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토리 Feb 07. 2024

도파민 디톡스가 절실해

스마트폰과 멀어지기 연습

최근 몸이 많이 아팠다. 아이 방학 5주 동안 자율신경이 말썽인 탓에 컨디션이 크게 떨어졌고, 연이은 감기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한 동안 브런치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유일하게 집중했던 건 스마트폰이었다. 짬이 나는데로 스마트폰 속 자극적인 것들에 정신을 팔면 몸의 증상을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내 몸도 잘 쉬는 것 같이 느껴졌기에 재밌다고 소문난 드라마나 영상들만 한동안 찾아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나는 아파트 4층에 산다. 얼마 전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에 앞에 서서 도어락에 지문을 인식하는데, 어라? 지문 인식이 잘 안 되는 것이다. 몇 번 실패하고서야 고개를 살짝 돌리니 싸한 공기가 주위에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우리 집 현관문 앞에는 커다란 자전거 두대가 늘 자리하고 있는데 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층인 3층 이웃집 도어락에 지문을 인식하고 있는 나를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만약 지문오류 소리에 집주인이 나오기라도 했다면... 등 뒤에 주인이 마침 그 타이밍에 집에 도착했더라면... 뜨아!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저층에 사는지라 엘리베이터를 잘 안타는 나는 그날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대단한 일처리를 위해 스마트폰을 보며 계단을 오른 것도 아니다. 그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무언가에 홀린 것이다. 무얼 보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 일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달콤한 유혹의 도파민들이 도처에 널린 세상이다. 포털 뉴스, 유튜브, 음악, 술, 담배, SNS 등 내 몸과 정신을 중독시키는 것들이 일상에 스며드는 침투 정도가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특히 쇼츠, 틱톡, 릴스 등 짧은 시간에 강렬하면서도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상들은 중독성이 강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뇌를 꽉 붙잡고 있어 뇌를 지배하는 갑을관계가 되어가는 듯하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도파민 중독으로 MZ세대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고, ADHD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85년생인 나도 어엿한 MZ에 포함되긴 하지만 마냥 어린 친구들 이야기로만 치부했었다. 도파민 중독이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문제점은 뭔가 해야 할 것이 있어서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서는 유혹에 정신 못 차리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계단을 오르다가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쓸데없는 것들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나는 디치야.", '나는 육치인데" 라며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각자 자신의 기억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는 것을 털어놓을 때가 종종 있다. 디치는 '디지털 치매', 육치는 '육아 치매'를 일컫는다. 디치는 예컨대 아이 생일 때 유치원에 가져갈 떡을 어디에서 맞출까 하며 검색을 하려고 스마트폰을 들었지만 포털사이트 짧은 영상만 보고 뉴스를 읽고 스마트폰을 덮곤 하는 것이다. 정작 떡이라는 단어는 이미 머릿속에서 잊은 지 오래이다. 또 어떤 날은 온라인으로 장 보며 장바구니에 신나게 담아놓고 잠시 인터넷 창이라도 열게 되면 장 보는 걸 아주 깔끔하게 잊고 딴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 자정까지 써야만 하는 쿠폰을 이렇게 날려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쓸모없는 일에 정신을 쏟는 나를 마주할 때 이 말들이 농담이 아닌 멀지 않은 내 현실이 같아 섬뜩한 기분이 많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리하여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다. "나 이제 스마트폰 많이 안 볼 거야!!" 가끔 스마트폰 없이 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편리함을 죽어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스마트폰과 거리 두기를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나름 단계별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스포츠 밴드를 하나 장만했다. 시간과 알람을 자주 확인하는 탓에 스마트폰과 멀어지려면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했다.(전화 알림만 해두고 문자, 앱 알림 등 각종 알림 꺼두기) 두 번째로 그날 꼭 해야 하는 일들(온라인 장보기, 인터넷뱅킹 등)을 최대한 한 번에 몰아서 1시간 이내에 하는 집중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세 번째로 스마트폰을 일절 보지 않는 약간의 시간을 정했다. (정해놓은 장소에 놓고 만지지 않기) 마지막으로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는 핸드폰 절대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스마트폰 감옥과 같은 제품들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나 우선 나의 의지를 믿고 시험해 보기로 했다.  


스마트폰 많이 보기 않기 선언을 하고 1~2주일 정도 나름의 금단증세가 있었다. 뭔지 모를 초조한 마음에 스마트폰 근처에서 서성거리게 된다. 별일 없었을 걸 알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컸다. 결국 유혹에 못 이겨 스마트폰을 집어 들곤 했다. 역시나 별일은 없었다. 허나 눈으로 확인하니 좀 편안해지긴 했다. 단톡방도 메시지들이 와있으면 내가 할 말이 있을 경우 짧은 답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 보려 노력을 하니 점차 보는 횟수가 줄어갔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몸의 컨디션이 돌아오면서 정신을 차리고 스마트폰 검색보다는 몸이 좋아지는 것을 실천하기로 했다. 이미 나는 검색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만 내 몸이 건강해진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해도 무얼 하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기습득한 정보를 아웃풋 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몸의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 때 비로소 도파민 디톡스도 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한 순간이었다. 몸이 아프면 자극적이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재밌는 방법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쉽게 중독된다. 매일 과하지 않게 땀 흘리며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하고 틈틈이 책을 읽으며 강한 도파민을 멀리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니 다시 책을 집어들기 시작했고 쓰고 싶은 마음도 올라왔다.


스마트폰을 조금 멀리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어른들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살고 있었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하루의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도 생겼다. 그동안 늘 정신없고 시간이 짧다며 투덜대던 저녁시간은 쓸모없는 것에 한눈팔며 시간을 태워버린 탓이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사람의 의지는 흩날리는 먼지와 같아서 언제 이 의지가 무너질지는 잘 모르겠다. 의지가 날아가면 다시 주워 모으고 또 흩날리면 애써 잡아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노력해 보아야겠다. 이때 필요한 건 '적당히'라는 나만의 선이다. 스마트폰 적당히 하기가 참 어렵지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뭐든 적당히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름의 기준치를 정해놓으면 적당히 하는 삶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날 스마트폰을 저녁시간에 많이 보았다면 오늘 저녁시간만큼은 절대 보지 않기를 실천해 보는 것이다. 혹은 지난주 3일 정도 핸드폰과 많이 가까웠다면 이번주는 2일 정도로 줄여보는 지속가능한 실천을 하며 스스로 정한 '적당히'기준에 균형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장소, 횟수, 시간, 양 등 나름의 선을 정한다면 디지털 디톡스를 여러 번 오래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7살인 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인간의 분류를 생각(사색)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될 수 있을 것 같은 엉뚱한 상상도 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하는 인간으로 분류되고 싶다는 기원을 담아 발꿈치를 들어 올려 내손에 닿지 않는 곳에 스마트폰을 고이 내려놓아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액체괴물처럼 살지 않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