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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31. 2023

38호 빨강의 깨달음

나도 수많은 빨강 중 하나일터.

색깔나라에 38호 빨강이 살았어.

38호 빨강은 그와 같은 색과 명암을 가진 이들 하고만

친구를 하겠다고 매일 찾아 헤매고 있었지.


노랑, 파랑, 초록, 보라 등은 당연히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나와 색이 완전히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야.  


같은 빨강들은 그나마 결이 맞아서 어울렸는데

3호 빨강은 성격이 좀 까칠했어.

19호 빨강은 행동이 좀 맘에 들지 않았어.

74호 빨강은 가끔 생각이 다른 면이 있었어.


결국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럴 때마다 38호 빨강은 마음에서  

그들을 하나씩 지워나갔어.


시간이 지난 뒤 38호 빨강은 알게 되었어.

뭐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친구목록에서 삭제하게 되면

결국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멀찌감치 서서 다시 색깔 친구들을 돌아보았어.

3호 빨강은 성격이 좀 까칠하지만

험담은 절대 하지 않더라

19호 빨강은 행동이 좀 맘에 들지 않지만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더라

74호 빨강은 가끔 생각이 다르지만

유머가 많아서 즐겁게 해 주더라


38호 빨강은 깨달았어

나와 똑같은 빨강은 우주에 단 하나라는 사실을.

조금 맘에 안 드는 구석은 있지만 잘 살펴보면

다른 좋은 점이 있다는 것도

굳이 가깝게 지내진 않아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친구는 될 수 있다는 것을.


노랑과 어울리면 주황의 세상이

파랑과 어울리면 보라의 세상이

새롭게 펼쳐지며  

종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38호 빨강은 더 이상 똑같은 빨강을 찾지 않기로 했어.

주변 색깔친구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어.

그리고 그게 덜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내 주변에 38호 빨강들은 얼마나 될지...

그게 혹 나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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