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무분별하게 물건을 사들이기도 한다. 게다가 반품도 무료로 쉽게 할 수 있으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마구 쟁여놓기까지 한다.  


나는 나름 계획적인 사람인데, 로켓배송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고 있다. 미리 준비해야 마음이 편안한 성격인데도 신뢰도가 높은 로켓배송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계획성을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두루마리 휴지가 1개 남아도, 식용유가 몇 방울 안 남아도 긴장감이 없었나 보다. 하루 전날만 사놓으면 되지 뭐! 이런 마인드가 강해졌고 이 것이 아이에게도 분명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아챘다.  




빠른 배송 시스템은 분명 편리성과 삶의 질을 제고해 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급하게 필요한 물건인 경우, 발품팔지 않고도 몇 시간 만에 손에 들어오는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이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경우 원하는 물건을 바로 획득하는 부분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구매하기 위해 최소한의 몸을 움직이고 발품을 파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 노력이라는 인풋이 들어가고 물건획득이라는 아웃풋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로켓배송은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음과 동시에 배송도 빨라 쉽게 얻는 셈이다. 아웃풋은 확실하지만 노력이라는 인풋은 거의 없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결핍이 결핍된 세상'에 살고 있다. 효율성이 미덕인 동시에 물질적 풍요로움이 충만한 상황에서 인내심과 같은 소양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앞으로의 숙제 같은 느낌이다. 생활 속 많은 부분이 결핍되면 여러 방면에서 큰 문제가 생기지만, 적당히 균형 잡힌 결핍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본다. 부족한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없어도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조금 돌아가면서 그 안에서 얻는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단, 정서적 결핍의 균형을 고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에게 주는 사랑만큼은 결핍되어서는 안 되니까.)


나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 시골 전원생활은 아이를 위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등시기는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며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로망을 구체화할 때면 현실적인 고민들과 마주하곤 했다.


"로켓배송이 될까?", "새벽배송은?"


뼛속까지 도시인인 주제에 자꾸 전원생활을 그리며 고민하고 있는 나도 좀 웃기지만 로망은 로망이니까!!

그러던 중 우연히 책을 보다가 로켓배송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어 내가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나 역시 로켓배송이 되지 않으니 오히려 물건 사는 일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게 됐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재우고 혹시 필요한 것은 없나, 습관처럼 심야 인터넷 쇼핑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었다. 이제 그 시간에는 혼자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하루를 마감한다. 꼭 필요한 것은 메모해 놓았다가 장 보러 시내 나갔을 때 사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법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신기한 일이다. 모든 게 갖춰진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대부분 갖춰지지 않은 시골에서는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처럼 마음이 여유로웠다.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든 자리에서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에 대하여 오래 생각할 수 있었다.

『시골육아』(김선연 지음)


무언가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껴본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꼭 없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본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늘 친구, 가족 전화번호를 외우고, 심지어 지하철 노선도 호선별로 외웠었던 기억이 난다. 이를 대신해 줄 기계가 없으니 뇌가 더 반짝반짝했던 시절이다. 어찌 보면 공평한 세상이다.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몸의 편리함은 얻었지만 뇌의 반짝임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은 비단 나뿐만 일까?   


정말 로켓배송이 안 되는 곳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면 모를까 아직은 그럴 수 없기에 잃어버리고 있던 나의 주도면밀 성과 아이의 인내심을 되찾기 위해 균형 잡힌 결핍을 잘 시도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도 오래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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